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메밀 Oct 22. 2023

전주에서 영탁 팬클럽 '탁스튜디오'를 만나다

엄마가 부러워하는 '덕질'

여행을 다닐수록 짙어지는 생각은, '계획하지 않았던 일일수록 인상에는 강하게 남고 특별한 기억이 된다'라는 것이다. 이번 전주 여행에서는 10월 15일 일요일 오전이 그러했다.


엄마와 둘이서 전주에 방문한 날이었는데, 둘 다 산책을 좋아하는 터라 숙소에서 샌드위치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우고 '전주덕진공원'으로 향했다. 숙소에서 공원까지는 버스를 이용했는데,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중에 두세 명의 중년 여성분들이 보였다. 각자 파란색 티셔츠에 파란색 신발이나 가방, 모자를 쓰고 계셔서 굉장히 눈에 띄었는데, 한눈에 봐도 어떠한 가수의 팬들이 모인 것으로 보였다.


중학생 때부터 K팝 아이돌로 시작해 일본 가수, 영국 배우, 성우, 뮤지컬 배우 등을 '덕질'해온 나는 나름의 덕질 전문가로서 즉시 '덕후 레이더'를 펼쳤다. 연령대가 주로 40~60대 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요즘 인기를 끄는 트로트 가수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수의 팬덤마다 상징하는 색이 있는데, 파란색은 어떤 가수의 상징색일까 생각하며 걷고 있었다. 마침 우리의 옆을 파란색 옷을 입은 또 다른 무리가 지나가고 있었고, '덕질'해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엄마는 그분들을 호기심에 넘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계셨다.


엄마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으신 듯, 파란 티셔츠를 입은 엄마 또래의 여성분이 넉살 좋게 말씀하셨다.

"오늘 영탁 콘서트예요~ 이따가 오후 6시에!"


엄마는 "아우 그렇구나~ 너무 재밌겠어요~!"라고 하셨고,


그분은 다시 "엄청 재밌어요~ 4시간이나 해요~!!"라고 덧붙이셨다.


언젠가 집 주위 체육관에서 임영웅 콘서트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팬분들이 입고 있던 티셔츠도 파란색 계열이었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 임영웅 팬덤인 '영웅시대'가 아닐까 혼자 짐작하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난 엄청난 실수를 할 뻔했다! 상징색은 팬덤 문화에서 매우 중요한 정체성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바로 검색해 보니 임영웅의 상징색은 하늘색, 영탁의 상징색은 파란색이었다. '영탁 콘서트'라고 검색하니 10월 14일~10월 15일 양일동안 전주에서 콘서트를 한다는 정보가 나왔다. 이제야 이해가 됐다. 


전주 방방곡곡에서 목격되시는 이 파랑 군단은, 어제 콘서트를 관람 후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다음, 오늘 공연을 보기 전에 관광을 하고 계시는 거였다.


전주덕진공원은 잘 관리된 덕진호수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정자, 호수를 가로지르는 깔끔한 다리들과 작은 도서관까지 갖추고 있어 산책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이곳에서 2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그동안 영탁 팬클럽을 100명은 마주친 것 같다. 


엄마 또래의 여성분들이 같은 취미로 알게 되어, 삼삼오오 모여 다니며 서로 사진도 찍어 주고, 수다도 떨며 즐겁게 관광하시는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다. 엄마도 비슷한 생각을 하셨는지, "나도 더 나이를 먹고 할머니가 되면 저렇게 덕질하면서 다니려나?"라고 나에게 물으셨다. 화려한 것을 지양하는 엄마가 딸과 여행을 간다고 큰 마음을 먹고 새빨간 니트를 입고 있었기 때문에, 탁스튜디오 분들의 파랑 모자와 파랑 가방, 파랑 신발과 파랑 우산들과는 더욱이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나는 가능성이 적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특정 연예인을 집중적으로 좋아하시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단 덕질이 아니더라도, 엄마는 딱히 취미가 없다. 앞으로의 인생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것을 즐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청소년 할인이 기쁜 나이, 만 23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