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가 내게 말했다.

by 김은형


“ 선생님! 저 지금 울고 있어요.”


느닷없는 송성우님의 전화에 놀라 “왜? 무슨 일?”이냐고 묻기 전에 그녀가 먼저 말한다.


“ 제가 서울에 있다가 오랜만에 홍천 집에 돌아오니, 옆집 아주머니가 배추 한 통과 양상추 두 통을 들고 오셔서 너무너무 반갑게 반기시잖아요. 두 손 가득 배추를 받아드는 순간 ‘나는 정말 사랑받는 존재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막 솟구치는 거에요. 이 감동을 선생님과 함께 나누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울면서 전화해서 죄송해요”


“ 하하하하 정말 어이가 없네! 하얀 첫눈 보고 감동해서 울었다는 사람은 봤어도, 배추 보고 감동해서 울었다는 사람은 처음 본다. 암튼 참 따뜻한 감동 스토리야! 이웃이 건네는 배추를 안고 사랑을 느꼈다는 건 송성우님이야말로 사랑의 존재라는 이야기일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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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가 이렇게 흐를 즈음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내일 웨딩 촬영하는 딸아이 신부 부케를 찾아서 고속버스 택배로 보낼 시간이라는 신호였다. 송성우와 전화를 끊자마자 부랴부랴 단골 꽃집 <달플로랄디자인>으로 달렸다.

정민웨딩부케2.jpg design by 달플로랄디자인 대표 이달순

“ 꽃 다됐어? 시들지 않을까? 꽃 어딨어?”


꽃집 문을 열자마자 한꺼번에 세 가지 질문을 다 쏟아내며 들어서는 나를 향해 달사장님은 이미 커다란 꽃 꾸러미를 들고 걸어왔다. 달사장님과의 인연은 25년쯤일까? 완전 가족처럼 지내는 지인임은 물론 딸아이의 멘토로 내가 다해주지 못한 삶의 지혜를 대신 나눠주기도 하는 고마운 사람이다.


“ 선생님! 꽃 상당히 무거운데 혼자 들고 가실 수 있겠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 웨딩 촬영 컨셉에 맞춰서 3가지로 만들었어요. 진주 꽃 꾸러미도 만들었으니 신랑신부가 생각한 웨딩사진 컨셉에 맞춰서 쓰라고 하세요. ”


아~~~~ 누구는 배추를 보고 이웃의 사랑을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나는 지인의 손끝에 들린 핑크빛 부케 쇼핑백을 보고 눈물샘이 차오르니 초록 배추와 핑크빛 부케는 단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똑같은 질량의 사랑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우리가 대하는 사람들과 사물들 모두가 그저 달리 보이는 하나의 고유한 형상을 취했을 뿐, 그 안에 담긴 언어는 그것을 바라보고 느끼는 사람들의 감정과 감각에 따라 모두 다르다.


80억 명의 지구엔 80억 개의 서로 다른 감각이 존재한다. 배추와 부케처럼 형태는 다르지만 ‘사랑’이라는 같은 언어로 읽힐 수도 있고, 같은 꽃이지만 축하 화환과 상조 화환처럼 리본의 컬러 하나로 서로 다른 의미로 읽히기도 하는 것이다. 딸아이의 부케를 이토록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달사장님의 마음에 감동해서 나야말로 울면서 송성우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design by 달플로랄디자인 대표 이달순


“ 성우님! 나도 울고 있어. 우리 딸 웨딩 부케를 3개나 만들어준 꽃집 사장님의 마음이 깊은 사랑으로 느껴져서 그냥 저절로 눈물이 나네! 나도 이제 비로소 자기가 이웃집 아주머니가 주신 배추를 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린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것 같아. 배추도, 부케도 사랑이야”


“ 아~~~선생님~~~ 정말 그렇죠? 어떡하죠? 정말 세상이 너무나 고맙고 따듯해서 어떡해요. ”


성우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일까? 아니면 송정희 성우님의 존재 자체가 본디 그토록 따뜻하고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던 걸까? 말 한마디 그 자체가 감동이다.


송성우와 통화를 마치고 유성 터미널 택배 창구에서 부케가 망가지지 않게 운송을 잘 부탁드린다고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초등 돌봄교실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레아북카페로 급히 돌아오는 길, 비로소 딸아이의 결혼이 실감 나게 다가왔다.


딸아이가 이제 완전한 성인으로 자신의 독립된 가정을 가진다 생각하니 스냅사진처럼 찰칵찰칵 아이 성장기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 지나가며 울컥해진다. 아이를 얼마나 소중하게 사랑하며 키워왔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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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가 독립된 가정을 갖게 된다는 사실은 5년 전 직장인으로 내 품을 떠났던 때와는 또 다른 감각으로 장대비 내리는 감정의 숲길을 걷게 한다. 어쩌면 나는 그 거센 장대비 속에서 낯선 외로움과 맞닥뜨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장마가 그칠 즈음엔 아마도 싱싱하고 패기 넘치는 젊은 신혼부부의 힘찬 새 출발을 기뻐하며 춤추고 노래하리란 것을..... 그래서 장마의 시작과 함께 이별이란 정념의 숲을 헤메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일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장대처럼 쏟아져 내리는 속절없는 슬픔의 빗물에 잠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반드시 장마가 지나야 배추도 꽃도 더욱 푸르고 아름답게 성장한다. 우리들의 사랑 또한 그렇다.


design by 달플로랄디자인 대표 이달순


시동 꺼진 차 안에서 급하게 눈물을 훔치고 레아북카페에 들어서니 아이들의 모델수업 열기가 대단하다.


“내가 제일 잘나가”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제법 흔들며 워킹하는 자녀들에게 열띤 응원을 보내는 엄마들의 모습에서 지나간 세월의 나를 본다.


모델수업 받는 돌봄아이들.jpg


“선생님 잘 다녀오셨어요? 많이 피곤해 보이시는데요?”


아마도 저 아이들이 성장하면 내가 피곤했던 것이 아니라 아이와의 이별 예감에 잠시 슬픔에 잠겼던 것이었음을 이해하게 되리라. 그들도 오늘의 나처럼 자녀의 성장과 독립이 대견하면서도 서운하고 애잔하여 슬픔에 잠길지도 모를 일이다.


신이 났던 아이들은 쮸쮸바를 하나씩 입에 물고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갔다. 텅빈 카페에 앉아 나는 다시 배추 한 통과 웨딩부케가 전해준 말을 듣는다.


“어떡하지? 정말 세상이 너무나 고맙고 따듯해서 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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