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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Dec 05. 2018

스마트폰과 카메라 사이의 미궁

카메라 때문에 제법 고통받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아이폰 6s를 아무 생각도 불만도 없이 잘 썼는데, 놀러 갔다와서 찍은 사진을 정리해서 뽑아보니 대단히 대단히 형편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폰을 괜찮은 녀석으로 바꿀 만한 돈은 없고, 게다가 이래저래 뺄 건 마구 빼면서 값은 올리는 팀쿡 체제에 더 있고 싶지도 않아 우여곡절 끝에 안드로이드 진영에서 저렴하면서도 사진은 잘 나오는 화웨이 P9으로 갈아탔다. 


아이폰에서 안드로이드로 이사하면서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얻은 결과는 썩 만족스러웠다. 그 유명한 라이카와 협력하여 만든 카메라는 멋지게 작동했고, 사진마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필름카메라의 감성을 덧입혀주었다. 쓸만한 카메라가 달린 폰으로 일찌감치 옮겨갔어야 하는데 너무 무신경했다고 자신을 탓할 지경이었다.  


농담삼아 하는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아이폰을 쓰는 기간 동안, 특히 아이폰 5s와 6s를 쓰는 기간 동안 나는 인생에서 반드시 기록해둬야 할 만한 장면들과 마주했던 것이다. 여행도 몇 번 다녀왔고, 주변 친구들과 놀기도 많이 놀았다. 그 시간 동안 내가 봐온 장면들이 보잘것 없고 뿌옇고 노이즈 낀 것들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몇 년에 달하는 기억을 심각하게 손상 당한 것 같은 상실감이 든다.


그러니 아주 선명하고 느낌 좋은 사진을 선사하는 P9은 꽤 훌륭한 선택처럼 느껴졌다. 적어도 얼마 전까지는. 어째서인가 하면, P이 저조도에서 아이폰 6s 못지 않게 취약하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 사실 그것을 깨달은 게 그렇게까지 어두운 곳도 아니었다. 책을 읽어도 아무렇지 않을 만큼 적당한 조명이 있는 카페에서 찍은 사진이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정말이지 화웨이에 소송을 걸고 싶을 정도로 한심스러웠던 것이다. 손떨림 방지도 되지 않는데 채도와 선예도가 높다 보니 이미지를 종합적으로 엉망으로 만든 듯 했다. 물론 삼각대를 놓고 좀더 노출을 길게 잡았으면 해결될 일이지만, 움직이는 사람을 찍는 스냅샷을 대체 어떻게 그렇게 찍는단 말인가? 


그리하여, 더 좋은 사진을 남기기 위한 선택지가 몇 개 떠올랐다.

 

1.    더 좋은 화웨이 폰을 산다.   

당장 떠오른 생각이지만 여기에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가 있었으니, 화웨이의 신형 플래그쉽 제품들이 한국에 정식으로 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중고로 사거나 해외 직구를 해야 하는데, 직구는 너무 비싸고, 중고의 경우 직구 폰을 팔면 법에 저촉된다는 이슈가 발생해서 매물이 거의 나오지 않는 사태가 한창 진행 중이다. 


2.    더 좋은 타사 정발 스마트폰을 산다.   

화웨이 폰을 살 수 없다면 다른 폰을 사는 수밖에 없지. 그래서 온갖 순위를 뒤져보고 후기를 찾아보며 백방으로 알아봤는데, 결론적으로 갤럭시 시리즈보다 나은 녀석이 없었다. LG가 고군분투 하곤 있지만 반드시 어딘가 나사빠진 면을 보이는 반면, 갤럭시 시리즈는 S6, 7때 이미 기존 스마트폰 카메라의 한계 같은 것을 박살내고 그 위를 향하는 중이었다. 적어도 광학식 줌렌즈를 써야만 하는 기교가 들어간 사진이 아니라면 미러리스 카메라로 찍은 결과물과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심지어 중고가도 10만원 언저리다. 


다만 여기에도 심각한 문제는 있었으니, 갤럭시 시리즈는 AMOLED라는 시한부 패널을 쓰고 있어서 의심할 여지 없이 화면이 멀쩡한 매물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잘 쓰다가 엇비슷한 가격에 처분하는 것도 불가능할 수 있다. 게다가 이것을 쓰자니 그동안 쓰던 P9의 포지션이 이상해진다. P9을 그대로 메인으로 쓰자니 P9보다 성능 좋은 S7을 저조도 전용 카메라로 쓴다는 게 자원 낭비같고, S7을 메인으로 삼고 P9을 카메라로 쓰자니 밝은 데서만 잘 나오는 물건을 카메라 대용이라 칭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그리고 그간 이 녀석을 최적화하느라 들인 시간이 너무 아깝다. 


