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 내게 말했다.

by 김은형


“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지 다 빌려드릴 수 있지만, 칼로와 두세, 파캥이 만든 옷을 시시한 양재사에게 맡긴다면 결코 같은 옷이 되지 못할 거에요.”

“저도 시시한 양재사에게 갈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다른 옷이 되리라는 걸 잘 아니까요.” 하지만 왜 그것이 다른 옷이 되는지를 아는 데는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제가 설명할 줄 모른다는 걸 잘 알잖아요. 난 어리석고 또 시골 여자처럼 말하니까요. 손재주나 옷 만드는 방식이 문제죠”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9권 72페이지에 나오는 대화다. 같은 옷이라도 타고 난 손재주와 감각으로 남다른 옷을 만드는 양재사처럼 삶의 품격과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라도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고 싶다. 같은 옷을 새롭게 재단하며 멋진 옷을 만들어내는 양재사처럼 스스로 자신만의 길을 내며 걷는 스승들처럼 격조와 직관을 통해 깨우친다면 내 삶은 또 얼마나 성큼성큼 아름다워질까?


삶의 품격을 가진다는 것은, 격조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시시한 양재사를 선택하지 않고 제대로 된 양재사를 찾아 옷을 수선하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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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스승의 날, 단골 손님 한 분이 거리에 핀 빨강 넝쿨 장미 한가지를 꺽어 스승의날 선물로 레아북카페에 가져오셨다. 커피를 마시면서 레아북카페에서 오다가다 들은 이야기들이 자신의 삶의 지평을 또 다른 세계로 확장시켜 줬다는 요지의 말씀이셨다. 그래서 스승의날 감사의 선물로 거리에 핀 장미를 한가지 꺽어 왔노라고......

참 뜻밖의 놀라운 말씀을 듣고 커피를 내리면서 고객님이야말로 오늘 내게 오신 귀한 스승님이라 말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부처 아닌 사람이 없고 스승 아닌 사람이 없다는 말이 고객이 건넨 장미꽃을 통해 비로소 온전히 이해된 순간이었다.


장미가 내게 말했다. 내 삶에서 마주하는 모든 이가 나를 깨우쳐 주는 스승이자 지혜를 닦게 하는 텍스트 그 자체이니 어떤 인연으로든 누군가를 만나 서로에게 배운다는 것은 아마도 5월에 핀 장미처럼 아름다운 것이니라. 돌이켜 생각해보니 정말 내 삶엔 스승들이 참 많다. 그러니 내 삶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쏘냐?


<간단히 정리해 보는 나를 깨우쳐 주신 스승님들의 역사 >

7세, 아버지 : 모든 액체의 속성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거다.

12세, 담임 선생님: 넌 6학년 3반 부반장이고, 그 사실은 번복될 수 없어!

19세, 고고학교수님: 순리란 배고프면 밥 먹고 똥 싸고 다시 배고프면 밥 먹는 이치다.

20세, 동양사교수님: 난 도발적이고 모험적이고 도전적인 사람들이 좋아.

20세, 서양사학사교수님: 제군들 제멋대로 살아라! 자네 여기 앉지. 창밖 풍경이 내 선물이다.

48세, 부처님을 만나다

49세, 법륜 스님: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라. 오로지 자기만 보고 꾸준히 수행 정진하라.

49세, 오쇼라즈니쉬를 만나다

50세, 보수 법사님: 대가리를 죽비로 쳐서 깨버리고 싶네.

53세, 태극권사부님: 그때그때 상황에 적절하게 변화되는 존재로 자신을 고집하지 않는다.

55세, 이종환대표님: 나는 그 이야기를 듣거나 읽기 전에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죠.

57세, 출판사 시작과 투마치한 나의 욕망들: 욕망을 쫓으면 멍청하게 짐만 나르다 병들어 죽는다.

58세, 교육과휴식 레아북카페 손님들과 일 : 수라상 차리기와 차 내기가 고된 노동이며 카페 에 오시는 진상 고객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카페 자체가 배움의 장임을 알게 됨.

59세, 매일매일 스승을 만나다


59세 6월 21일 새벽, 새벽 어둠과 몰아치는 비바람과 별과 구름과 바람과 시와 꽃과 새와 자연과 비와 태양과 한잔의 커피와 와인에 막걸리까지도... 오늘 아침 초파리가 비행하는 음식물쓰레기 까지도 나를 깨우쳐주는 스승임을 이제 비로소 알겠다. 참 감사한 아침이다.


엄마가 장미에게 말했다.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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