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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r 06. 2021

커넥티드 북페어 탐방


저번 주에는 처음으로 독립서적 행사에 다녀왔다. 요즘 도통 바깥 구경을 하지 못해서 어디 가까운 데라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상수역 인근에서 커넥티드 북페어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다녀온 것이다. 


처음에는 그냥 혼자 훌쩍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그것도 너무 심심할 것 같아서 가까이 사는 후배 임군과 강군에게 연락했다. 어지간히 책을 많이 읽는 임군은 예상 외로 사람이 너무 모여 있어서 싫다고 했고, 활동적인 강군은 흔쾌히 가겠다고 했다. 하기야 안전을 생각하면 그런 오프라인 행사는 가지 않고 책을 온라인으로 사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미리 말해두자면, 여러가지 이유로 독립서적, 독립서적 행사의 매력은 철저히 오프라인에서만 느낄 수 있다.


아무튼 네 시 좀 넘어서 강군을 만나 행사장으로 갔다. 행사장은 낡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옛스럽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카페 건물이었고, 요즘 필수적으로 하는 입장 절차를 거치다 보니 나름대로 줄이 늘어선 상태였다. 기다리는 동안 관객들 사이에서 어떤 공통점을 발견하진 못했다. 비교할 만한 동인 행사인 코믹월드 등에선 관객들 사이에 뭐라 말할 수 없는 마니악한 분위기 같은 것이 공통적으로 감돌곤 했는데, 그것은 단순히 그 방면의 마니악함이 알기 쉬운 방식으로 발현되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쇼핑을 마치고 1층에서 커피를 마시며 뭘 샀는지 얘기하는 재미가 있을 법했다


입장하고 보니 층은 3층과 2층 두 개층을 쓰고 있어서, 3층부터 구경하고 내려오는 방식이었다. 행사장의 넓이는 점포라고 치면 넓지만 행사장이라고 하면 좀 아담하다고 할까?  공간을 한 바퀴 도는 동선이 짜여져 있고, 그 좌우로 부스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그야말로 소규모 행사라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진짜 소규모 행사는 더 작다는 걸 알지만, 내가 주로 다녔던 대형 동인 행사에 비하면 그렇다는 소리다.


그런데 동선을 지나면서 좌우를 모두 보지 않을 수 없었고, 판매자들이 잊혀진 문화의 수호자처럼 판넬 뒤 같은 곳에 숨어있지도 않아서 부담스러운 감이 없지 않았다. 나의 대인 기피적인 성향 때문이 아니더라도, 물리적으로 거리를 두기 어려운 데다가 판매자들, 즉 대체로 작가들이 자기 작품에 대해 굉장히 열성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서 책을 구경만 하고 돌아서기가 심하게 미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분위기는 생각보다 훨씬 밝고 좋아서, 하나의 동호회 구성원들이 모인 장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달리 말하자면 모두가 취향이 같거나 비슷해서 ‘영업’이 먹힐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만 모인 세상 같았다. 대형 동인 행사에서는 잘 느낄 수 없는 분위기다. 그쪽은 서브컬처 전반을 다룰 경우가 많고, 한 작품(장르)만을 기반으로 한 행사라 하더라도 그 안에서 타협이 불가능한 취향의 벽이 이리저리 세워져 있곤 해서 ‘제 책이 이런 책입니다!’ 하고 누구에게나 직접 설명할 순 없는 탓이다.


그에 비해 북페어는 그런 거대한 벽 안쪽의 동류만이 모여 모두가 서로에게 얼마간의 호감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고, 판매자들은 대체로 에너지가 가득해 보였다. 대학교 축제나 바자회 같은 활력과 동질감이 있었다. 덕분에 강군과 나는 생전 처음 보는 판매자들의 책을 구경하고 설명을 들으며, 간단한 질문이나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다. 나는 이런 대화에서 쉽게 피로를 느끼곤 하는 성격인데, 이곳에서는 딱히 그런 느낌이 없었다. 여행지에서 잠깐 만난 한국인과 두어마디 했다고 피곤해지진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그건 그렇고 대량의 독립서적들을 이렇게 한데 모아놓고 구경한 것은 처음인데, 내 예상보다 훨씬 책의 품질이 훌륭했다. 내용까지 다 본 게 아니라 내용도 모두 멋지다고 감탄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책이라는 형식을 가진 상품으로서 큰 손색은 없는 것 같았다. 최근에 대히트했다는 에세이 시리즈인 “아무튼” 시리즈와 비슷한 정도의 에세이, 여행기가 제법 많았고, 직장인 모임 문집, 사진집이나 만화, 잡지, 인터뷰집도 볼 만했다.


