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의 화제인 '쿠키런 킹덤(쿠킹덤)'을 벌써 네다섯 번 지웠다가 다시 깔아서 하고 있다. 할 거면 하고 말 거면 말지 그게 뭔 짓이죠? 라고 비난해도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 어차피 할 거면 계속 할 것을 뭐하러 지우고 깔며 우주의 한정된 에너지를 낭비했단 말인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진짜 변명을 하지 않으면 글이 나아가지 않을 테니 이 경위에 대해 이야기하자. 일단 설치한 이유는 내게 '남이 많이들 하는 게임은 일단 해보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나 재미있다면 나도 해볼까....'로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이다. 가상 화폐나 주식과는 달리 모바일 게임을 맛보는 데에는 딱히 돈이 들지 않으니까, 고작 그 정도의 품을 들여 소속감도 느끼고 최신 트렌드도 따라갈 수 있으면 뭐 그럭저럭 괜찮은 일이 아닌가 말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지웠는가? 여기서부터 좀 요상한 얘기가 되기 시작한다. 나는 '정말 재미있는 게임은 지워버리는 습성'도 있다. 얼핏 들으면 '정말 사랑해서 헤어졌다'도 아니고 이 무슨 정신 나간 소리인가 싶지만, 여기에는 혼자서 자신을 관리해야 하는 자유직업자의 애환이 있다. 요컨대 너무 재미있으면 열심히 하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는 말이다. 서른도 한참 옛날에 지난 마당에 고3 수험생처럼 그런 걸 신경 쓰고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배움과 자기 관리는 평생 소홀히 해선 안 되고 '쉬운 쾌락'은 앞으로 더 경계해야 할 테니 괜한 부분에서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진 말자.......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나는 하스스톤과 레전드 오브 룬테라, 매직 더 개더링 등등 재미있기로 정평이 났거나 개인적으로 큰 재미를 느꼈으며, 가만 놔뒀다간 한없이 붙잡을 게임들을 지우는 삶을 살아왔고, 결과적으로 '정신 없이 빠져들 정도는 아닌' 게임들만 즐비하게 깔고 가끔씩 건드려보는 어정쩡한 게이머가 되고 말았다.
쿠킹덤을 지운 이유도 지나치게 재미있어서 시간을 너무 빼앗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류의 게임이 흔히 그렇듯이 주어지는 스태미너 따위를 다 쓰고 나면 레벨이 올라서 스태미너가 다시 차는 등의 사태가 자주 일어났고, 나는 그런 식으로 '가만 있으면 손해 보는 감각'을 견디기 힘들어해서 좋든 싫든 오래 붙잡을 게 뻔했다. 금방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보상이 연달아 나오는 것도 보상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으로서 경계할 요소였다. 결국 지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지웠던 게임을 다시 설치할 건 또 뭐란 말인가. 이는 게임의 재미는 무시하고 잊어버릴 수 있으나 남들 얘기와 트렌드에 끼고 싶은 욕구는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들 무슨 쿠키가 귀엽다느니, 무슨 시스템과 운영이 별로라느니 하는데 혼자 멍하니 있자면 과히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어릴 때 너도나도 다마고치를 사서 그 얘기만 하는 와중에 혼자 못 사서 구경만 하다가 유행이 다 지나간 후에야 겨우 하나 얻어서 재미없게 갖고 놀았던 적이 있는데, 그때의 아쉬움이 뼛속 깊이 새겨진 나로서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목마른 사슴이 물을 찾듯이, 기력이 없는 현대인이 종합 비타민을 먹듯이, 쩍쩍 갈라진 소속감의 논밭에 물을 대는 농부의 심정으로 대세 게임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변명은 됐으니 슬슬 게임 얘기를 하자. 그렇게 여러번의 갈등을 겪은 끝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쿠키런 킹덤은 먼 옛날부터 있었던 도시 경영+자원 관리+롤플레잉 게임의 일종이다. 이런저런 건물을 지어 도시의 모양을 꾸미며 하위 자원을 생산하고 상위 자원으로 가공하는 동시에 스테이지를 따라가며 쿠키들을 육성해서 전투를 치른다. 야박하게 말하자면 새로운 점은 그닥 없는 셈이다. 하지만 검증된 시스템이 조합된 만큼 학습할 필요 없이 곧장 할 수 있고, 믿음직한 평타가 보장되어 있다. 감성이 메마른 탓인지 일본식 서브컬처에 매몰된 탓인지 그닥 관심도 없었고 귀엽게 느껴지지도 않던 쿠키런 세계관도 보다 보니 소소한 재미가 있고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클리셰 대사도 반갑고 즐겁다. 공들여 입힌 성우 연기도 듣기에 즐거워서 이벤트가 시작되면 볼륨을 높인다. 이대로라면 정이 들어서 피규어 하나쯤은 사려 들지 않을까?
