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일기

18일, 2020년 10월 12일 월요일. 밥과 삶에 중독된다는 황홀.

by 김은형


디톡스를 위한 단식을 시작하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할 일도 없고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밥을 먹는다는 기계적인 습관 하나가 이토록 강렬한 심적 육적 파동을 가져올 수 있는거구나 싶었다. 밥을 먹지 않는다는 생각만으로 난 이미 허물을 벗은 매미처럼 텅비어 날아갈 듯 헛헛하다. 만약 밥이 사람에게 유익한 것이 아니라면 이 또한 중독으로 분류되었을 것이다.


마침 밥을 먹는다는 기계적 중독은 생명을 이어가게 하고 삶에 활력을 주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가게 하는 생산적 작동을 하기에 병적 중독으로 분류하지 않을 뿐이지, 한 끼를 굶는 것만으로 우리는 사실 배고픔에 안절부절 한다. 만약 이 단식이 스스로 결정한 치료의 과정이 아니라 누군가 강요한 것이라면 엄청난 고통과 갈망과 욕망으로 미쳐갈지도 모른다.

문득 한 생명을 기르기 위해, 또는 존속시키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기획이 숨어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작년에 썼던 책에서 ‘아이를 즐거운 삶에 중독 시켜라’하는 제목으로 글을 썼던 기억이 난다.


먹는 것도 즐거운 삶의 한 부분! 그래서 우린 멈추지 않는다. 아이들의 비행도 그 순간의 즐거움을 주는 부분, 다만 그들의 그것의 폐악을 모르고 달리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더 좋은 가치와 취향과 의미 있는 일들을 습관적으로 하도록 훈련을 시키면 삶의 자양분이 된다. 하지만 본인의 자기선택이 우선되어야하다.


다만 부모와 어른들은 아이에게 다양한 멋진 삶의 경지를 경험하도록 끌어주고 선택은 아이가 하여서 습관적으로 독서하고 음악듣고 여행가고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선행을 행하고 등등등 나도 좋고 너도 좋은 삶에 중독시키면 교육은 따로 필요가 없다. 삶이 그 자체로 교육적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결국 각오를 다짐하겠다며, 간단한 짐을 싸서 두 달 동안 가고 싶던 경주 섭 미용 카페로 향한다.









세시간의 운전으로 지치긴 했지만, 섭 미용 카페의 파초가 있는 정원과 청계들의 꼬꼬댁 소리와 이제 갓 3개월 된 고운이라는 공작 덕분에 온전한 존재로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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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삶에 중독된다는 것은 밥중독만큼이나 황홀하고 생산적인 멋진 일이다.

늦은밤 경주의 지인들을 만나 핑크뮬 리가 한참인 첨성대 앞 모나코 카페에서 가진 즉석 음악회도 너무 멋졌다


우린 좋은 사람들과 예술과 문화에 중독된 여전히 꿈꾸는 키덜트들이다.

황홀한 가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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