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잠수함 4.

금은형 단편 연재소설

by 김은형

오늘, 중년의 여자가 거울 속에 있다.

긴 웨이브 머리를 한 모습이 버거워 산뜻하게 머리를 잘랐으나,

머리칼만 잘려 나갔을 뿐, 내 안의 세월은 고스란히 중년의 여자로 남아있다.

이런 기분을 우울이라고 하는 걸까?

혹시 나는 지나간 세월을 인정할 수 없는 것은 아닌가?

하지만 아니다.

뭐라고 꼭 꼬집어서 말할 수 없는 복합적인 심상,,,,,,

토요일에 있을 세미나 발표 준비나 열심히 해야지.....

그러나 그러한 다짐에도 불구하고 거울 속의 중년 여자는 나를 보고 웃지도 않고, 책을 펼쳐들 지도 않는다.

오후의 지루한 햇살에 립글로스만 반짝일 뿐.....


갑자기 아마도 엷은 체리빛 립글로스가 어울리시는 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맞나요? *^^* 제 블로그 음악 폴더에 음악 한곡 올립니다. 49번 들어보세요.^^


그녀를 모르지만, 그냥 그녀를 위로하고 싶었다.

내 음악이 그녀를 위로할 수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한편으론 두렵기도 하다. 그녀가 실망할까 봐.


누군가 내게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무슨 일을 제일 먼저 하고 싶냐고.

글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장 하고 싶은 일?

하나. 손잡고 숲 내음 그득한 오솔길 걷기

둘. 숲 속 작은 벤치에 앉아 부질없는 이야기 나누기.

셋. 서로의 눈 들여다보기.

넷. 사랑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하기.

다섯. 지나가는 사람들 쳐다보며 말없이 공감하고 키득거리기.

여섯. 말없이 음악 듣기

일곱. 못생긴 글씨로 편지 나누기.

여덟. TV쇼 프로그램 보면서 깔깔거리기.(멋진 연예인 나오면 괜한 열정에 들뜨기)

일곱. 자전거 타며 바람소리 듣기.

여덟. 좋아하는 그림 보며 한없이 앉아있기. 또는 서있기.(다리 아프겠다.)

아홉. 백화점 아이쇼핑하기.

열. 커다란 유리창이 있는 찻집 창가에 앉아 파릇파릇 돋아나는 가로수 새싹 보 며 행복하기 /쏟아지는 소나기 바라보며 넋 놓기/ 우수수 떨어지는 낙 엽 보며 슬퍼지기/ 하얗게 내리는 눈 보며 사랑에 빠지기


그여자의 블로그 3.png

열하나. 미술관 앞 잔디밭에 누워 책 읽기

열둘. 스카프 휘날리며 공연 보러 가기

열셋. 바카라 크리스털 와인 잔 가득 달콤한 와인 따라 마시기.

열넷. 케이크 가게에서 조각 케이크 고르기.

열다섯. 메이폴 바구니에 따끈한 홍차 담긴 보온병과 신선한 샌드위치, 와인 담아 소풍 가기.

열여섯. 윌리암 모리스의 패브릭이 가득한 우아한 거실에 앉아 창문 너머 정원의 숲 구경하기.

열일곱. 흑백영화 보기.

열여덟. 아름다운 그릇 가득한 간소한 식탁에서의 식사.

열아홉. 펑펑 쏟아지는 눈 속을 차창 모두 내리고 음악 크게 틀고 달리기.

스물. 개구쟁이처럼 장난 걸고 아이처럼 토라지기.

스물하나. 매일매일 이별연습.

스물둘. 사랑한다고 말하기.

아~~~~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 모든 아름다움을 같이 하고 나면 난 얼마만큼 행복해질까? 이별은 늘 연습이 아니고 현실인 것을...... 사랑한다 말해도 늘 평행선 일뿐.

어느 노래 가사처럼 어쩌면 사랑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것인지도 몰라!

적어도 나에겐.

쿠 쿠----

그녀가 언젠가 올린 나의 질문에 답을 보내왔다는 사실에 난 미칠 듯이 기뻤다. 그런데 그녀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나 한 것일까? 저토록 사소한 것들을 갈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의 글을 통해서 나도 그녀의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있는 몇 가지 자격을 갖추고 있음을 알았다.


제겐 보온병과 홍차와 와인과 샌드위치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죠. 메이폴 피크닉 바구니만 빼고..... ^^; 그리고 조용히 함께 음악을 들을 줄도 안답니다.--;


그러나 또다시 그녀에겐 메아리가 없었고, 다만 그녀의 새로운 글이 올라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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