하지만 오랜 보드게이머로서 느끼는 쿠킹덤의 가장 큰 매력은 ‘보상을 받을 루트가 대단히 많다’는 점이다. 뭘 짓거나 만들거나 스테이지 몇 탄을 깨라는 기본적 진행 방향을 따라갈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소원 나무’와 ‘곰젤리 열차’ 건물을 이용할 수도 있는데, 이것들은 요구되는 자원 서너 가지 또는 너댓 가지를 모아주면 얻기 힘든 고급 자원이나 왕국 경험치 따위를 보상으로 주는 시스템이다. 왕국 경험치가 왕국의 발전도를 가늠하는 척도임을 생각하면 유럽식 전략 경영 보드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승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덕분에 ‘빨리 이걸 모아서 저걸로 바꾸고, 곧바로 열차로 보내서 점수를 벌어야겠고, 만들어지는 사이에 다음 스테이지를 돌아야지’ 같은 짤막한 계획을 즐길 수 있다.
아무리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도 눈에 보이는 단계를 진행하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자면 퍽 즐겁다. 게임 속의 하잘 것 없는 세계라도 내가 선택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결과를 좌우하는 느낌도 들고, 어렵게 느껴지던 일을 마침내 해결하고 보상을 받으면 그게 실생활과 하등 관련없는 것이라도 보람이 느껴진다. 하기야 뇌 입장에서는 보상이 실제의 보상인지 허구 속의 보상인지 알 바 아니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다.
아무튼 코로나 19 확산, 그리고 주변의 취향과 맞물려 한동안 이런 류의 선택과 보상을 맛보지 못했던 내게 쿠킹덤은 새롭지 않아도 훌륭한 게임이었다. 그래서 협찬을 받은 것도 아닌데 만나는 사람마다 해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이렇게 글도 쓰고 있다.
하지만 게임이 항상 쭉쭉 뻗어나가는 기분을 느끼게 설계된 것도 아니고, 설정된 보상을 쫓아가는 일이 괜한 노동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도 아니라, 앞길이 턱 막히거나 아레나 입장권 따위를 ‘손해 보지 않으려고’ 억지로 소모하는 짓을 반복하고 있자면 쿠킹덤을 지워서 신경 쓸 거리가 하나 줄어든 그 고요함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 헛짓을 할 시간에 쌓여있는 책 한 장이라도 더 읽는 게 낫지 않을까? 이 짓은 대체 언제까지 하게 되는 거지? 처럼 허망하고 냉소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분명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단어 하나를 더 외우거나 사놓은 책을 읽거나 다큐멘터리라도 보는 게 삶을 더 높은 위치로 올려주고 현실의 승점을 얻는 길이다. 그러나 쓸모 있는 일만 하는 것이 이상적 삶이라면 맛있는 음식은 왜 먹고 여행은 뭐하러 가겠는가? 김영하 작가의 '해돋이를 보는 건 인생에 아무 쓸모도 없지만 아름다운 것을 보고 감동할 때 자신이 인간임을 알게 된다'는 말처럼, 게임처럼 쓸모없는 짓으로 즐거움을 느끼는 것 역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일 것이다.
다만 모바일 게임의 패러다임이 실생활에 침투해서 사람을 자꾸 안달나게 만드는 쪽으로 굳어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므로, 즐거움과 초조함 사이에서 적당한 타협점을 찾아낼 생각이다. 그런 이유로 쿠킹덤의 알림을 모조리 꺼버리고 생각날 때만 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생각이 자주 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게임들이 그렇듯이 시간이 지나면 내가 뭘 해야 하는 순간의 주기가 점점 길어질 테고, 주변 사람들도 하나씩 떠나가리라. 그렇게 해야 할 이유와 하지 않을 이유의 저울이 하지 않을 이유 쪽으로 기울고, 나는 모바일 게임이 선사하는 마지막 선물인 자유를 안은 채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나서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