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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ug 27. 2020

게임은 귀찮지만 보상은 받고 싶어


모바일 게임을 좋아하시는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좋아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아무래도 몰두해서 얻어낼 만한 보상이 있을 때만 좋아하는 것 같다. 잘했다고 무슨 상이라도 받아야 열심히 한다는 뜻이다 


상이라니, 게임에 무슨 상을 바란단 말인가? 재밌어서 하는 게 게임이니까 재밌으면 됐지? 

아마 이게 온당한 생각이긴 할 것이다. 나도 예전에는 리듬 액션 게임을 그냥 재미만으로 열심히 하곤 했다. 하지만 리듬 액션 게임이란 근본적으로 내가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화면을 올바른 타이밍에 두드려야 하는 장르다. 게다가 평범한 액션 게임이 두어 대 맞는다고 와장창 망하지는 않는 반면에 리듬 액션 게임은 밀리세컨드의 실수가 당장 평가에 반영되며 만회할 수도 없다. 흐르는 물은 끊임이 없고 항상 이전의 것과 달라 되돌릴 수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야박하고 가차없는 장르다. 


요 근래에는 사는 게 이래저래 피곤해지면서 이런 류의 게임을 편하게 즐길 수가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딱히 노력은 하고 싶지 않지만 재미는 누리고 싶은, 그런 날강도 같은 욕구를 충족하는 쪽으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즉, 대강 팀 관리만 해주면 게임의 메인 콘텐츠(로 보이는) 전투 따위는 자동으로 처리해주는 게임을 주로 하게 되었다. 한때는 ‘자동 전투 게임을 하다니, 그럼 게임을 뭐하러 하는데?’따위 생각을 했던 나도 별 수 없었던 셈이다. 이런 게임을 일각에선 ‘디지털 화분’이라고 부르는데, 제법 적절한 별명이지 싶다. 


요즘 열렬히 키우기 시작한 디지털 화분은 ‘로드 오브 히어로즈’다. 선정성과 과금 유도를 절제한 게임이라고 화제가 된 게임인데, 실제로 게임을 해보니 그림 카드 뽑기로 안달나게 만들지도 않았고, 강해지면서 갑옷을 껴입는 여전사 캐릭터도 있었다. 여캐가 강해지면서 갑옷을 더 입다니! 이 얼마나 참신하고 충격적인 발상인가? 물론 이 게임이라고 해서 노출 부위가 제법 넓은 캐릭터가 없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게임이 이런 경향을 따라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정형화된 돈벌이의 왕도’를 굳이 벗어나는 시도들은 모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로드 오브 히어로즈(이하 로오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다름 아닌 스토리였다. 그간 이 게임 저 게임 한술씩 떠먹어 보면서 스토리가 재미있어 뒤가 궁금했던 적이 없었는데, 로오히는 다소 뻔하지만 알기 쉽고, 굉장히 온당하면서도 뒤가 궁금해지는 얘기를 했다. 정체불명의 마수가 쏟아지고 무슨 ‘기관’이 처리를 하니 마니 하는 흔한 얘기들과는 결이 다른 흔한 얘기였다. 요즘 게임 스토리는 도통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고 맨날 지들끼리 쏙닥거리기 일쑤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나로서는 여간 반갑지 않았다. 


그리하여 캐릭터 육성에 현질은 물론이고 수동 전투까지 해가면서 로오히를 열성적으로 한 끝에 하드 모드까지 깼는데, 아뿔싸, 하드 다음 단계인 엘리트 모드부터는 스토리가 공개되지 않아 백날 싸워봤자 아무 얘기도 들을 수 없는 것이었다.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스토리가 공개 되면 그때 무리없이 볼 수 있게 미리 캐릭터들을 육성해 놓으면 되는 일이다. 그래서 그동안 한 것처럼 줄곧 행동력 소모에 매진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게 보상 없는 노동과 별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한 시간에 한 번쯤 열어서 그때그때 주는 선물을 받고, 광고를 시청해서 보상을 받고, 탐색을 보내고, 돌아오면 보상을 수거하고 다시 탐색을 보내며, 길드 레이드에 참전한다. 하루에 한 번씩 돈을 주는 던전과 경험치를 주는 던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클리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행동력이 한계에 달하면 보상이 괜찮은 지역에서 자동 전투를 반복시켜서 행동력을 자원으로 변환하는 것은 당연한 일상이다. 


이건 생각하기에 따라선  이건 누가 하루에 얼마를 주고 하라고 시켜도 하기 귀찮은 노동이다. 캐릭터를 육성하는 것 자체를 보상으로 여겨야 하는 구조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돈과 수고를 들이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세대/혹은 성격인지라 캐릭터를 육성한다는 사실 자체로 그 수고를 능가하는 쾌감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요컨대 내게 캐릭터 육성은 스토리를 보기 위한 수단이었는데, 스토리라는 보상이 끊기니 일종의 하이테크 다마고치 돌봄 노동과 디지털 자원 채굴로 인한 기기 혹사 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지금은 ‘계속 차오르는 행동력으로 애들을 키워두지 않으면 손해야’ 라는 심리로 붙들고 있다. ‘매일 다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돈이 있으면 꼭 쓰실 겁니다. 그런 돈이 어디 있냐구요? 그건 바로 시간입니다’ 따위 교훈을 자신의 하루에는 적용하지 못하면서 이런 데에선 이상할 정도로 성실하게 떠올리게 만드는 게 게임의 무서운 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손해보지 않으려고 움직이는 게 그리 즐거운 경험은 아니라는 생각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기왕이면 게임에 쫓겨다니기보다는 게임을 쫓아가고 싶다. 나를 쫓아오는 것은 일상의 무력감과 나태함, 그리고 자기 혐오와 우리를 피할 수 없는 죽음으로 이끄는 시간의 흐름으로 족하다. 


자다 깨서 행동력 소모를 하다 보면 생활이 뭔가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한다


몇 년 전부터 매우 실현되기 어려운 서비스 하나가 나오길 바라고 있는데, 콘셉트를 간략히 말하자면 '내가 플레이 중인 모바일 게임 계정을 맡기면 로그인과 일일 퀘스트를 모조리 대신 해주는 서비스'다. 예전에는 게임을 덜 하기 위해 노력하고 돈을 쓰는 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하기는 싫지만 도저히 놓을 수는 없는 심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이것도 제법 반길 사람이 많을 것 같다. 남의 고양이 귀여워하기만 하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 랜선 손님처럼 내 계정을 랜선 플레이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랜선 랜선 플레이가 되겠지만…….  


게임을 다 때려치우고 삭제한 뒤 로그인 도장 안 찍어도 되는 평온한 인생을 즐기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종종 있다. 실제로 해보면 뭐 하다 말고 앱 실행해서 터치 몇 번 하는 그 사소한 짓을 안 하는 게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이제 주변에서 매일같이 게임 얘기를 해서 끼고 싶으면 안할 수 없는 나이도 환경도 아니니까 그렇게 하는 게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선뜻 그럴 수 없는 것은 게임이 언젠가 나를 행복하게 해줄 거라는 희망 때문이고, 그 희망이 현대 게임 산업의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다만 '인생이 고통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느끼는 찰나의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처럼,  게임 역시 노동의 연속이고 그 속에서 느끼는 찰나의 보상으로 매달리는 것이 되었나 생각해보면 마음이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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