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음성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데 내 주변 친구들은 그렇게까지 젊은 세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운전자가 많은 것도 아닌 터라 실감은 잘 되지 않는다. 이번에 무슨 특별 라이브 방송을 한다거나 그런 방송이 너무 재미있었다는 등의 소식은 항상 뜬소문을 날라주는 트위터로만 들려와서, 신빙성에 묘한 구멍이 나 있다.
그나저나 요즘 같은 영상 콘텐츠 대폭발의 시대에 갑자기 왜 음성 콘텐츠가 뜨고 있는 것일까? 일각에서는 이 유행이 시각적 스낵컬처의 피로도에 의한 반발, 낮은 창작자 진입 비용 덕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말도 맞다 싶은 한편으로 나는 다른 이유도 덧붙이고 싶다.
뉴스를 틀어놓고 유튜브를 보거나 유튜브를 틀어놓고 게임을 하는 등의 다중 작업에 익숙해진 사람들이 ‘어차피 눈으로 보지도 않는 걸 자꾸 이것저것 골라서 트느니 라디오를 긴 걸로 들어도 괜찮지 않나?’ 라고 느끼게 된 게 아닌가 하는 게 내 생각이다. ‘난 이제 넌더리 나는 유튜브 말고 팟캐스트를 들을 거야!’하고 봉기하듯 나섰다기보다는, 심리적 장벽이 많이 낮아졌다는 뜻이다. 애초에 유튜브에도 ‘살빠지는 주파수’ 등등 음성 콘텐츠가 많이 올라오기도 하고. 어쨌든 유튜브 망하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망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소리를 염불처럼 외우고 다니는 나로서는 좋은 소식이다.
나도 요즘은 운전자도 아니면서 팟캐스트를 열심히 듣고 있다. 예전에 영화 관련 팟캐스트와 일본 성우 방송을 꾸준히 듣다가 뜸해진 이후로 한참만에 이렇게 적극적으로 팟캐스트를 듣게 된 계기를 찾자면, 과학 교양 방송인 “과학하고 앉아있네” 유튜브 채널에서 역으로 유입되어 본가 콘텐츠인 팟캐스트까지 듣기 시작한 것을 뽑을 수 있겠다.
그런데 운전도 안 하는 사람이 대체 뭘 하면서 팟캐스트를 듣는단 말인가? 가만히 앉아서 명상하듯? 바로 걸어다니거나 러닝할 때, 단순 작업을 할 때 듣는다. 음성 콘텐츠의 멋진 점이 바로 이것이다. 감상에 시각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딴짓을 하면서 즐기기 안성맞춤이고, 지루하고 꺼려지는 시간을 콘텐츠 감상 시간으로 덧칠해줄 수 있다. 덕분에 요즘은 편의점이나 시장에 나가거나, 운동하러 나가거나, 설거지하거나, 청소하거나, 커피를 내리는 시간이 별로 아쉽거나 꺼려지지 않는다. 그 시간마다 나름대로 즐길 얘기가 있으니까 기쁜 구석마저 있을 지경이다.
이런 시간들 중에서 가장 멋진 것은 단연코 러닝할 때다. 러닝처럼 벅차고 고된 일은 적당한 동반자 없이는 도저히 이어나가기 힘든 법인데,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뛰자면 신기하게도 이것도 제법 즐길 만한 일이 된다. 지쳐서 걸어다닐지라도 조금만 더 듣다 가고 싶어진다는 점도 좋고, ‘남들 멀쩡히 돈 벌 시간에 운동이랍시고 이게 뭔 짓거리지’ 같은 부정적인 상념이나 불안감에 시달릴 여유가 줄어든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생각이라는 걸 했다 하면 고통의 상념에 침잠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사람으로서, 이런 식으로 육체와 정신 모두를 각자의 작업에 몰입시키는 시간은 참으로 귀하고 소중하다. 박웅현 작가의 말에 따르면 ‘행복은 몰입’이라는데, 팟캐스트를 들으며 달리고 나면 확실히 행복이란 열심히 뛰어서 도달하거나 쫓아가야 하는 지점, 목표가 아니라 충실한 행위의 순간 그 자체가 아닌가 실감하게 된다. 러닝을 권유 받으면 '그렇게까지 치열한 운동을 하긴 좀....'이라고 여기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 팟캐스트를 들으며 달리거나 달리는 시늉이라도 하는 것은 한번쯤 일상의 풍경에 넣어볼 만한 일이다.
그나저나 일주일에 한 편 나오는 방송만으로 내 운동 시간을 모두 구원할 수는 없는지라 최근에는 다른 방송도 더 찾게 되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과장창(과학으로 장난치는 게 창피해?)’인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도 순수한 과학 팟캐스트다. 윤고은 작가의 ‘EBS북카페’도 듣긴 하는데, 이 방송은 일주일에 한 번 과학자가 나오는 코너만 듣는다.
어째서 이렇게 과학 얘기만 찾게 된 것인지 나도 좀 의문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런 과학 얘기들은 제법 흥미롭지만 사실 내 실생활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것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과학 지식이 교양 취급을 못 받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라는 김상욱 박사의 주장이 분명 옳다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러면서도 이런 사회에서 살자니 어지간한 과학 얘기는 ‘알면 좋고 몰라도 그만’인 정도에 속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실제로 과학 팟캐스트에선 대체로 대폭소할 정도로 웃긴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도 아니며, 눈물짓도록 슬퍼지거나 가슴이 따뜻해지는 얘기도 좀처럼 없다. 내가 꼭 배울 만한 삶의 자세나 명문장, 기막힌 스토리, 무슨 작품의 성공 비결 따위도 좀처럼 없고, 물가 상승, 예술인 지원, 도서정가제 따위의 생활 밀착형 뉴스에 걱정이 몰려오지도 않는다. 다만 듣고 있자면 똑똑해지는 느낌이 드는 정도다. 비유하자면 차창 밖으로 멋진 풍경을 보는 것에 가깝다고 할까?
(단, 과학하고 앉아있네의 ‘격동 500년’은 과학자의 일생을 다룬 콘텐츠라 슬프거나 가슴이 따뜻해지기도 한다)
물론, 콘텐츠 제작자야 자기가 만든 콘텐츠가 도저히 귀를 떼지 못할 정도로 흥미진진하고 박진감 넘치며 벅찬 감동을 주길 바라게 되는 법일 것이다. 하지만 소비하는 입장에선 언제 틀어도 별 부담이 없어서 준비도 각오도 필요 없고, 한 편을 듣고 나면 ‘요즘은 뇌파를 읽어서 텍스트도 칠 수 있다더라’ 라는 식으로 정보 두어 줄 남는 정도가 마음에 든다. 길면 길수록 더 좋고.
오디오 부문을 떠나서 요즘엔 정말 무엇이든 그런 콘텐츠가 반응이 좋은 것 같다. 어딜 봐도 대체로 부담없이 즐겁고, 읽고 나면 마음에 한 문장 정도 남고, 아주 가끔 폐부를 찌르는 비수같은 말이 나오는 콘텐츠 말이다. 그래서 수필도 그 정도의 무게로 쓰려고 하는데, 잘 되는지는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