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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밀 Oct 20. 2023

청소년 할인이 기쁜 나이, 만 23세

제가 아직 청소년이라고요? 감사합니다.

술과 담배는 스무 살이 되던 해의 1월 1일부터 살 수 있었는데, 당시에 대선 투표는 만 19세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해에 나는 성인이지만 청소년이었다.


티켓을 구매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과 성인 사이의 기준이 모호하다. 청소년은 할인요금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기준 나이가 공연이나 전시 제작사마다, 박물관마다, 유적지마다 제각각이다. 


때문에 공연장이나 전시장, 박물관, 미술관 등을 방문할 때마다 청소년 할인 기준을 유심히 보게 되는데, 2023년 기준 2005년생까지를 청소년으로 보는 경우가 제일 많다. 몇 달 전부터 '만 나이'가 시행되고 있긴 하지만, 아직 사회적으로는 출생 연도를 기준으로 나이를 세는 것에 더 익숙한 것 같다.


이렇게 연나이 20세를 기준으로 세우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연 나이 23세, 연 나이 24세, 연나이 25세, 만 나이 23세, 만 나이 24세......


뮤지컬과 연극 관람을 좋아하는 나는 한 달에 한번 정도 공연장을 찾는데, 공연 제작사의 정책에 따라 청소년이 되기도 성인이 되기도 한다.


저번주 주말에는 전라북도 전주로 여행을 다녀왔다. 한옥마을 근처에 숙소를 잡고 근처를 둘러보았는데, 웅장한 유적이 보였다. 한옥마을 한가운데 위치한 '경기 전'이었다.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이 봉안되어 있는 곳으로 태조의 제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태종 때 지어지고 세종 때 이름이 붙여진 곳인데, 처음엔 '전주인데 왜 경기전이지?'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찾아보니 경기도의 경기는 서울 경(京)에 경기 기(畿)를 쓰고, 전주 경기전은 경사 경(慶) 자에 터 기(基) 자를 사용하고 있었다.


경기전 관람을 위해 매표소로 향했다. 가격표는 성인 3000원, 군인/청소년 2000원, 소인 1000원이었다.

성인 1매를 결제하려고 카드를 꺼내든 그 순간 옆에 있던 친구가 말했다.

"야, 여기 만 24세까지 청소년 할인 된다! 우리 청소년이야!"






만 24세까지 청소년 할인을 적용해 주는 곳은 오랜만이라 반갑고 고마웠다. 기분 좋게 친구 표까지 4000원을 결제하고 입장권을 받았다. 싱글벙글 웃으며 입장하는 나에게 친구는, 1000원 할인받은 게 그렇게 기쁘냐며 따라 웃어주었다. 


사실 천 원을 할인받은 것보다는, 내가 어딘가에서는 아직 청소년으로 분류된다는 것이 기뻤다. 

청소년은 더 마음껏 실수하고 실패해도 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만 23세인 나도 실컷 실패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성인이면 맡은 일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내 안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직 나는 청소년이고 싶은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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