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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형 Jan 09. 2023

가족앨범 1

  엄마를 위해 내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으로 가족사진 앨범을 의뢰했다. 제작사에서 보내온 앨범 초안 첫 페이지를 펼치니 잊고 있었던 부모님의 환한 미소가 사무치게 아름답고 그리워 눈물이 났다. 이 어두운 새벽 지금 당장이라도 친정집 정원에 들어서면 그 어느 곳에서라도 사색에 잠긴 아버지의 하얀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유쾌한 엄마의 웃음소리를 만날 것만 같은 마음이지만, 아버지는 너무 멀리 계시고 엄마는 일 년 넘게 병상에 누워 코로나로 면회조차도 어렵다. 


  사진을 들여다보니 엄마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친정집 정원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집이 아님을 알겠다. 사색에 잠긴 아버지의 담배 연기가 사라진 우리 집은 더 이상 내가 그리던 고향 집이 아님을 알겠다. 이제 그것은 단지 어느 골목에서나 스쳐가는 하나의 집이라는 사물에 불과하다. 사람이 담기지 않은 집도 금세 알아채고 온기를 잃고 생기 없는 폐가로 스스를 전락시킨다. 그렇게 생각하니 인간의 생기와 살아있는 삶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알 것 같다. 존재 자체로 무생물도 생의 에너지로 펄떡 거리게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인간이 지닌 거대한 힘임을 알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것은 아닐까? 단지 존재자체만으로도 그들이 담기는 모든 것을 살아 숨 쉬게 만드는 마술을 가졌으니 말이다. 물론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모든 것을 죽게 만드는 파괴적 선택도 가능하니 더 놀랍다. 


  가족사진 앨범을 보면서 엄마도 나처럼 아름다웠던 가족들과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얼음장이 된 가슴 속에 따뜻한 바람 한 점 살랑인다면 좋겠다. 공허한 눈빛과 웃음이 아닌 우리 집 앞을 지나던 모든 길손들을 따라 웃게 하던 유쾌한 웃음의 기억을 다시 되찾아 따듯해지셨으면 좋겠다.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엄마는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생기를 잃듯이 폐가에 부는 바람처럼 휑하고 훵하여 존재자체가 공허하다. 구멍이 숭숭 뚫린 저 공허한 존재에게 이 가족사진 앨범이 작은 바람막이라도 되어주길 원하는 간절한 마음... 적어도 엄마의 87세 평생 동안 나눈 사랑의 작은 한 토막 이야기라도 살려내어 따듯한 온기 속에 남은여생을 보내시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온다. 


  엄마는 이제 우리에게 사랑을 주는 존재에서 온전히 사랑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로 변형되었다. 우리의 박약한 이성적 분별력 자체가 엄마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병원과 집조차도 혼동하는 저 여린 생기 빠진 황폐한 육체는 오로지 사랑만을 갈구한다. 아니, 그조차도 외면하고 방어하며 냉담함으로써 자신의 허물어지기 직전의 육신의 집을 지킨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서럽고 슬프다.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엄마가 낯선 존재로 다가올수록 멀어질 것이 아니라 온전히 더 따듯하게 감싸고 사랑해야함을 이 새벽에 가족사진 앨범을 보면서 다시금 느낀다. 엄마는 이제 온전히 사랑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갓난아기와 같다는 사실을 받아들여한다. 우리의 유쾌한 웃음소리로 우리가 엄마를 웃게 만들어야한다. 저절로 엄마를 웃게 만드시던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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