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쇠가 내게 말했다

by 김은형


생애 최초로 무쇠와 사랑에 빠졌다. 수년 전부터 여성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르쿠르제, 스타우브, 이케나가, 롯지같은 브랜드의 무쇠솥과 후라이팬은 물론 천연 옻을 입힌 국산 창조명품 주물까지 무쇠 천하였던 시절에도 나는 무쇠 주방용품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유행에 민감하고 잘난척하기를 무척 좋아하는 내가 무쇠 냄비와 후라이팬을 사지 않았을리는 만무하다. 그러나 막상 직접 사용해보니 너무 무겁고 다루기가 어려워서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무쇠 팔 쐬 대가리’라는 별명으로 남성들에게 쎈 여자로 낙인찍혀 터부시 되고있는 개인적인 치부? 또한 내가 무쇠솥을 좋아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삶엔 언제나 반전이 있기에 매력적이다. 얼마 전 대전 프랑스 문화원에 갔다가 주방 카운터에서 고개를 갸우뚱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무쇠 강아지와 마주친 순간 무쇠에 대한 모든 불편한 기억이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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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 강아지는 무쇠처럼 무겁지도, 단단하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손바닥 위에 올려지는 자그마한 모습으로 내게 “괜찮아? Are you ok?” 라며 말을 걸어왔다. 그는 차가운 무쇠가 놀랍게도 포근하고 따듯할 수 있다는 것을 내 생애 최초로 깨닫게 해주었다.


어쩌면 지구상의 사람들 모두가 단단히 연마된 강철이 아닌 연마가 덜된, 물 같고 쇠 같은 존재, 무쇠 같은 존재들이 아닐까? 물(水)과 쇠(鐵)의 합성어인 ‘무쇠’에서 ‘물’은 물이 아니라 묽거나 약하다는 접두사적 의미로 쓰이며 단단하기는 하나 아직 연마가 덜 된 쇠를 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 또한 단단하나 무른 존재들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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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작은 무쇠 강아지는 어쩌면 물 같고 쇠 같은, 따뜻하고 또 차가운, 고집스럽지만 자비로운 음양의 모순을 하나로 안고 살아가는 인간 본성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무쇠처럼 단단하고 차갑지만 네 삶이, 네 하루가, 네 마음이 괜찮은지 궁금하다는 듯 갸우뚱한 몸짓으로 무쇠 강아지는 다시 또 내게 말한다.


“괜찮아?”

“ 괜찮아.”


그래서 무쇠 강아지가 갸우뚱한 고개짓으로 우리에게 전하는 말은 ‘의심’이 아닌 ‘살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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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 마사유키 감독의 일본 애니메이션 <후세: 말하지 못한 내사랑>에서 반인반견의 존재 ‘후세’가 소녀를 사랑하게 되면서 인간을 사냥의 대상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지켜내야하는 존재로 재인식하면서 사람의 영을 꺼내 먹고자 하는 욕망을 이겨내고 사랑도 지키고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는 영웅으로 다시 탄생하는 이야기처럼 이 귀여운 무쇠 강아지 또한 신화적 디테일을 갖추었음은 물론이요 갸우뚱 다정하게 ‘살핌’으로 굳은 모습으로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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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엔 문득 윤동주의 ‘또다른 고향’ 시를 읊조리다 무쇠 강아지를 책을 누르는 문진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어둠을 짖는다.”


그냥 단순히 앉아서 내게 “괜찮아?”라고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장을 눌러주는 문진으로 새로운 쓸모를 찾은 무쇠 강아지는 아마도 오쇼라즈니쉬가 장자 강의를 하며 우리에게 던지는 말을 대신 전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길을 보라. 그리고 무엇인가를 하라. 길을 가고, 행동하라, 생각은 그대를 이끌어 주지 않을 것이다. 오직 행동만이 그대를 이끌어 준다.”

- 오쇼의 장자 강의 『삶의 길 흰구름의 길』 / 류시화 옮김>


지조(志操) 높은 개는

밤을 새워 글을 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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