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맥주를 참 좋아했다. 냉장고에는 대체로 맥주가 구비되어 있었고, 느긋하게 쉬면서 영화를 보거나 치킨 따위를 먹을 때면 항상 맥주를 꺼내서 곁들였다. 어떤 날은 길게 영화를 보면서 대낮에 혼자 맥주 1500밀리를 마셔 없애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과한 짓이었다. 건강에 해로운 만용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혼자서 두세 시간 만에 음용하는 물질의 양으로서 적당한 선을 좀 넘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다. 맥주가 아니라 주스나 물이라도 그건 좀 너무했다.
그로부터 오래지 않은 어느날, 술을 많이 마시는 후배를 만난 나는 ‘허허, 어쩌다 보니 그 정도로 마시고 말았지 뭐야’하고 농담처럼 털어놓았다. 바보짓 자랑이 목적은 아니었고, ‘그 정도는 보통이죠. 저는……’ 하는 말을 들어서 내가 결코 이상하지 않다는 위안을 얻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믿었던 후배는 ‘하하…… 그건 좀 많네요.’ 라는 식으로 반응했다. 믿는 도끼에 찍힌다는 게 이런 것일까. 대단치도 않은 일인데 자존감에 생채기가 나고 말았다.
그게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날 이후로 여차할 때 맥주를 시원하게 마셔대는 취미는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아마 나이 탓이겠지? 그러나 신체에 어떤 변화가 생겼을 때마다 늙어서 그렇다는 이유를 대는 건 좋지 않은 버릇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어쩌다 가끔 젊어지는 시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죽을 때까지 늙어서 그렇다는 타령만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아무튼 맥주가 싫어진 건 아닌데 잘 맞지 않게 된 느낌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매운 것을 참 좋아했다가도 언젠가부터 속이 편치 않게 되어 멀어지기도 하는 것처럼, 나는 2~3년 전부터 맥주가 꿀떡꿀떡 잘 넘어가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대사량이 줄어 식사량이 감소한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음주가 어느 정도를 넘기면 만족감이 꺾인다는 사실을 두뇌가 마침내 체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알코올이 안 받게 된 것 아닌가 의심해보기도 했는데, 아주 가끔 감정적인 필요에 의해 위스키를 마셔보면 그건 또 잘 들어간다. 막걸리나 과실주 따위도 괜찮다. 맥주만 유독 거북함이 금방 찾아오는 것이니, 아마 음용량이 문제이리라.
다만 알코올이 아무 문제도 아닌 건 또 아니라, 가끔 맥주가 잘 넘어가서 500밀리쯤 마시면 한두 시간 뒤에 술이 깨기 시작하는 느낌, 그 몽롱함과 말짱함 사이에서 은근한 두통과 거북함에 시달리며 짜증과 우울감을 느낄 때가 요 몇 년 사이 크게 늘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은 결코 아닌데, 그게 그렇게 싫을 수가 없다. 금쪽 같은시간을 저능률의 바닥에 스스로 처박았다는 사실이 화가 나고 우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친구들과 놀면서 마실 때는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으니까, 이건 아마 또렷한 정신으로 보내는 노동이나 휴식 시간이 예전보다 더 소중해졌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보면 삶의 자세가 좀 발전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맥주를 조금씩 꺼리게 된 경향은 내 주변도 매한가지라, 그렇지 않아도 놀러 갈 때 몇 명이 가든 맥주를 피처 한 병 정도만 사던 친구들은 이제 슬슬 맥주가 뭔지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몸에 좋은 술만 한 병쯤 챙겨서 맛만 보거나, 정 생각나면 편의점에 나가서 네 명이 네 캔만 사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경향성이 올해 초여름에는 아주 극을 달려서, 짬을 내서 셋이서 놀러 갔다가 숙소에서 차 끓여 마시고, 우연히 만난 행상에게 식혜만 한 병 사 마시며 보드게임만 실컷 했다. ‘이 정도로 건전하게 노는 것도 좀 이상하지 않나?’라며 웃긴 했지만, 솔직히 아쉽지는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한국인 사이에는 놀러 나가면 응당 치맥이나 피맥을 해야 흥이 난다는 고정관념이나 주박 같은 것이 존재하는데, 거기서 깨끗이 벗어나니 더 또렷한 시간을 자유롭게 누리게 된 느낌이다. 하기야 배불리 먹고 취해버려야 즐거움이 배가된다는 발상 자체가 갓 성인이 된 아이들에게 사회가 주입해온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보면 문화적으로도 좀 성숙한 게 아닐까.
그래서 요즘은 맥주를 직접 사 마실 일이 거의 없고 어쩌다 냉장고에 흘러들어온 것들만 마시곤 하는데, 며칠 전에는 이상할 정도로 생각이 나서 괴담 프로그램인 심야괴담회를 보며 맥주 한 캔을 까서 마셨다. 은근하고 묘한 가을밤의 더위와 무서운 얘기와 맥주……. 오래도록 몸에 새겨진 기억대로라면 이건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처럼 완벽한 삼위일체여야 했다. 하지만 이날은 잘 맞지 않았다. 맥주가 라거가 아니라 에일이었고, 양도 너무 많았다. 나는 자신이 좀 고상한 취향을 갖고 있고 라거보다 에일이 고급한 것이라 믿어서 ‘에일을 골라 마시는 멋진 자신’이라는 허황된 자아상을 품은 적이 있는데, 그건 무엇 하나 사실이 아니었고, 나는 맥주에서 묵직한 과일향이 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음주와 괴담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던 나는 졸지에 취향에 맞지 않는 것도 모자라서 부담스럽게 많은 양의 맥주를 처분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어쩌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나는 남은 맥주를 다 버렸다. 예전에는 엠티 가면 김빠진 맥주도 맥주라면서 아깝다고 아침에 먹어치울 정도였는데, 이제 그런 멍청한 궁상에서는 벗어나게 된 것이다. 하기야 보약도 아닌데 굳이 마음에도 안 드는 술을 억지로 마실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런 면에서도 사람이 성장하긴 한 모양이다.
흔히 예전에 좋아하던 것을 습관적으로 다시 즐기려 했다가 몸이나 마음이 예전처럼 따라주지 않아서 상심하고 슬퍼하는 경우가 많고, 그런 모습이 노화와 쇠퇴와 세월의 안타까움을 나타내는 이미지로 굳어졌는데, 좋아하던 그것이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그렇게 안타까워할 일은 아니지 않나 싶다. 그냥 어쩌다 보니 취향이 변했나보다 생각하는 게 편하고, 대체로 그게 사실이기도 하다. 예전에 시티팝을 신나게 듣다가 요즘 잘 안 듣게 되었다고 상심할 거 없듯이, 즐거움의 초점이 옮겨가는 일에 익숙해지는 게 오래도록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