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에티오피아 시다모 벤사

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11

by 김은형


카페 서래수를 오가며 가끔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 앞에 직면하곤 한다.

그날 아침은 유독 모자를 쓰고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이 많았고 커피를 반잔쯤 마셨을 때 드디어 네 번째 손님이 방울 달린 털모자에 숏 패딩을 입고 들어섰다. 참 재미있는 날이구나 생각하면서 커피 잔을 들다가 문득 테이블에 놓여있는 양 떼가 수 놓인 작은 액자에 눈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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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호기심 많고 엉뚱한 데다 추진력까지 겸비한 터보 엔진인지라 바로 서래수 마스터 김 대표님에게 여쭈니 방금 방울 달린 털모자를 쓰고 들어오신 분이 선물하셨단다.

와 ~~~ 이런 우연이? 망설임 없이 바로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은 방울 달린 털모자 여성분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어? 진짜요? 솜씨가 정말 좋으세요. 양들이 정말 너무너무 귀여워요.”

“그것만이 아니라 이 뒤에 있는 커피 잔 자수 작품과 저 쪽 벽에 걸린 집도 쥴리(Julie)가 수놓은 작품이에요. 2층 세미나실에도 액자 3개가 더 있는데 쥴리가 모두 서래수에 선물로 주셨어요.”

“와~~~ 정말 대단하세요. 수놓는 것 진짜 어려운데.. 작품 정말 좋아요, 쥴리!”


그러자 방울 달린 털모자의 쥴리가 대답했다.


“Thank you. 캄사합니다..........”


그녀가 한국인이 아닌 대만 사람이라는 것도 놀라운데, 영어로 말하면서 드문드문 명확한 한국어로 유창하게 의사소통하는 것은 더 대단해 보였다. 알고 보니 쥴리는 매일 아침 운동 후 서래수에서 모닝커피를 마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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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쥴리가 매일 아침 마시는 커피는 마침 내가 마시고 있던 에티오피아 시다모 벤사 (Ethiopia G1 Sidamo Bensa). 같은 품종의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단순하게 생각하자면 우연인 것 같지만, 같은 종의 커피를 스스로 선택해서 마스터에게 주문해서 마시고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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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쏠라 에너지에 노출된 물의 파동은 같은 물일지라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고 하듯이 서래수 마스터가 로스팅한 같은 품종의 원두를 같은 마스터가 내렸다고 할지라도 개인의 취향에 따른 다양한 감각에 따라 전혀 다른 맛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서래수라는 카페 공간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과 공간에 베어든 향기가 주는 후각적 감각, 커피 한잔에 담긴 주인장 마스터의 인간적인 파동은 물론 커피 잔의 느낌까지도 ‘커피 맛’이라는 총체적 인식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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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맛이란 뇌과학과 화학작용으로 풀어야 할 과학이지 아로마를 우선시하는 낭만과 환전 가치를 우선시하는 경제적 논리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런 화학작용과 뇌과학적 견지에서 조차도 같은 결론을 내려 같은 품종의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비슷한 파동의 감각을 가졌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드문드문 나누는 이야기에서 쥴리가 예술가적 본성을 타고난 사람임을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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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고 살뜰하게 가족들을 챙기고 힘들게 완성한 자신의 자수 작품을 이웃과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은 우리 주변의 다정한 이웃들과도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맑고 참 좋은 사람이구나.....

매일매일 반복되는 기계적이고 습관적인 삶 속에서 누군가를 뜻밖에 만나 삶을 공감하고 나눈다는 것은 참 감동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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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우연이란 늘 우리를 더 열린 넓은 관계와 세계 속으로 안내하기에 더 멋지고 신명 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삶의 ‘우연’을 위험이 아닌 ‘행운’으로 인식하기 시작할 때 우린 더 많이 행복하고 즐거워진다.


오늘 아침 상큼하고 부드러운 에티오피아 시다모 벤사를 마시며 쥴리와의 인연을 생각하다가 제주도 ‘취다선’ 대표님의 전화를 받았다. 대화 중 나눈 이야기가 마음에 깊이 남는다.


“ 나무가 물이 필요하면 자연히 뿌리를 물 쪽으로 뻗게 되어있어요. 그러니 때때로 인연 닿는 대로 살아가면 돼요. ”


어쩌면 나와 쥴리 또한 신명 나고 멋진 만남이 필요해서 발걸음을 서래수로 뻗었던 것은 아닐까?

서래수와 같은 카페가 현대인의 삶의 한 복판에 있다는 것은,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마치 옛날 동네의 샘터이자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사람들에게 삶의 생기를 찾아주는 공간이 되었음을 말해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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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더더욱 카페는 도시인들의 유일한 휴식처이자 숨 쉴 공간이 되어 코로나로 질식 전 사람들에게 가느다란 삶의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빌딩 숲의 후미진 구석, 카페 서래수가 담쟁이넝쿨 가득한 오아시스가 되어가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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