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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ul 07. 2021

내 몸에 꼭 맞는 나이와 행복을 찾아서

최근에 나이를 먹을수록 사는 게 더 즐겁고 신나게 되었다는 얘기를 어디서 본 적이 있다. 일단 긍정적이고 멋진 사고방식이라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 내 의견이다.


나이를 먹으면, 또는 경험이 쌓이면 취향이 정립되어 자기가 즐기던 것을 더 깊이 있게, 즐겁게 즐길 수 있게 되긴 하는 것 같다. 즐거움에 능숙해지는 셈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에 뛰어들 자신이나 여유는 줄어들기 마련이고, 삶의 변화폭도 좁아질 수밖에 없다.


요컨대 능숙해진 삶을 조명하면 나이 먹을수록 멋진 삶이 되고, 여유를 잃고 비좁아진 삶을 조명하면 유연성을 잃고 판에 박힌 인생살이가 되는 셈이다. 인생살이 다 마음가짐에 따른 것이니 좋은 쪽을 보고 살면 즐겁고 행복한 삶이 된다는 식의 행복 전도사 같은 소리는 아니고, 삶을 따져 보는 데에도 여러 관점이 있으니 나이를 먹어서 즐겁다 슬프다 간단히 이야기할 건 아닌 것 같다는 말이다. ‘나답게 산다’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100퍼센트 좋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다만 산 채로 나이를 안 먹을 사람은 없으니 나이를 먹을수록 더 좋아진다는 생각이 일반화되는 게 사회적으로 건강한 흐름이긴 하겠다. 연예인마다 방송에 나와서 예전과 비교하면 어떻냐는 질문에 ‘갈수록 힘들고 책임이 무겁고 한 자리에 안주하게 되고 후회스러운 것만 생각나요’ 같은 한탄을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긍정적인 방향이다.


예전에 북튜버 '겨울서점'님의 방송에서 애청자 메시지로 '언니 너무 멋있고, 저도 빨리 서른 되고 싶어요'라는 말이 소개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은 20대가 끝나면 모든 것이 내리막길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나로서는 엄청난 문화 충격이었다. 멋져 보이고, 빨리 되고 싶은 나이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다. 하기야 사람이 정말 훌륭하고 멋지다면 무슨 나이인들 선망의 대상이 안 되겠냐만. 아무튼 그때 그 순간을 본 뒤로 나도 남에게 멋있어 보이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아니, 최소한 한심하거나 딱한 인간이 되진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나....... 변함없이 빛나는 타산지석의 금자탑이 되어 가는 중이다.


사람에 따라 이 사진을 보고 걱정거리부터 떠오를 수도 있다


그나저나 누가 뭐래도 나이를 먹을수록 확실히 안좋아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거리가 없는 것이 바로 신체 건강이다. 기연을 얻었거나 바닷가재거나 오로지 건강을 목적으로 쉴새없이 운동해서 그것만으로 전파를 탈 수준이 아니라면(낡은 표현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건강 수치는 한 눈금씩 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당신의 신체 나이가 몇 살이라는 지표도 나오는 것이리라.


재작년부터 샤오미에서 나온 스마트 체중계를 쓰고 있는데, 전극 위에 올라서서 몇 초 기다리면 체지방, 근육량 등 다양한 지표와 체성분을 계산해서 알려주는 기특한 물건이다. 설마 이 작은 물건이 보건소에서 전문 장비로 재는 것보다 나은 측정값을 제시하지야 않겠지만, 어떻게 변동되었다는 사실 확인에는 참고할 만해서 온가족이 잘 써먹고 있다.


그런데 이 분석 지표들 중 가장 무서운 게 바로 체지방 지수도 아니고 bmi도 아닌,  ‘신체 나이’다. 신체 건강 지표의 측정과 분석에도 여러 방법이 있으니까 어느 한 지표만 믿고 생활을 막 뜯어 고치는 것도 경계할 만한 일이 아닌가 싶고, 체지방률이 높아도 ‘나야 지금 건강하니까 크게 문제될 수치는 아니지’ 생각하지만, 이 신체 나이만은 영장이나 성적표처럼 느껴져서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다.


얼마 전에는 만사가 촉박한 한편으로 생활은 게을러져서 이렇다할 운동도 잘 않고 살았는데, 그랬더니 귀신같이 '일흔 몇살'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아무리 낙천적인 자세로 느긋하게 살고 싶어도 이 정도로 야박한 소리를 들으면 정신이 바짝 들 수밖에 없다. 결국 열심히 운동해서 삼십 대 초반까지 낮추는 데에 성공했고, 지금도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다. 역시 당신이 당신 나이대에서 몇 등이라든가 100점 만점에 몇 점이라든가 체지방이 몇 퍼센트라 비만이라든가 하는 소리는 한 귀로 듣고 그러거나 말거나 한 귀로 흘릴 확률이 높은 데에 비해, 당신 몸이 몇 살 같다는 말이 훨씬 무섭고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진다. 과학적으론 어떤지 모르나, 육체에 한해서는 젊은 게 절대적으로 좋다는 인식이 머릿속 깊이 박혀 있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행복을 찾아서”라는 보드게임이 있다. 현대인의  취미, 직업, 재산, 건강, 인간관계 등등 다양한 분야를 관리하며 행복 수치로 겨룬다는 본격 전략 게임이다. 한 번 해보면 ‘하, 이게 현대인의 인생살이구나’ 싶어 씁쓸해질 정도로 잘 만든 작품인데, 여기서 특히 감탄스러운 부분은 젊을 때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해두지 않으면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악화되어 말년에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건강 관리만 하다 행복을 까먹고 죽는다는 부분이다. 게임을 하고 씁쓸해진 이유를 알만하지 않은가? 나잇값은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지만, 역시 육체적으로는 그닥 나잇값을 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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