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케냐 스페셜티 키린야가

나는 카페 서래수 커피를 마신다. 12

by 김은형


2009년 7월 11일 비 오는 오후에 카페 서래수에 다녀간 방배동“S”는 방명록에 마방진을 그려 자신 삶의 우주적 변화를 점친? 흔적을 고스란히 남기며 다음과 같이 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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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무의미를 배워? 간다.

인간은 끊임없이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인간이라고....

그렇지만 세상 모든 아픔·슬픔을 수단·과정으로

삼기 위해서 인간이 태어난 거라면 그건 또한 무엇인가

그건 ‘발전’이라 보기보단 ‘절망’이 아닌가. ”


10권도 넘는 카페 서래수 방명록 중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긴 메모였다. 2009년 방배동 “S”는 그야말로 삶이라는 교양을 가장 귀하게 여긴 교양인, 인문주의자가 아니었을까? 나는 오늘 당장이라도 방배동 “S”를 만나 교양 있는 인문주의자가 마실법한 뉘앙스의 케냐 스페셜티 키린야가 (Kenya Specialty Kirinyaga)를 한잔 사고 싶다. 그와 함께 서래수 마스터가 내려주는 이 온순하고 정다운 맛의 케냐 키린야가 커피를 마시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삶의 역동성과 조화로움에 대해 대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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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본질은 일방적인 요구나 주장이 아닌, 서로의 생각과 언어가 음양의 리듬을 타며 마치 케냐 키린야가 커피처럼 하모니를 이루는 맛이 아니던가? 가로와 세로 어느 쪽으로 더해도 15가 나오는 마방진의 원리처럼 더하고 뺄 것 없이 음양이 딱딱 들어맞는, 딱 그 정도의 밸런스...


그러나 우린 가로에서 넘치거나 세로에서 넘치는 일방적인 관계와 대화를 멈추지 않고 견고하고 피로하다. 서로의 대화가 불통이라도 교양 넘치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자 상대를 향해 인간미 없이 웃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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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교양인이란 단순한 지식인이 아니라 스스로 인간인 자신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조화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보편적인 삶의 인간을 말한다. 르네상스적 인문주의의 전통 때문일까? 유럽 사람들은 개인적이기보다는 사회적이며 사교적이다.


인문주의자인 페트라르카도 말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크게 고무시킬 수 있음을 말하며 고전과 더불어 ‘말의 훈련’을 사람됨의 척도요 영혼의 발로로 강조했다. 아고라 광장에서 펼쳐졌을 수사학적 말의 제전을 상상해보라! 아고라 이후 유럽의 광장에서는 상품의 거래와 담론과 사교가 이루어졌고 그 전통은 플라자와 포럼으로 이어지고 17~18세기에는 살롱과 카페 문화가 꽃 폈다. 그리고 이탈리아 최초의 카페인 플로리안(Florian)처럼 사람들은 카페에서 수많은 일들을 보고 들으며 역사를 만들어왔다.


플로리안은 단순히 커피만 마시는 카페로서의 기능 외에 뉴스와 정보의 발신지였으며 지식인의 담론의 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희대의 플레이보이 카사노바도 단골 중 단골로 여성 고객 또한 플로리안으로 집결했다. 그러나 카페 플로리안의 또 하나의 진면목은 역사적 대 사건의 주요 무대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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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서래수 방명록에 기록을 남긴 2009년 방배동 “S”를 비롯한 또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추적하며 우리는 어쩌면 오늘 서울이란 이 도시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방배동 “S”가 조선의 왕이나 유럽의 군주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마치 그를 한 시대를 풍미한 중요한 “커피인”으로 역사적으로 부각해 서래수라는 카페를 서민들의 역사가 담긴 하나의 광장으로 기록할 수도 있으리라....


카페 서래수 마스터가 손님들이 남긴 방명록을 그토록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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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만들어낸 기록과 기억은 그야말로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소중함 그 자체임을 알기 때문이다. 역사란 결국 사람의 일을 기록하고 담아낸 하나의 이야기! 스스로 인간인 자신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조화로운 인간으로 살아가는 보편적인 삶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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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보라! 이 작은 카페 안에 15년 동안 쌓여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흔적과 발자취와 묵은 커피 향이 바로 우리의 현대사이고 우리 삶의 히스토리다. 이어폰을 통해 흐르는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선율보다 오늘은 식은 커피가 더욱 깊이 흐르는 이유다.

깊은 강은 멀리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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