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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ul 11. 2021

취미와 물리적으로 거리 두기의 암담함

일주일 전에 친구들과 놀 때만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일주일 사이에 수도권내 코로나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거리 두기가 4단계로 진입했다. 사실 사회 곳곳에서 신호가 있었는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상상을 못한 것이리라. 매일 확진자 상황을 체크하면서 세상 만사 걱정하고 살면 처참하게 피곤할 테니 무심하게 사는 게 정신적으로 낫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제 마음 한구석에서 모종의 대비는 하고 사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다. 갑작스러운 거리 두기 단계 상향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음 편히 소통할 사람은 물론이고 소통하는 사람 자체가 원래 많지 않은 한량 프리랜서인데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그나마 만나는 사람도 극히 한정되어 일주일에 한 번 가까운 친구들 만나서 보드게임도 하고 잡담도 하고 노는 게 삶의 낙이자 궁극적 목적이 된 나로서는, 앞으로 적어도 2주는 집에서 살라는 말이 유배나 형벌에 가깝게 느껴졌다. 확진자는 여기저기 시설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거니까 일주일 내에 불씨가 사그라질 거라 믿기도 했다. 그러나 사그라진 것은 불씨가 아니라 희망이었다.

물론, 이 역시 과장이긴 하다. 세상이 좋아져서 일상적으로 쓰는 장비로도 화상통화 정도는 간단히 할 수 있고, 이미 올해 초에는 두 달 가량을 그렇게 온라인 모임만 하고 지냈다. 보드게임도 손쉽게 온라인으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가 나와 있고, TRPG도 온라인 툴이 잘 마련되어 있다. 자동으로 처리되는 부분이 많은 만큼 실제로 만나서 실물을 갖고 노는 것보다 편하기도 하다. 카드를 섞고 기타 잡다한 구성품을 정돈하거나 점수를 계산할 필요도 없어서 모든 것이 일사천리다.

어제는 그렇게 오랜만에 온라인 모임을 하면서 보드게임도 하고, 잡담도 하고, 크라우드펀딩 사이트를 같이 보면서 신기하다는 둥 이상하다는 둥 깔깔대기도 했다. 대여섯 시간 그렇게 놀고 해산하니 답답하던 마음이 좀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 올해 초의 두 달도 그런 식으로 버텨낸 것이리라.

그러나 모임을 끝낸 뒤에 찾아오는 허망감은 어쩔 수가 없다. 오로지 사람이 직접 만나서 노는 것만이 진짜 따뜻한 모임이고, 랜선을 통한 모임은 싸늘한 가짜에 불과하다…… 이런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대화의 즐거움을 만끽하기에 일반적 통신 환경이 한참 부족한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대화란 말 자체보다 말을 제외한 나머지, 표정과 몸짓 따위를 생생히 느낄 때 진짜 만족감과 유대감을 줄 수 있는 것인데, 10인치대의 조그만 화면을 분할해서 아끼는 사람들을 엽서만한 크기로 보고 있자면 말 이외의 것들은 잘 전달되지 않고, 말 자체도 어디에 존재하는 빈틈으로 뉘앙스나 내용이 증발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진짜 실감나고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온라인 모임을 하려면 화상 통화 창에 비치는 사람이 실물에 가까운 정도로 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설에는 우리 가문이 할 거라고 상상조차 한 적이 없는 화상 통화 차례를 지냈는데, 화면을 거실의 대형 티비로 송출한 덕에 실제 차례상에 절하고 어른들을 뵙는 느낌이 제법 그럴듯하게 들었다. 여기서 더 발전시켜서 실제로 만날 때 이용하는 자리마다 사람만한 디스플레이와 카메라를 배치하는 방식을 쓰면 훨씬 그럴듯하지 않겠나 싶지만, 비용을 따져 볼 때 이런 고전 SF 영화 같은 방법보다는 VR이나 AR을 쓰는 게 낫기도 하고 도입도 더 빨리 될 것이다. 이런 신기술로 모임을 체험해 본 적은 없으니 이것들이 진짜 같고 훌륭하다고 장담은 못하겠으나, 시점 전환이 가능한 가상 현실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나름대로 가슴 벅찬 감동을 줬던 것을 떠올리면, 아주 실감나거나 실제로 만나는 것과 비슷한 선상에 놓을 정도로 색다른 매력이 있는 모임이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미래에 실현될 일이기도 하고, 사실 체험할 일이 없으면 좋겠다 싶은 기술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 취미가 보드게임인 동안에는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 한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서 게임이라는 공통의 문제거리를 바라보며 카드나 말 따위를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며 서로의 희로애락을 민감하게 감지하는 것이 보드게임이라는 유희의 정수이기 때문이다. 가상으로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아마 그런 아쉬움을 느끼지 않으려면 애초에 태생이 온라인이라 목소리만으로 소통하며 신체적 표현은 아바타로 대신하는 유희를 즐기는 게 맞을 것이다. 옛날에 친구들끼리 온라인 FPS를 즐기다 상대를 죽이고 얼굴 앞에서 엉덩이 춤을 추며 놀려대기도 하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던 것을 떠올리면, 온라인 모임은 현실의 대체가 아니라 별개의 문화로 형성될 때 허망한 갈증과 무관한 것이 될 듯하다.

그러나저러나 관성적으로 실제 모임의 대체 수단으로서의 온라인 모임을 해야 하는 나로서는 여전히 막막하고 암담한 기분이 마음 한구석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아쉬움을 덮어버릴 정도로 빼어난 재미를 추구하려면 ‘새로운 것’을 발굴해야 한다. 새로운 것은 TRPG의 새로운 시나리오일 수도 있고 온라인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새 게임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이런 것들이 유튜브 설명 몇 분 듣는다고 저절로 주어지진 않는다. 내가 즐기는 이 분야는 항상 직접 뚜껑을 열고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한다. 누가 요렇게 하면 된다고 모든 것을 주입해주지 않으며, 타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잘 삼킬 수 있게 떠먹여 주는 것 정도다.

 그런데 내 주변에선 보통 그렇게 남에게 떠먹여주는 역할을 바로 내가 수행하고 있으며, 요즘은 그럴 기력이 별로 남아있지 않다는 게 문제다. 바쁜 일도 없으면서 항상 바쁜 생활 탓만은 아니다. 나 같은 ‘총대’를 움직이는 것은 보통 친구들이 얼마나 재미있어할까 싶은 기대감인데, 온라인으로는 그 모습을 직접 볼 수 없으니 공부하고 준비하는 흥이 별로 나지 않는 탓이다. 그다지 흥이 나지 않으니 새 콘텐츠도 마련하지 못하고, 결국 온라인 모임은 한층 더 맥이 빠지고 마는 듯하다. 이 악순환이 저절로 깨져주진 않으니 지치고 힘들고 맥빠지고 모든 것이 미봉책처럼 느껴진다 할지라도 암담한 고리의 어느 지점을 두드려 깨야만 할 텐데, 다가올 주말에는 친구들을 직접 볼 수 없다는 아쉬움 속에서도 그런 힘을 낼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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