3.    카메라를 산다.   

그럼 카메라를 사면 되겠네! 갖고 다니긴 좀 불편할지언정 결과물은 확실히 나을 테니 카메라를 사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겠어! 그렇게 생각해서 카메라도 여기저기 뒤적여봤다. 다만 여기선 익히 잘 알려져있듯 두 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컴팩트 디카와 미러리스 카메라(DSLR은 워낙 커서 논외고). 전자는 조그만 일체형으로 모든 게 끝나고, 미러리스는 렌즈 교환식이라 아무리 DSLR보다 작다 해도 나름대로 부피와 중량을 차지하게 된다. 그래서 딱히 무슨 작품 사진을 찍으려는 게 아니니까 컴팩트 디카를 사는 게 낫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정말 괜찮은 컴팩트 디카는 DSLR보다 훨씬 비쌌다. 덜 괜찮고 저렴한 물건도 분명 있긴 하지만, 그게 갤럭시 S7보다 나을 거라는 확신을 도통 가질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카메라는 판형이 깡패라고 하는 만큼 분명 나은 점이 있긴 하겠지만, 그게 과연 기기 하나를 따로 갖고 다니면서 충전도 하고 이미지도 전송하고 지오태깅*도 따로 해주는 번거로움보다 더 이익이 될 것인가 생각하면 역시 혼란스럽다. (*대부분의 디지털 카메라에는 GPS가 없으므로 사진을 찍은 위치를 입력하려면 스마트폰으로 시간에 따른 위치 정보를 계속 생성하는 앱을 켜놓고 다니다 나중에 매칭하거나, 사진을 일일이 열어서 주소를 쳐넣는 귀찮은 짓을 해야 한다. 안 하면 편할 텐데 위치로 사진 모아보기를 포기하질 못한다)


그렇다면 미러리스는 어떨까? 스마트폰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커다란 렌즈를 용도에 따라 바꿔가며 사용하는 미러리스 카메라는 확실히 S7보다 말끔하고 좋은 사진을 선사할 것…… 같았는데, 검색을 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금손은 뭘 들어도 금손이고 똥손은 뭘 들어도 똥손이라는 말이 있듯, 크고 좋은 카메라를 쓴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리란 법이 없었다. 특히 렌즈에 따라 손떨림 방지 기능이 있고 없고가 달라서, 기껏 크고 좋은 카메라를 들여놓고는 초점도 맞지 않고 별 의미도 없이 피사체의 일부마저 아웃포커스로 날려버린 사진을 찍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그리고 나도 절대 금손은 아니라 그런 사진을 찍게 될 확률이 상당히 높을 게 분명했다. 심지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더 좋은 렌즈를 사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나머지 추가 지출을 감행할 가능성마저 있었다. 확실히 내가 바라는 해피엔딩은 아니다. 게다가 무겁고 두껍기 때문에 일상 속에서 부담없이 갖고 다니다 필요할 때 착 꺼내 찍는 기동성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요즘은 워낙 카메라를 쓰는 사람이 적어서 필요 이상으로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는 점도 걱정이다. 


여행지에 갈 때 카메라를 챙기는 것도 옛말이다. 미러리스쯤 들고 다니면 모두가 '사진 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우유부단한데다 돈도 넉넉하지 않고 선택조차 실수한 나는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중고 장터의 망령처럼 떠돌고 있다. 슬슬 사진이라는 게 과연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회귀할 지경이다. 하지만 사진이란 분명 중요하다. ‘나’가 시간으로 이루어진 존재라면 그 시간을 증명하는 것은 기억이고, 기억을 보존하는 것은 기록이다. 기록의 방식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사진처럼 빠르고 효율적인 것은 없다. 그러니 선명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많이 남기고 싶다면 좋은 카메라로 좋은 사진을 많이 남기는 게 제일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는 것은 참 멋진 일인데, 어쩌다보니 나는 그 반열에서 살짝 낙오되고 만 것이다. 정확히는 빛이 없으면 그저그런 기억을 남기는 존재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연구를 거듭하다보니 천만다행으로 현 시점에서 돈을 더 쓰지 않고 괜찮은 저조도 사진을 남기는 방법이 있긴 있었다. 화웨이 P9은 듀얼 렌즈 중 하나가 흑백인 것으로 유명한데, 바로 이 흑백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아무리 저조도라도 썩 훌륭한 사진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나는 ‘어두운 기억은 흑백으로 남기는 존재'가 된 셈인데, 이 타이틀이 과연 유지할 만한 것인지는 천천히 시험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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