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위한 삶의 기술 1.

설탕 나물

by 김은형

20년 전 제자의 어머니가 손수 쑥과 민들레를 캐서 보내셨다. 허리 디스크로 고생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감동은 더욱 컸다. 정갈하게 지퍼팩 두 개에 담긴 봄나물들은 일주일이 넘도록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참한 눈길로 생생하게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그 아름다운 봄나물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사실 나의 봄은 매년 통영 국제음악제와 쑥 도다리 국으로 온다. 꽁꽁 얼어있던 겨울을 박차고 고속도로를 달려 통영에 도착해서 남도의 미지근한 공기가 콧속으로 훅 들어오는 순간 금이 쩍쩍 가는 겨울왕국의 쇠락을 나는 온몸으로 느끼며 전율한다. 거기에 통영 수산시장의 좁은 탁자에 앉아 쑥 도다리 국 한 대접까지 뜨끈하게 들이켜고 나면, 이제 봄은 온통 나의 것이 된다. 쑥 도다리 국, 쑥떡, 쑥버무리, 쑥 된장국.....


쑥 향기는 이렇게 내게 봄을 알려주는 전령사이자 계절 음식이지만 단 한 번도 그것들을 내가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쑥 요리는 할머니와 엄마의 영역이자 전문 식당 요리사의 영역이었지, 내 삶의 영역은 아니었던 것이다. 쑥과 민들레가 우리 집 냉장고에 들어온 이후로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강박이 올라왔다.


“ 허리도 아프신 분이 힘들게 쭈그리고 앉아 하루 종일 캔 나물을 보내주셨는데... 이 소중한 음식을 그냥 버리면 안 되는데... 어쩌나... ”


스마트폰을 늘 손에 쥐고 살다 시 피하면서도 쑥과 민들레 요리법을 검색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쑥과 민들레를 캐본 적도 없었던 나는 습관적으로 누군가가 요리한 결과물인 쑥국과 쑥떡으로만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삶의 습관은 이토록 중요하다. 아니, 삶의 기술은 이토록 중요한 것이다. 어려서 단 한 번이라도 쑥을 캐거나 쑥국을 끓여보았거나 쑥떡을 만들어보았더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당장에 요리를 해서 식탁에 올려 이 봄을 즐겼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늘 ‘어린 막내딸’이었고, 일에 서툰 ‘시원찮음’ 이었기에 봄나물 요리라는 소중한 삶의 기술을 배울 기회를 봉쇄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쑥과 민들레 요리는 아예 내 삶에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쑥과 민들레가 펼쳐진 봄 들판과 봄나물 요리의 세계로 내 삶을 확장할 수 없는?



오늘, 냉장고 안에서 풀죽어 있는 그들과 맞닥뜨렸다. 지퍼팩에서 갈변이 시작된 소중하고 감사한 봄나물들... 제자 어머니의 감동스러운 마음을 떠올리자 나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일단 미나리는 데치고, 쑥은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내고 감자를 썰어 넣고 된장국을 만들었다. 쑥국은 쑥 죽인지 국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수준이었고, 미나리는 참기름을 듬뿍 넣고 무친 까닭인지 아주 먹음직스러운 한정식 집 요리 포스가 느껴졌다. 이토록 정성 담긴 식재료에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대충 먹을 순 없었다.

민들레 나물과 쑥국을 돋보이게 해 줄 테이블 세팅이 필요했다. 봄 들판의 내추럴한 이미지를 담아내면서도 익힌 나물의 컬러를 돋보이게 해 줄 테이블보가 필요했다. 문득 어느 카페 주인이 줬던 커피 포대 생각이 났다. 빨갛고 초록 초록한 커피 열매가 영롱하게 달린 종이포대 위에 비닐이 코팅된 커피 포대! 즉시 과도로 커피 포대를 갈라 테이블보를 만들어서 깔았다. 그리고 그 위에 민들레 나물 접시와 쑥국을 차려놓으니 진짜 봄 내음 가득한 봄 식탁이 완성된다. 하하하. 이런 잔머리가 바로 행복에 이르는 삶의 기술! happy life in style!



다소 설레는 마음으로 쑥국을 한술 입에 담으니

“ 햐~~~~~~ 진정한 쑥 수프 또는 쑥 죽 완성!”

기쁜 마음으로 민들레 나물도 한 젓가락?

“ 캭~~~~~~ 진정한 쓴 나물 또는 쓴 약 완성!”


너무 써서 도저히 나물로 먹을 수 없지만, 귀한 선물이라 버릴 수도 없다. 그렇다면? 쓴 맛을 좀 약화시키면 되지 않을까? 어린아이들에게 쓴 약을 먹인 뒤 사탕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 삶의 순리는 언제나 하나로 통한다. 그럼 정답은 설탕? 하하하



어쩌면 나는 천재다. 직관적으로 설탕을 생각해내고 바로 실행에 옮기는 실천력이라니....

민들레를 다시 요리용 볼에 담아 설탕을 넣고 조물조물 무치며 새롭게 탄생하는 민들레 나물의 새로운 맛의 차원을 생각하니, 조금 설렘?

항상 새롭게 구성되는 세계는 그 자체로 설렘이다.


드디어 완성! 그리고 다시 한 젓가락!


“ 햐~~~~~~~ 설탕 나물 완성 ”


설탕의 단맛이 이토록 웃긴 것인 줄 처음 알았다. 하하하하하

happy life in style!

봄나물조차도 달디 단 꿀 유머로 만들어버리는 삶의 기술이야말로 최고의 삶의 테크닉!

정답은 없다.

그냥 나만의 스타일! 나만의 유니크한 라이프스타일이 바로 우리의 삶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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