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산책 미로 속의 소란

느린 걸음의 생존자 #8

by 메모원


“책산 갈까?”

우리 가족의 하루 마지막 일과는 밤산책의 시작을 알리는 암호와 함께 시작한다. ‘산책’이라는 단어만 들리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흥분하는 강아지의 눈치를 피해 서로의 컨디션을 확인하는 부부간의 작은 신호이다.


눈치를 보고 암호를 써야 할 정도로 이 작은 생명체는 생각보다 복잡한 존재다. 자신도 강아지면서 다른 강아지만 보면 온몸의 털을 세우며 짖어댄다. 마치 거울 속 자신을 보고 놀라는 아이처럼. 그래서 우리의 밤산책은 여유로운 산책이라기보다는 정교한 작전에 가깝다.


한 명은 앞서 나가 정찰병 역할을 한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다른 강아지가 있는지 확인한다. 다른 한 명은 뒤에서 우리의 VIP를 달래며 따라온다. 몇 달 전에 허리 수술을 받은 이 작은 친구가 흥분해서 몸을 비틀면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던 우리의 마음도 비틀어지기 때문에 더욱 마음이 쓰이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은 이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오밤중에 아파트 단지를 누비며 강아지를 피해 다니는 부부의 모습이라니. 하지만 웃음 뒤에는 언제나 작은 걱정이 따라붙는다. 저 멀리서 들려오는 짖는 소리에도 귀를 쫑긋 세우는 우리 강아지를 보면, 이 긴장감이 그리 가벼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다시 느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렇게 번거롭고 복잡한 산책이 어느 순간 나에게는 하루 중 가장 평온한 시간이 되었다. TV도 없고 휴대폰도 들여다보지 않는, 오로지 아내와의 협업과 대화만이 흐르는 시간. 물론 주변을 살피느라 온전한 집중은 어렵지만, 그래도 우리는 걸으며 이야기한다.


오늘 있었던 일들, 내일의 계획들, 때로는 별다른 주제 없이 그냥 나누는 말들. 발걸음에 맞춰 흘러가는 대화는 묘하게 다정하다. 어쩌면 우리의 작은 강아지가 준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매일 밤 함께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작은 의무감. 둘이서 하나의 목표를 향해 움직이는 그 순간들. 사소하지만 따스한 연대감이 쌓여간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 번잡한 일상 속에서도,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단단해지는 것들이 있다. 우리의 밤산책처럼. 강아지 때문에 시작된 이 작은 모험이 어느새 하루를 마무리하는 소중한 의식이 되었듯이.


오늘 밤에도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조심스럽게, 천천히, 함께.


물론 그렇다고 밤산책이 늘 여유로운 것은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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