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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r 04. 2016

요리하는 저녁 풍경


드물게 요리를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쩐지 마음이 들뜬다. 나는 그럴 기회가 정말 아주 드무니까, 들뜨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이색적인 체험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마 하루도 빠짐없이 요리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요리를 하게 되었다고 마음이 들뜨지는 않을 것이다. 밥을 사 먹을 때만 해도 뭘 먹을지 고민하기 마련인데 스스로 요리까지 해야 한다면 얼마나 선택하기가 귀찮고 괴로울까. 그런 점에서 요리를 한다고 마음이 들뜨는 나는 아직 진정한 요리의 길에 오르진 못한 게 틀림없다. 하지만 즐기는 게 죄악은 아니니까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둬야지. 


아무튼, 혼자 요리를 해서 나 한 명에게 먹이는 상황은 부담이 없어서 좋다. 누구에게 메뉴를 묻거나 강요할 필요도 없고 맛이 없을까 봐 마음졸일 일도 없다. 아무리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모독적인 요리가 만들어져도 나 자신만 희생하면 그만이니 레시피를 벗어나 대충 마음 가는 대로 만들 수도 있고, 요리하는 내내 옆에다 뭐든 틀어놓을 수도 있다. 


정말 남부끄럽지 않게 제대로 할 줄 아는 요리라고는 라면밖에 없는 수준이지만, 요즘은 오므라이스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오므라이스는 썩 좋은 요리다. 준비물이나 요리법도 간단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실패할 확률도 낮은 데다가 케첩이라는, 뭐 어찌 되었든 음식을 맛있게 만들 수 있는 마법의 소스를 많이 쓰니까 결국은 그럭저럭 먹을만한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요리를 하기로 작정했으면 일단 조리대 한켠에 맥북이나 아이패드를 놓는다. 부엌에 이토록 잘 어울리는 IT기기도 드물 것이다. 그것만으로 요리가 반쯤은 해결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뒤에 레시피를 다시 한 번 확인하고, 뭐든 틀어놓는다. 실제로 쳐다볼 시간은 거의 없지만 그렇게 해 두면 떠들썩해져서 좋고, 떠들썩해야 ‘어차피 혼자 먹는 거 대충 라면이나 끓여 먹고 말지’ 하는 생각을 안 하게 된다. 


부엌이 시끄러워졌으면 재료를 꺼낸다. 재료를 새로 살 생각은 안 하고 비축분을 쓰기만 하니까 재료라곤 당근과 양파가 고작이다. 이제 도마와 칼을 꺼내고, 당근을 씻어서 반 개를 잘게 썬다. 그리고 기름을 두른 팬에 익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양파 껍질을 벗기고, 역시 잘게 썬다. 당근이 먼저 완전히 익어버리면 안 되니까 빨리해야 하는데, 그때서야 미리 썰어뒀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매번 이런 식이다. 아무튼 양파를 썰어서 팬에 올리고, 다음으로 계란 세 알을 풀기 시작한다. 역시 미리 해뒀으면 좋았겠지만 이미 늦었으니 야채를 뒤적이는 틈틈이 계란을 푼다. 그러다 찬밥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다시 계란을 푸는 한편으로 야채를 볶는다. 밥이 데워지면 팬에 올리고, 케첩을 적당히 뿌려가면서 볶기 시작한다. 그러다 역시 야채만 들어간 오므라이스는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아 참치 반 캔을 넣는다. 혼자 먹는 요리의 장점이란 이런 것이다. 요리를 하다 말고 뜬금없이 뭘 집어넣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밥을 볶다가 부정확한 시점에 팬 하나를 더 꺼내서 풀어놓은 계란을 올린다. 그때마다 늘 생각하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계란을 꼭 풀어야만 하는가고, 또 하나는 계란을 먼저 익혀서 따로 빼놓은 다음 밥을 볶고 그 위에 올리면 팬을 하나만 써도 해결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요리에서 일견 귀찮아 보이는 짓도 다 의미가 있을 테니 가급적 따르는 게 신상에 좋으리라. 요리는 무척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활동이라 ‘계란이 다 익었으면 해가 지는 방향을 향해 절을 하세요’ 따위 감상적인 허례허식은 좀처럼 레시피에 기록되지 않는다. 


