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일기 6일

2020년 9월 28일 월요일.

by 김은형

경주 손님들이 아주 멋진 3가지 선물을 들고 집에 다녀가셨다.


1. 크지도 작지도 않은 덜 익은 늙은 호박

2. 목욕물로 써도 될 만큼 큰 막걸리 2통

3. 썩기 시작한 노랑 복숭아 한 상자


1번은 언니네 갖다 줬고,

2번은 반통이 남았고,

3번은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반절이 사라졌다.


복숭아는 겉과 달리 아랫부분이 썩거나 쪼글쪼글해져 있었다.

사람은 속여도, 계절은 속일 수가 없나 보다.


사다 주신 분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아까워서 그냥 둘 수가 없다.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복숭아잼을 만들기로 결정했으나 우리 집엔 설탕이 없다.

그래서 결국 꿀을 한 컵쯤 부어 바글바글 졸이고 나니

복숭아 잼이 아닌, 복숭아 꿀!

부엌 창밖으로 참 벌 한 마리가 날아와 방충망에 계속 헤딩을 한다.

나는 그의 욕망을 금세 눈치 챈다.

복숭아 꿀!

벌을 속일 만큼 달콤한 꿀을 만들었으니 나는 오늘 완벽하게 성공한 인간으로 재탄생한다.

삶의 성취란, 삶의 완성이란,

어쩌면 썩어가는 복숭아를 복숭아 꿀로 변형시켜 온전한 무엇으로 새롭게 받아들이는 자세가 아닐까?

결국 완벽한 성공과 성취라는 것은 내 마음이 만드는 경계와 규정일 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거나 썩어가는 복숭아처럼 불완전한 것이다.

그러니 지금 우리의 현재가 어떤 모습일지라도 우리는 완벽하고 온전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겉만 반듯한, 힘없이 크기만 한 그 무엇일지라도 우리는 지금 그대로 온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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