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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an 20. 2021

무선 이어폰 앞에 무릎꿇으며

나는 무선 이어폰 반대론자였다. 유선 이어폰 원리주의자라는 말이 맞을지도? 아무튼 3.5파이 이어폰 단자의 퇴출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편이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무리 멋지고 끝내주는 스마트 기기가 나와도 3.5파이 단자가 없다면 매력의 20% 정도는 증발한 물건으로 느껴진다. 너무 멋진 사람이라  얘기를 좀 나눠봤더니 '소설 같은 걸 뭐하러 읽죠?'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된 듯한 느낌이다.


물론 사람이 꼭 소설을 읽을 필요는 없다.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는 교양서를 열심히 읽는 것이 인생에는 더 실질적인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무형의 가치를 진심으로 믿거나 타인의 삶을 상상해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바빠서 소설을 안 읽는 사람은 그러려니 하겠지만 소설의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을 것 같다.


얘기가 한참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는데, 어쨌든 이어폰 단자라는 가능성 하나를 차단한 처사를 나는 아주 싫어한다. 일단 나의 기기 이용 패턴과 정면으로 부딪치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 이동할 때 이 기기 저 기기 쓰면서 필요에 따라 이어폰을 이쪽으로 저쪽으로 옮겨 꽂곤 한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태블릿이나 게임기로 게임을 하는 식인데, 이어폰 단자가 없는 기기를 쓰면 그때마다 젠더를 따로 꽂든지 무선 이어폰을 다시 페어링하든지 해야 한다. 물론 요즘이야 멀티 포인트 같은 기술도 많이 나와서 나아졌다지만, 체험해 본 바로는 이게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해서 영 신뢰할 수가 없다. 단자를 연결하면 반드시 되는 유선 기술에 비하면 천지차이고, 지하철에서 이게 왜 안 되나 하면서 블루투스를 껐다 켰다 연결을 취소했다 다시했다 한다고 생각하면 성가시기 짝이 없고, 종종 볼 수 있듯이 '소리가 스피커로 나오고 있는데 나는 연결이 되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할 지경이다.


안전하고 번잡할 일 없는 집에서만 쓴다고 생각해도 이어폰 단자 없는 기기가 딱히 더 나아질 구석은 없다. 나는 책상에 오디오를 놓고 AUX 단자를 필요한 기기에 연결해서 쓰곤 하는데, 단자 없는 기기를 쓰자면 또 젠더를 거쳐야 하는데다, 충전과 동시에 쓰자면 돈을 더 들여서 충전까지 지원하는 확장형 젠더를 마련해야 한다. 돈도 더 들고, 미관상으로도 나쁘며, 사용성도 그닥 좋지 않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쓰라고 만들지 않았겠지만, '제조사가 상정한 일반적 패턴'에 맞춰서 돈을 더 들이고 내 기기 사용 방법을 바꾸라니, '무선 환경 정착금' 같은 게 나오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줄 의리는 없다.


그리고 최근에 겪은 일인데, 온라인으로 이런 저런 모임을 하는 동안 '이어폰 단자가 없는 신형 기기'를 쓰게 된 사람이 맞는 이어폰을 찾지 못해서 모임이 지연되는 사태를 두 번이나 겪었다. 아무거나 대충 갖다 끼우면 되던 시절이 끝나면서 일어난 해프닝인데, 아주 작은 소집단에서도 이 지경이니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활동을 하게 된 사람들 중 몇 명이 또 이런 벽에 부딪혔을지 생각하면 까마득하다. '아니, 왜 그거 준비가 바로 안 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나도 잠깐 그렇게 생각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장비가 없거나 관련 지식이 없다. 정보 취약층은 더 그렇겠지.


기술의 발달 자체는 반길 일이지만 멀쩡히 밟고 있는 땅을 밀어버리는 방식으로 수용을 강제하는 건 가히 폭거라고 할 만하다. 음성 ARS따위는 낡은 방식이니까 완전히 없애버립시다! 하고 보이는 ARS만 남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짓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잘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는 것을 몇 번 경험하고 보이는 ARS도 쓰지 않는다. 부모님이 물었을 때 설명할 자신도 전혀 없다.)


그런데 앞으로도 한결같이 유선 이어폰을 고집할 것인가? 하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다고 자신 있게 대답하진 못하겠다. 당장 코로나 19때문에 장시간 외출도 줄었고 외출하면 마스크를 쓰는 통에 귀 언저리가 상당히 복잡해져서 이어폰을 쓸 일이 있으면 무선 이어폰을 쓰고 있다. 가끔 옷깃에 스쳐서 이어폰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리고 충전을 해줘야 한다는 것을 제외하면  한 기기만 쓰는 환경에서 간편하긴 하더라. 주머니 속의 장난꾸러기 요정이 꼬아버린 이어폰 줄을 푸는 데에 한참 시간을 죽였던 것을 생각하면 압도적으로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것을 보면 몇 년 후에는 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무선 이어폰을 예찬하게 되지 않을까 싶은데,  무선 이어폰이 표준이 되어 시장에서 유선 이어폰이 거의 사멸하고 나면 또 어느 회사에서 '아날로그 신호의 끊김 없는 감동은 무선으론 전할 수 없다'는 마케팅을 펼치며 독자 규격의 이어폰 단자를 되살릴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 또 연인끼리 이어폰을 좌우로 나눠끼고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이 SNS에도 범람하고 청바지에 흰 셔츠 차림으로 모자 쓰고 찍는 웨딩 사진에도 쓰이겠지.......


아무튼 기술의 발달은 멋지지만 그게 사용자의 선택권을 공익적 사유 없이 제약한다면 마냥 반길 수 없다. 기술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삶의 질 개선이지 부의 창출이 아니지 않은가?




(*추신: 이용중인 스마트폰은 음질 좋기로 유명한 LG G8, 무선 이어폰은 가성비 모델로 유명한 QCY T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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