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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Oct 30. 2021

뭘 좀 재미있게 볼 때마다 터지는 지뢰들

옛날에는 하루를 완전히 마치기 전에 애니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게 낙이었는데, 최근에는 곽재식 작가가 출연하는 과학 방송인 ‘다빈치 노트’나 괴담 방송인 ‘심야 괴담회’를 보면서, 혹은 과학 팟캐스트인 ‘과학하고 앉아있네’를 들으면서  게임을 하는 게 낙이 되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이 콘텐츠들의 가장 중요한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너무나 재미있어 도저히 끊을 수가 없을 정도는 아닌 정도로만 재미있을 것’이다. 콘텐츠가 몹시 재미있어서 멈출 수가 없을 지경이라면 참 멋진 일이긴 하지만, 뭐가 재미있거나 말거나 다음날을 향해 나 자신을 시위에 걸어야 하는 입장에선 오히려 감점 요소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저번주부터는  소설이라는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전세계적 인기를 끌고 있는 ‘오징어 게임’을 안 보고 넘어갈 수도 없겠다 싶어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서 조금씩 봤고, 그 뒤에는 뭘 볼까하는 고민 없이 오랜 기간을 버티는 게 편하다 싶어 훨씬 긴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인 ‘갯마을 차차차’를 보기 시작했다.


감상부터 말하자면 둘 다 재미있고 볼 만한 작품이었다. 하루를 닫는 작품으로서 적합한가 하면 ‘지나치게’ 재미있었던 것 같지만, 이런저런 작품 내적 문제를 감수하고도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유행이라면 일단 싫어할 준비부터 하는 괴팍한 성격인데, 이건 따라갈 만도 한 유행이었다. 덕분에 한동안 깊은 밤은 즐겁고 기다릴 만한 시간이 되었으나…… 문제는 ‘작품 외적 문제’였다. 이 작품이고 저 작품이고 무슨 사건 사고가 터져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내용은 둘째치고 작품 내에 등장하는 전화번호가 실제 사용중인 사람이 있는 것이라 피해가 발생했는데 이에 대한 대응마저 이상해서 비난을 받았고, 갯마을 차차차는 남자 주인공 배우의 과거 행적이 문제가 되었다. 이런 사건들에 대해 논평하고자 하는 게 이 글의 목적은 아니라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겠으나, 아무튼 한번 듣고 나면 작품을 보는 내내 영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는 일들이었다.


그리하여 다음에 볼 작품으로 넷플릭스 1위 작품인 ‘마이 네임’을 골라두고 빨리 옮겨갈 작정을 했다. 주연인 한소희 배우가 연기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버티다 조금씩 나아졌다는 글을 보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정이 가기도 했던 탓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독과 촬영과 관련하여 분통 터지는 이야기를 주워듣게 되었다. 아직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싶은 수준의 이야기라, 마이 네임 시청은 애초에 포기하게 되었다.


강 건너 불구경인가 판단할 때, 강이 과연 어디 있는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렇게 뭘 집을 때마다 문제가 터지니, 슬슬 뭔가 억울한 느낌마저 들기 시작한다. 그냥 재미난 얘기를 재미나게 보고 쉬고 싶을 뿐인데 왜 자꾸 걷다 보니 지뢰밭인 심정을 느껴야 한단 말인가? 그렇다고 비판적인 생각을 딱 잘라내고 ‘작품은 작품만으로 즐겨야지’ 하는 것도 복잡한 층위의 문제가 산재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가질 만한 태도는 아닌 것 같고,  SNS를 통해 저절로 흘러들어오는 소식들을 싸그리 차단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뭘 보든 뭐가 터져도 터질 수 있다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뭐가 터지면 그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내가 얻는 이득과 그 작품을 감상함으로써 훼손될 수 있는 윤리적 가치의 경중을 달아볼 수밖에 없는데, 이것도 내키는 대로 판단을 믿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가령 주연 배우는 응원하고 싶은데 그밖의 관계자가 사고를 쳤을 경우엔 어떡하는 게 맞는 걸까? 작품은 감상하고 문제는 비판하기? 애초에 포기하고 주연 배우의 다른 작품 감상하기?


이건 마치 그동안 겪어온 불매 운동 문제와도 비슷하다. 어느 기업이 여기저기서 나쁜짓을 하고 다니는데, 내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을 거기서만 만든다면 이용해야 할 것인가? 일본 제품을 불매하려는데 애니도 안 보고 플레이스테이션도 안 사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 말이다.


불매 운동을 어떻게 하는 게 옳은가에 대해선 수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낸 바 있고, 그중에서 내가 가장 괜찮게 생각한 것은 ‘흑 아니면 백이라는 논리로 따질 일이 아니고, 사람 형편 따라 하는 일이므로 자기가 불매한다고 말하는 것은 좋으나, 남에게 왜 안하느냐고 따져서 불매 운동의 피로도를 높이진 말자’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논란이나 문제가 있는 작품을 필요에 따라 보되, 비판적인 자세를 갖는 것도 괜찮은 선택 같기도 하나……. 내가 무슨 작품 비평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도 아닌데, 작품을 ‘필요’해서 봤다고 스스로 인정할 수 있나 생각하면 또 혼란스러워진다.


아마 이 문제의 답을 명쾌하게 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 글을 쓰다 보면 개인적 기준 정도는 세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패했다. 그러니 이런 윤리적 책임에서 그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문제가 들리기 전에 소비해버릴 것’인데, 나로서는 그럴 여력도 없을 뿐더러, 100퍼센트 떳떳한 수법이라고 하긴 또 개운치 않다. 결국 뭘 볼 때는 문제가 없기를 바라고,  문제가 터진 뒤에는 그런 문제가 있었음을 잊지 않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일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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