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잠수함 5.

금은형 단편 연재소설

by 김은형

별생각 없이 초등학교 총동창회에 갔다.

하루 종일 비는 줄줄 내리는데, 모두들 즐거운 얼굴로 축구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배구도 하며 신이 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신나지 않는다. 이유?

동창들이 나를 못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난 아줌마인 것이 좋고, 내가 젊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꼭 날씬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결같은 동창들의 이야기는 나를 실로 충격으로 몰아갔다.

내 마음은 아직도 20대 초반인데, 얼굴과 몸은 38살의 그것보다 훨씬 더 늙어 보인다니 마음만 20대로 동창들을 만난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오늘도 그 연장선으로 조금 우울하다. 하지만 벗어나야지.

난 38세이고, 몸무게는 57kg이며, 미간 사이의 주름이 두 줄 있고, 뱃살이 늘어졌으며, 목소리는 갈라지는 허스키로 중년보다 훨씬 더 늙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미래에 대한 꿈들을 하나 둘 접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해결되지 않는 한 가지!

문득문득 그런 모든 나의 현실을 잊고 20대의 마음으로 행동하고 사유하고 나를 드러낸다는 것이다. 하하하.


나의 답 글이 어쩌면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서 그녀는 미혼의 여성일 것이라고만 상상해왔는데, 그녀의 블로그에 다시 올라온 글을 보니 그녀는 이미 중년의 아줌마인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정말 20대이신 줄 알았습니다. ^^;;


그리고 다시는 그녀의 블로그를 열어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동안의 나 자신이 너무 창피했다. 작품이나 열심히 만들어야지.... 그러나 습관이란 정말 무섭다. 며칠 뒤 작품을 하다 막히자 난 또 인터넷을 연결하고 말았다.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생각보다 물고기들의 입질이 많았나?

어쨌든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남편으로부터 모닝콜을 받은 6시 30분, 평소보다도 30분을 늦게 일어났다.

그런데 아이 학교 데려다주고 직장에 8시까지 출근하려면.....

순간적으로 까마득했다.


돌아오지 않은 남편에 대해 야속한 생각보다는 늦게 일어난 나 자신이 한심했다.

아이를 시댁에 데려다주고 정신없이 서대전 톨게이트로 들어갔다.

그곳에서부터 정신없이 밟았다.

시속 130-150으로.

달리다 보니 한순간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달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나는 왜 달리고 있는 것일까?

순간 액셀에서 발을 떼었다.

달릴 이유가 없었다.


단순히 '지각'만을 모면하기 위해 이렇게 달린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죽음에 대한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의 생활을 재촉하는 것은 강박관념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번쯤 본의 아닌 지각은 있을 수 도 있는 일이 아닐까?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원망스러운 것은 아니다.

다만 쳇바퀴 돌듯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내 삶의 여정이 버거울 뿐이다.

탈선이 용납되지 않는,

늘 가던 길만을 가고 있는 내 모습이 한심스러울 뿐이다.

그여자의 블로그 5.png


오늘은 그녀의 글에 아무런 답 글을 올리지 못했다. 사실 그녀의 블로그에 이젠 그만 방문해야지 하는 결심을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이미 그녀의 블로그는 즐겨찾기에 등록이 되어 있었고, 습관적으로 그것을 열게 되었던 것이다. 혼잣말 말고 그녀의 대표 폴더에도 새로운 글이 탑재되어 있었다.


잠이 깨었다.

아니, 처음부터 나는 잠들지 않았었다.

그러나 난 이제부터 깨어나려 한다.

진부한 나의 사고와 오만과 교만이라는 구속으로부터 스스로 깨어나려 한다.

그동안은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었고, 그들에 의해 나를 확인받고 싶었다.

그러나 이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으로 새롭게 시작하고 싶고, 그를 통해 나를 확인하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가다듬고 싶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힘들어지는 것은,

허황하고 부질없는 말들로 소란스러울 때이다.


소리 없이 물 흐르듯 그렇게 조용히 써 내려가자.

침착성을 잃지 말고, 더 늦기 전에 조금 더 써 내려가야지.

갑자기 어쩌면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인생에 개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혼잣말을 매일같이 중독처럼 읽어간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개입 일지 모른다는, 구속 일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그녀의 블로그를 방문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다녀간 블로그를 클릭했다가, 어제 그녀가 나의 블로그에 접속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저절로 다시 그녀의 블로그를 방문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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