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프로세스 no.5 / 아이디어 스케치
"이번 주 과제는 아이디어 스케치!
아이디어 많~~~ 이 많이 가져오세요~ :)"
저는 웃고 있지만.
학생들은 아니네요. 한참 아니에요.
세상 근심 다 짊어진 듯한 얼굴입니다.
"얼마나 해와요? ㅠㅠ"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요 :)"
"에????........ 하.............ㅠㅠㅠㅠㅠㅠ"
나오는 건 한숨뿐.
'나 아이디어 없는데, 아이디어 안 나올 텐데...'
걱정만 앞섭니다.
안 그래도 하기 싫은 과제,
영혼까지 끌어모아, 진심으로 하. 기. 싫... 다....
근데요, 여러분. 그거 아세요?
여러분은 이미 디자인의 채비가 끝났어요!
*채비 : 어떤 일이 되기 위하여 필요한 물건, 자세 따위가 미리 갖추어짐
디자인의 채비
디자인을 위한 채비가 끝났다는 것은, 아이디어를 만들어 낼 재료가 모두 갖추어졌다는 뜻이에요. 이제 만들기만 하면 되는데, 재료는 다 갖추어졌는데. 왜 안될까요? 왜 항상 우리는 '아이디어 스케치'라는 요놈이 두려운 걸까요? 아마도 '아이디어'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때문일 텐데요. 뭔가 기발한 아이디어나 완성된 형태를 그려야만 할 것 같지요? 부담감 가득 안고 억지로 스케치를 해 봅니다마는, 하..... 맘에 안 들어요. 구려요. 딱 후져요. 도대체 '이거다!' 싶은 아이디어는 언제쯤 나오는 걸까요?
보통 쓸모없는 아이디어가 100개쯤 쌓이면, 혁신적인 아이디어 한두 개가 나온다고 하는데요. 뭐라고요? 100개당 하나라고요? 100개가 장난입니끄아?! 잠시만요. 진정하세요. 핵심은 100개 가 아니라 그 앞에 붙은 '쓸. 모. 없.는'입니다. 아무거나, 되는 대로, 뒷일 생각 안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리면 된다는 겁니다.
쓸모없는 아이디어.
좀 가벼워졌지요?
네? 그래도 무겁다고요?
그렇다면 제가 극약처방을 내려드리겠습니다.
아이디어 스케치가 무거운 당신! 가볍게 메모 스케치~
아이디어가 100킬로그램쯤 된다면, 메모는 100그램쯤 될래나요?
아이디어라는 무거운 단어는 잠시 내려 두고, 메모라는 작고 가벼운 단어를 살짝이 붙여 볼게요.
메모 스케치.
어때요?
한결 가볍지요?
자 그럼, 가뿐한 마음으로 메모 스케치!
step 1
스케치북을 펼치고. 프로젝트 명, 일련번호, 날짜와 시간, 장소, 공간의 분위기, 나의 기분 등등.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기록할 수 있는 것들을 한쪽 구석에 메모해 봅니다. 일단 뭐든 써넣으면 새하얀 도화지를 마주할 때의 막막함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어요.
step 2
뭐든 그려 봅니다. 손을 움직이면 뇌에 좋은 에너지를 보내게 되고, 그 에너지가 좋은 아이디어로 연결되는데요. 반면 손을 멈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겠지요. 아무것도 없는 종이 위에서는, 아무 생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단 뭐든 메모해 보세요. 디자인의 콘셉트와 전혀 상관없는 것도 좋습니다. 좋은 글귀, 스쳐 지나가는 생각, 좋아 보이는 것들.... 정 싫으면 선이라도 쭉~ 그어 보세요. 무엇이든 생각의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step 3
그래도 영 머리가 안 돌아간다고요? 그렇다면 그동안 모아 놓은 자료들, 분류 맵, 분석 시트, 콘셉트 보드, 죄 다 펼쳐 놓고 다시 훑어봅니다. 어떤가요? 생각보다 내가 가진 생각의 재료(자료)가 참 많지요? 머릿속에 다 넣어 놓은 줄 알았건만, 잊고 있었던 자료들이 엄청 많아요. 인간은 망각의 동물. 잊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놓치고 있던 자료들을 건져 올려 주세요. 마음에 드는 자료는 오려서 붙여보기도 하고, 따라 그려 보기도 하면서요. 이렇게 모은 자료를 자주자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step 4
스케치북에 생각의 재료가 어느 정도 쌓였다면, 이제는 그것들을 연결해 보세요. 서로 만나고 충돌하면서, 새롭고 독특한 무언가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만남을 주선해 보는 거예요. 흩어져 있던 것들을 한 곳에 모으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아이디어는 만들어집니다. 잡스 형이 그랬잖아요. "창의성은 그냥 사물을 연결시키는 것이다." 가볍게, 그냥, 얘랑 쟤를 이어줘 봅시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고요?
그렇다면 제가 얘랑 쟤를 연결하는 과정을 하나 보여 드릴게요.
디자인하고자 하는 대상은 스트리트 퍼니쳐이고요.
먼저 자료 산책을 즐기면서 마음에 드는 것들을 한 장의 종이 안에 담아 볼게요.
▲ 오! 한자리에 모아 놓으니, 이야기가 막 생겨날 거 같아요.
서로 처음 본 사이지만, 제 생각에는 꽤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요렇게, 느낌이 빡! 오는 애들만 한 번 더 필터링해서 본격적으로 만남을 주선해 봅니다. 꽤 잘 어울리죠? 이제 얘랑 쟤랑 알아서 이야기를 시작할 거예요. 귀를 쫑긋 세우고 그 이야기를 받아 적어야지요. 메모 메모, 스케치 스케치!!!
▲ 새로운 만남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네요. 그들의 수다를 모두 다 받아 적습니다. 이 이야기로 시작해서 저 이야기로 끝나는 게 수다잖아요. 앞뒤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받아 적으면 오케이!
▲듣다 보니, 아이디어가 스멀스멀 기어 나옵니다. 아항? 요고 요고 괜찮을 듯한데요? 스케치북을 넘겨서 연필에 힘 좀 주고 그려 봅니다. 오호. 재밌는 데에?
어떤가요? 참 쉽죠? 이렇게 자료를 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을 메모하다 보면 아이디어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세상에 널린 게 자료. 그거 써먹어야지 뭐 하러 애꿎은 내 머리를 쥐어짭니까. 저기 널브러져 있는 쟤와 얘를 일으켜 세워 인사시켜 줍시다. 그들의 대화를 토시 하나 빠트리지 않고 뭐든 메모합시다. 그것들이 모여 큰 산을 이룰 때까지. 아니, 작은 동산이면 충분합니다.
메모 스케치가 모여, 아이디어 스케치가 된다!
티끌 메모 모아, 태산 아이디어
이렇듯 아이디어는 메모의 축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아이디어라는 단어 자체에서 오는 부담감을 내려놓고, 작은 메모들을 쌓아 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처음부터 너무 거창한 아이디어를 내려고 하지 마세요. 스트레스만 쌓일 뿐, 아이디어 발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메모라는 단어에 살짝 기대어 가벼운 마음으로, 유연하게, 슬렁슬렁. 메모 스케치하세요~
어떤까요?
저의 극약 처방.
도움이 되셨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