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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메밀 Nov 06. 2023

롤러코스터-가만히 두세요(2000)

번아웃을 겪으며 많은 위로를 받은 곡



왜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시는 가요

팔천삼백구십오일째 난 그렇게 살죠

나는 그냥 평범한 사람 잘하는 게 별로 없죠

차가운 눈초리 난 숨이 막혀


나도 아직 나를 잘은 몰라요

너무 나를 나무라지 마세요

나는 지금 행복해요

지금의 난 만족해요 제발

나를 가만히 두세요


팔천삼백구십육일째 모두들 바쁜가 봐요

그렇게 빨리 뛰다간 넘어져요

정말 슬퍼도 울 줄을 모르고

기쁠 때에도 웃지를 않네요


이젠 행복해지세요

지금에 만족하세요 제발

나를 가만히 두세요


나도 아직 나를 잘은 몰라요

너무 나를 나무라지 마세요

나는 지금 행복해요

지금의 난 만족해요 제발


이젠 행복해지세요

지금에 만족하세요 제발

나를 가만히 두세요


나는 지금 행복해요

지금의 난 만족해요 제발

나를 가만히 두세요



나는 80~00년대 곡을 즐겨 듣는다. 몇 년째 가장 좋아하는 곡은 일본 가수 타케우치 마리야의 'Plastic Love'이다. 느린 템포의 곡들이 내 취향인 것 같다. 작년부턴 우리나라 밴드 '롤러코스터'의 곡들을 자주 듣고 있다. 음악 스트리밍 어플에서 유사한 곡을 자동재생하도록 설정해 놓으면 분위기가 비슷한 곡들이 계속 나온다. 그렇게 처음 접하는 곡들을 흘려보내듯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따금씩 전주 몇 초만 듣고도 빠져버리는 곡들이 있다. 오늘 소개할 '가만히 두세요'가 바로 그런 곡이었다. 


번아웃으로 모든 기력을 빼앗긴 채로 겨우 하루하루를 이어 가던 만 스물셋의 기억.


"팔천삼백구십오일째 난 그렇게 살죠"


제목도 모르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던 나는 저 가사를 듣자마자 정신이 번뜩 들었다. 8395일? 그럼 몇 년째 그렇게 산다는 거지? 계산기를 두드렸다. 대충 내가 그 정도 살았을 것 같은데... 내 예상은 정확했다. 8395를 365로 나누었더니 23으로 딱 떨어졌기 때문이다. 가수는 정확히 지금 나의 상황을 노래로 부르고 있었다. 대충 팔천사백일정도를 살아온 내가 이 곡을 듣고 있었다. 하필 등굣길에 듣고 있자니, 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더욱 공감되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몽환적인 디스코 리듬. 힘을 빼고 부르는 듯한 보컬. 내가 세상에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써 놓은 것 같은 가사까지. 이 곡의 모든 면이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나의 모습에 충분히 만족하는데 왜 주위에서 유난인지. 그 괴리감에 자아를 잃어가고 있던 나였다. 이 곡을 듣고서야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경험을 노래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발매연도를 검색해 보니 2000년. 내가 만으로 한 살도 되지 않았던 시점이다. 그 시점에 이미 만 23세였던 이 사람은 이런 곡을 만들어 세상에 내었고, 그것을 22년이 지나고 만 23세가 된 내가 발견한 것이었다. 


이 곡을 발견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주는 안도감과 위로감. 작사가의 의도는 나 같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감사했다. 이런 것이 바로 음악의 진정한 힘이라는 생각이 절절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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