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걸음의 생존자 #10
아침 7시, 알람이 울리기 한참 전에 눈이 떠졌다.
몇 달 만에 다시 찾아온 이 시간의 공기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에 찾아갔던 공간을 다시 방문했을 때의 그 익숙함처럼. 미세한 차이를 머금은 같은 공간이 주는 묘한 기시감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간만에 앉아본 서재의 책상 위에는 이리저리 펼쳐놓은 건축 도서들 사이로 이른 아침의 습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에어컨을 틀지 않은 채로 시작하는 아침이 나쁘지 않다. 약간의 열기와 습도가 내 집중력에 은근한 저항을 반갑게 마주한다. 너무 완벽한 환경에서는 때로 날카로움이 무뎌지기도 한다.
예전 기록들을 들춰보는 시간은 묘하게 즐겁다. 몇 개월 전의 내가 남긴 스케치와 메모들이 지금의 나에게 말을 건다. "이거 기억나?" 하고 묻는 것 같은 연필 자국들. 그때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그렸을까 싶은 다이어그램도 있고, 지금 봐도 꽤 괜찮은 아이디어도 있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종이에 모두 스며들어 있다.
의문을 품고, 추적하고, 검증하고, 기록하는 이 일련의 과정들이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마치 건물을 짓기 전 대지를 읽어가는 과정처럼. 경사를 확인하고, 일조량을 계산하는 그런 꼼꼼함으로 내가 모르는 것들을 하나씩 파악해 나간다.
아침을 주체적으로 시작하니 하루 전체의 동선이 달라졌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설계한 일정으로 하루를 열어가는 기분이다. 언제 어떤 기회가 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기회를 맞이할 준비는 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있다.
8시 30분, 출근 준비를 시작하며 책상을 정리한다. 내일 아침에 다시 만날 이 공간을 위해 오늘의 흔적들을 차곡차곡 정리해둔다. 좋아하는 일을 이어간다는 것은 결국 매일 아침 이 작은 의식을 반복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습한 기운이 남아있는 늦여름의 아침이 책상 위로 천천히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