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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은형 Jan 09. 2023

가족앨범 2

 우연일까? 엄마가 거의 3달 동안의 긴 병원생활을 마치고 충남대병원에서 퇴원하시는 오늘, (2023.1.9) 가족앨범 사진을 펼치니 2시 55분을 가리키는 시계를 안고 웃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득 시계를 보니 현재 시각은 새벽 2시53분. 어쩌면 병상에서 멈추었던 엄마의 삶의 시계도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한해 엄마는 거의 일년을 집과 병원 침대에 누워 생활하셨다. 엄마의 삶의 공간이 축소되면서 엄마의 존재도 더 작고 작게 점점 줄어들어갔다. 하나의 존재가 생성되고 또 사라진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것일까? 누구라도 엄마의 작은 자궁 안에서 티끌만큼 작은 존재로 왔다가 한 평생 꿈처럼 부풀곤 다시 작은 침상 위에서 점점 더 작아지며 결국 그곳으로 돌아간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엄마의 삶을 사춘기 소녀 때로 다시 돌려놓으면 어떨까? 그리고 자신밖에 모르는 아주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성향과 취향의 아이로 다시 성장시킨다면 어떨까? 아마도 엄마가 착한 아이로 길들여지지 않고 타자의 삶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만 하는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음악가가 되었거나 디자이너가 되었거나 학교 교장선생님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보다 타인의 삶을 행복한 것으로 바꾸려는 어려운 삶의 도전을 빨리 멈췄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엄마는 훵한 껍데기가 되어 쓰러졌다. 사람이 마음에 담기지  않은 육신은 다만 껍데기일 뿐이고 빈 집처럼 황폐해진다. 바스라질 듯 위태로운 엄마의 모습에서 나는 엄마의 마음속 어디라도 누구 하나 담겨 있지 않음을 본다. 


  수년 전 엄마는 훌륭한 어머니상을 받았다. 엄마가 품에 안고 있는 시계도 좋은 엄마 표창장에 딸린 부상이었다. 엄마의 표창장 상품을 마련하러 시계방과 다이소를 돌아다니던 나는  무척 고독했다. 하지만 그 고독의 무게는 상장을 만들고 프린트하던 교무실에서의 절박한 슬픔의 무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아픔을 치유해드리기 위해 내가 만든 상장이고 상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마를 위한 위안과 기쁨의 이벤트를 위해 동네 노인회장님을 찾아가 미리 상장 전달도 부탁드렸었다. 


그러나 엄마의 기쁨도 잠시... 상을 수상한 엄마와 커피숍에서 단촐한 축하 파티를 열었지만 엄마는 기쁨의 커피를 반잔도 마시기 전에 또 다시 무기력한 슬픔을 떠올렸다. 이렇게 좋은 상을 타는 자리에 자식들이 모두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것이 엄마가 다시 떠올린 슬픔의 핵심이었다. 그런 엄마 곁에서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엄마가 자식도 타인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결국 엄마를 위해 마련한 기쁨의 향연은 찰라의 섬광처럼 쓱 스쳐지나가고 다시 그가 택한 깊은 슬픔의 안전함과 훌륭한 엄마의 직분이라는 정의로움에 안착하고 말았다. 훌륭한 엄마와 정의로운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식이라는 타인의 삶에 휘둘려가야함을 말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엄마는 기꺼이 그 길을 선택했다. 어쩌면 미토콘드리아일까? 자신의 몸 80%를 숙주에게 내어주고 숙주의 삶의 리듬에 맞춰 자신의 삶의 패턴을 수용하며 생사를 같이하는 .....

 암튼 오늘, 나는 다시 엄마에게 표창장을 드리고 싶다. 거의 3개월 동안 6인실의 좁은 커튼 안에 갇혀 열과 환각과 지루함과 절망에 맞서 싸워 이겨낸 엄마의 투지를 칭찬하는 빛나는 훈장을 하나 달아드리고 싶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엄마 삶의 시계가 건강한 초침 소리를 째각거리며 돌아가는 소리를, 노래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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