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9
아침부터 청소를 하고 나니 몸도 마음도 너무나 개운하다. 이렇듯 개운한 것을 왜 매일 미루게 되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며칠 만에 청소했나를 공개하면 모두 기절하고 말 거다. 하하하하. 암튼 청소하고 샤워하고 상쾌한 성취감이 절정인 상태에서 커피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오늘 마실 커피는 이틀 전에 서래수에서 새롭게 구입해온 7개의 원두 중 과테말라 게이샤(Guatemala Gesha). 신선한 커피 향이 원두에서부터 진동을 한다. 마치 학교에 처음 입학하는 초등학생같이 앳되고 신선한 느낌이랄까? 나는 과테말라 게이샤에서 열매보다는 상추처럼 푸른 잎 야채에서 느껴지는 풋풋함의 향취를 느낀다.
원두를 갈아 물을 부으니 그야말로 커피 빵처럼 빵 하고 부풀어 오르는 마술? 역시! 서래수 마스터의 말이 맞았다. 일단 커피는 생두의 품질과 신선도가 가장 중요하고, 로스팅 후에도 2주 안에는 마셔야 신선도와 향취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단다.
책 쓰기를 빨리 마치고 커피 시음 기를 쓰겠다며 원두 샘플을 조금씩 남겼던 것이 책 쓰기 퇴고와 탈고가 10번을 반복해서 이어지면서 3개월이 지나버렸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원두가 그 정도로 오래되면 카페에서는 당연히 폐기 처분한단다. 어쩐지... 그래서 어제 마신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는 빵처럼 부풀 지를 않고 녹조가 가득한 저수지처럼 침침하게 커피물이 고였다 내려갔었구나 하는 각성이 들었다.
커피가 빵처럼 부풀었다가 숨 쉬듯 내려가야 신선하고 맛있다는 이야기를 처음으로 들으며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던 나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충남대학교 옆 궁동에 아주 신기한 커피숍이 생겼다는 소문을 듣고 1991년 가을쯤 친구와 함께 놀러 갔다. 신기한 커피를 달라는 나의 주문에 커피숍 사장님이 우리 자리에서 직접 드립 해주면서 커피가 숨을 쉰다고 설명했던 부분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커피를 내리는 커피 도구들이 나의 호기심과 허영심을 모두 채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남들이 모르는 특별한 것을 나만 알고 있다는 착각이 자존감까지 강화시켜 줬다. 그때부터 더 많은 친구들을 이끌고 수도 없이 숨 쉬는 커피가 있는 충대 앞 커피숍을 들락거리며 난 좀 다른 사람이라는 잘난 척과 허세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당시 커피숍 사장님은 대우연구소에 다니다가 음악과 커피가 너무 좋아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퇴사하고 커피숍을 차렸으나 사람들이 자신의 커피를 너무 이해하지 못해 속상하다고 털어놓기도 했고, 단골손님인 우리 친구들에게는 ‘오뚜기 3분 카레’를 특식으로 서비스하기도 했다. 꿀맛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32세의 젊은 노총각이었지만, 그땐 어마 무시한 아저씨로만 생각되었다. 하지만 예술가의 천성을 타고난 사장님은 나중엔 커피만이 아니라 음악도 커피에 맞춰서 들어봐야 한다면서 커피와 음악을 세트메뉴로 플레이시켰다. 그중 기억에 남는 음악이 클레오 레인(Cleo Laine)의 ‘He was beautiful’이다.
창가에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던 가을날이었다. 학교에서 선생이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귀걸이를 한다고 교장선생님께 주의를 듣고 퇴근해서 기분전환을 위해 미용실에서 짧은 커트 머리로 변신한 채 버버리를 입고 친구를 만나러 커피숍에 들어섰다. 인사하는 내게 눈이 동그래진 사장님은 오늘 꼭 들려주고 싶은 음악이 있다면서 빵처럼 부풀어 오르는 커피 쇼를 마치자마자 클레오 레인의 ‘He was beautiful’을 커피숍을 가득 채울 만큼 볼륨을 높여서 틀었다. 그래서? 나는 숨 쉬는 신선한 커피를 마시며 ‘She was beautiful’을 들었다는 이야기다. 하하하.
아마도 10년 전? 쯤 까지 커피숍 사장님이 직접 녹음해줬던 팝송과 월드뮤직 테이프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 그 테이프에도 클레오 레인의 ‘She was beautiful’이 들어 있었다. 하하하. 사실이냐고 묻지 말라! 우리 기억은 어차피 망각과 재생과 자의적 재현의 메커니즘에 의해 조작된다.
어쨌든 오늘 이토록 신선하게 빵 하고 부풀어 오르며 숨 쉬는 풋풋한 과테말라 게이샤 커피 한잔의 설레는 행복이야말로 진짜다. 기억이 아닌 진짜 커피 맛 그대로의 감각에 대한 현실적 기대감이다. 드디어 따끈하고 소복하게 내려진 과테말라 게이샤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어? 참 이상하다. 진짜 과테말라의 맛이 난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체로 언어의 감각에 좀 예민한 편인데, 과테말라 게이샤의 맛의 감각을 단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나는 네 글자로 확실하고 명확하게 답할 수 있다.
‘과 · 테 · 말 · 라’
만약 네모지고 각진 과일이 세상에 있다면 아마도 과테말라 게이샤의 맛이 나지 않을까? 그것도 직사각형의 길고 긴~~~~~ 새콤함이다. 신 맛이 건조하고 드라이하게 긴 여운을 끌면서 과테말라 단어의 언어 감각과 같은 감각을 전해온다. 하지만 신선하고 깔끔하게 과 · 테 · 말 · 라스럽다.
세상 사람이 80억이라면 커피 맛도 80억 개가 맞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간혹, 또는 우연히 잠시 잠깐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감각으로 기뻐하며 같은 지향점으로 같은 길을 걷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또 새로운 감각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걷고 다른 감각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변치 않는 영원한 진리란 생과 멸 뿐일까? 상쾌하게 청소하고 기대감에 부풀어서 마신 오늘 아침의 과테말라 게이샤가 게이샤가 아닌 과 · 테 · 말 · 라의 언어적 감각이라 참 좋다. 마치 청소가 말끔하게 된 반듯한 거실처럼 내 영혼에 젖어들며 과 · 테 · 말 · 라스럽게 반짝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