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 Oct 19. 2021

너의 말들이 제자리를 찾으면



이제 말문이 막 트인 둘째는 

몇몇 단어들을 거꾸로 말합니다.

가방은 바강이 되고, 

두부는 부두, 

나무는 무나가 되지요.

제가 보기에 일부러 뒤집는 것 같지는 않아요.

아주 자연스럽게, 그리고 사뿐히,

그렇게 말하거든요.

아이의 입속에서 순서가 뒤바뀐 말들은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모양을 하고 나옵니다.

저는 그런 아이의 말들이 모두 좋아요.

그 엉뚱한 수고로움이 귀엽습니다.






예래야.

'가방' 해봐.

- 바강

예래야.

그럼 천천히 말해볼까?

'가. . . 방' 해봐.

- 바. . . 강

아니 아니, 예래야.

가!

방!

- 바!

  강!

빨리도 해보고, 천천히도 해보고, 

큰 목소리로 말해봐도, 가방은 바강입니다. 

게다가 아이는 사뭇 진지해요.

저는 뒤집어진 그 말들을 계속 듣고 싶어서

아이 곁에 바짝 붙어 그 재밌는 소리들을 듣습니다.

나의 말과 아이의 말 중 어느 것이 맞는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아요.

그 말들에는 나의 흐뭇한 미소도 묻어 있고,

뒤집어진 말들을 바로 놓아주는 손길도 묻어 있고,

이윽고 제 모습을 찾은 모습을 기뻐하는 

내일의 저도 묻을 테지요.

그렇게 아이의 뒤집어진 말들 여기저기에 

오늘의 우리가 묻습니다.







가운데로 몰린 저 까만 눈동자가 제 위치를 찾고,

거꾸로만 신던 신발을 혼자서도 잘 신게 되고,

뒤집어진 말들이 보기 좋게 제자리를 찾으면,

엄마의 자리는 조금씩 작아지는 걸까요?

나중에, 아이가 많이 자란 나중에, 

이 작은 순간들이 일렁이면, 

이 시간들이 그날의 나에게로 당도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엄마는

부지런히 아이의 구석구석에 

오늘의 엄마를 묻혀 놓습니다.







이전 06화 누구나 한 번쯤, 무지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