그것들을 쭉 구경하고 상상 이상으로 큰 지출을 하면서 느낀 것은, 독립출판물과 비독립출판물의 경계는 책의 내외적 품질이 아니라 ‘기대할 수 있는 수요(시장성?)’에 있다는 점이었다. 간단한 예로 내가 직접 전자출판한 “먼 길로 가는 다카야마”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썩 나쁘지 않은 다카야마 여행기지만, 제아무리 잘썼다한들 다카야마 자체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더러 책의 분량도 적고 작가인 나도 일개 소시민 이하에 불과하니 출판사가 나서서 온갖 비용을 들이면서 1000부를 찍어볼 합리적 판단 근거가 없다. 이런 것들은 작가가 어떤 뜻을 이루기 위해 직접 나서야 책이 된다. 그것이 로또를 사는 심정 때문이든, 아니면 단지 직접 쓴 작품을 완결된 형태로 보유하고 싶기 때문이든, 모험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모험의 결과물을 내놓는 과정의 난해함이 일종의 관문 역할을 한 탓인지 언뜻 보기에 책들의 내용도 좋고 보기에도 좋았다. 이런 것들은 정말 빼어나지만 독립출판물로 만날 수밖에 없겠구나 싶은 것들도 많았다. 특히 마음에 든 것은 ‘대화의 모양’과 ‘Free not free’. 전자는 간단히 말해 일반인 인터뷰집이고 후자는 프리랜서 매거진인데, 둘 다 책이 잘 만들어진 것은 물론이고 남 얘기가 아닌 듯 느껴지는 절실함이 있었다(실제로 남 얘기가 아니고). 아마도 이렇게 일반 서점에서는 만나기 힘들 수작을 만날 수 있다는 게 독립 서적의 매력이리라.


그밖에도 많은 책들이 순도 높은 경험의 결정체였고, 작가들이 자기 나름의 기쁨과 열의를 갖고 이들을 소개하는 모습은 건강해 보여서 호감이 갔다. 물론 개중에는 읽고나서 괜히 샀다 싶은 책도 있겠지만, 적어도 그 자리에선 모두 사고 싶다는 충동을 많든 적든 느꼈다. 그 결과 ‘지금 돈을 이렇게 쓸 때가 아닐 텐데.......’ 싶을 정도로 지출이 심했는데, 돌아와서 책을 늘어놓고 후회하진 않았다. 이것도 아마 경험적 소비의 일종일 것이다.

구입한 책들. 동인지를 잔뜩 사와서 늘어놓고 구경하던 시절의 기쁨을 다시 맛보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기왕 밖에 나온 거 대형 서점에도 들렀는데, 당연히 기막힌 베스트셀러가 즐비했지만, 살아 숨쉬는 듯한 매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아마 그 작품들의 작가들이 나와서 직접 판다 해도 독립 서적 행사의 매력은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것도 결국 ‘나만 아는 맛집일 때 좋았다’는 식의 홍대 감성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독립 서적 행사가 아무리 좋다 해도 지방 사람들도 마음편히 훌쩍 서울까지 올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온라인 판매 사이트도 활성화되면 좋겠는데, 이번 것까지 합쳐서 두세 번 본 독립 서적 행사 사이트는 하나같이 이용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았다. 대문짝 만한 표지만 주르륵 나열돼서, 클릭을 해야만 제목과 짧은 설명을 보여주는 방식들이었던 탓이다. 그냥 뻔하디 뻔한 쇼핑몰처럼 왼쪽에 상품 사진, 오른쪽에 상품 설명, 클릭하면 상세 내용이 나오길 바라는 건 너무 낡은 감성일까?


물론 감성 탓만 하자는 건 아니다. 클릭을 해야 제목과 내용을 보여주는 방식이면 일단 표지 디자인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건 저자본 시장과는 어울리지 않고, 자기 책을 앞에 두고 어떤 경험 끝에 무슨 의미로 만든 책인지 생기 있게 설명하던 작가들의 에너지를 만 분의 일도 담지 못하는 방식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접근성을 더 높여주면 좋겠다. 이 희귀하고 좋은 책들을 나만 보긴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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