아무튼, 밥과 계란이 충분히 익었다 싶으면 밥을 계란에 올리고 반 접으면 되는데… 계란을 익히는 팬은 꼭 작은 걸 쓰기 때문에 둥근 후라이를 밥 위에 올리는 걸로 대신한다. 모양은 덜 나지만 아무렴 어떠랴, 어차피 나 혼자 먹을 거. 그리고 후라이 위에 케첩으로 아무 단어나 적으면 오므라이스 완성이다. 혹시나 해서 한 입 먹어보면 역시나 먹을만하다. 이게 바로 내가 만든 오므라이스라고 유레카를 외치며 거리로 뛰쳐나가거나 온 가족을 불러다 배불리 먹일 정도는 결코 아니지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해서 비참할 정도로 불행한 것도 아니다. 이 ‘그럭저럭 만족’이라는 지점은 인생을 헐떡이며 살거나 불행의 밑바닥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 위해 꼭 찾아야만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영화 “위플래쉬"에서는 “굿 잡”이라는 말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말이라는 대사도 나온다지만, 나는 딱히 오므라이스에 인생을 건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저녁 한 끼를 걸었을 뿐이니까 굿 잡 정도로도 괜찮겠지.


혼자 먹는 오므라이스에는 뭔 소릴 적어도 상관없다.


오므라이스가 완성되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식탁을 닦기도 귀찮고 텅 빈 식탁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도 영 흥이 나지 않고 쓸쓸하니 조리대 앞에 선 채로 먹는다. 틀어놓은 영상에서 중요한 부분을 놓쳤다 싶으면 뒤로 돌리고, 맥주가 있으면 꺼내다 마신다. 사냥에서 성공한 것마냥 오늘 한 끼도 무사히 넘겼음을 자축하는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그렇게 직접 만든 요리와 함께 마시는 맥주는 하루 일과를 마치고 마시는 맥주만큼이나 맛있다. 부엌에서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벌어지는 것이지만 이것도 축제라면 축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식사를 마친다고 모든 축제가 끝나고 아, 즐거웠다 하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설거지가 남은 것이다. 여드름을 짜는 것처럼 설거지도 나름의 재미가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멈춰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거나 어깨가 절로 들썩일 정도로 즐거운 일은 아니다. 고작 오므라이스를 한 것만으로 닦아낼 것이 적지 않다. 은근히 취기가 올라오니 누워서 배를 두드리고 핸드폰이나 만지작거리고 싶은 마음이 샘솟아도 도망쳐선 안 된다. 설거지까지가 진짜 요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리하여 애니든 미드든 내셔널지오그래픽이든 뭐든 곁눈질로 봐가면서 설거지를 끝내고 결코 작동할 일이 없는 식기세척기 문을 턱 닫고 나서 시계를 보면, 밥을 먹기로 작정한 시간으로부터 한 시간은 족히 지났다. 요리가 반이고 나머지 반 중에서 3분의 1 정도가 먹는 시간, 나머지가 설거지한 시간인 것 같다. 만약 재료를 시장에서 사오는 시간까지 더하면 요리에 걸린 시간은 훨씬 늘어나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어쩐지 만사가 허망하기도 하고, 매일 밥 해주시는 어머니나, 매일 밥 해 먹는 자취생들이 존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축제가 끝난 운동장을 바라보는 듯한 적적함까지가 바로 혼자 해 먹는 요리의 궤적인 모양이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오며 맥주를 좀 남겨뒀으면 좋았을걸, 하고 후회한다. 늘 이런 식이다. 


(2015.03.25.)



-후기


오므라이스도 제법 간단한 요리지만, 전에도 밝혔듯이 요즘은 줄창 스파게티만 해먹고 있습니다. 밥도 필요없고 계란을 풀 필요도 없고 당근도 쓰지 않거든요. 이탈리아에서 요리를 잘 못하는 아가씨가 요리 실력을 숨기려 할 때 내놓는 것이 바로 스파게티라는 말이 있는데, 몇 번 해보니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습니다. 밥을 해먹는 행위가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깨닫고 주식을 파스타로 바꿨다는 분도 있던데, 그 이유도 알 것 같구요. 밥은 쌀을 씻고 물을 맞춰서 밥솥을 가동한다는 공정이 들어가는 데다가, 그렇게 만들어진 밥을 신선하게 보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파스타는 그때그때 먹을 양을 삶기만 하면 끝입니다. 여러분 모두 파스타를 즐겨보세요.


하지만 그렇게 쉬운 파스타도 준비/정리 시간 대 먹는 시간을 따져보니 그리 신통치 않았습니다. 어느날 궁금해져서 재보았더니, 준비에 20분, 먹는데 6분, 치우는 데 15분 정도가 걸리더군요. 바쁜 사람은 사먹는 게 낫다는 말이 정말이에요. 남이 해주는 밥처럼 소중한 게 없습니다. 


(2016.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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