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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年 4月 27日, 다롱이와의 운동

오래된 메모

by memo

더는 그대로 둘 수 없었다.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내 도마 위에서 그것들을 다듬고, 끓이고, 식탁 위에 차려지는 순간까지. 발밑을 뱅그르르 돌며 꼭 붙어있던 보리가 없다. 매일 식사를 준비할 때면 어릴 적, 고무줄을 요리조리 넘는 장난을 치는 기분이 들었다. 종종 네 작은 발을 밟아 다치게 한 적도 있었는데 그래도 끝까지 함께 식사를 준비하곤 했다. 네가 먹는 귀여운 밥알들엔 좀처럼 관심 없는 날이 더 많았지만 언제고 함께 준비하고, 밥을 먹었다. 재료들을 다듬다 작은 조각이라도 떨어지면 그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보리가 냉큼 물고 소파 밑으로 사라지곤 했다. 냉장고 문을 몇 번이고 열고 닫는 동안 아무런 기척이 없다. 분명 어디에선가 보리가 와야 하는데. 이 작은 부엌 안에서 아무렇게나 걸어도 상관없어진 오늘, 앙증맞은 소리를 내며 달려오던 네가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났다.




그렇게 울면서 만든 한 끼를 겨우 먹고, 보리의 흔적이 남은 곳을 치우기로 결심했다. 보리가 떠난 후에도 이 집은 그대로였다. 밥그릇부터 목줄, 입던 옷들, 집, 아끼던 인형들까지. 기적처럼 다시 뛰어들어 와 물이라도 마실까 봐 그릇도 비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가끔 보리는 그런 장난을 치기도 했으니까. 혹시라도 장난이 길어지는 건 아닐까. 이번엔 조금 멀리 나간 건 아닐까. 언제라도 총총거리며 올 것 같은 마음에 그냥 그대로 두었다.


그런데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나를 보면 속상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을 먹으면서도 눈으로는 널 찾고, 줄지 않는 물그릇을 멍하니 볼 때마다 엄마는 16년 동안 건강하게 오래도록 함께 지낸 건 우리가 운이 좋은 거라고 나를 달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다롱이와 이별할 때도 그랬었다. 편안히 보낼 수 있는 건 다행이라고. 이별에 덤덤한 엄마의 모습을 보며 어쩌면 이런 게 어른이 아닐까 생각했다. 16년의 시간 동안 반복되던 사소한 일들을 하루아침에 정리한다는 게, 나에겐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97年 4月 27日, 맑음



가족들 모두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내 마음의 준비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더는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종이 박스에 인형, 밥그릇, 옷, 수건. 네가 쓰던 모든 물건들을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익숙한 너의 냄새가 마음을 또 어지럽혔지만 누가 기다리지 않아야 어디서든 씩씩하게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아 물건들을 쌓아 올리듯, 마음을 꾹꾹 눌렀다. 베란다에 아빠, 오빠, 그리고 보리의 박스까지 나란히 쌓였다. 사이좋은 셋의 이름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마음이 괜히 따뜻해진다. 겨울이 되면 옷 박스를 꺼내듯, 조금은 담담하게 널 꺼내 추억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어린 날 내 곁을 떠난 다롱이와 서른이 되어 보낸 보리. 다롱이를 보내며 다신 없을 거라던 그 자리를 보리가 채워주었던 것처럼. 둘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언젠가 만날 거니까.


마지막으로 보리의 박스에 편지 한 장을 넣어두었다. 꼭 만나자. 그때는 내가 기다릴게. 먼저 찾아갈게. 그리고 내가 더 많이 안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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