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카페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카페 자체는 좋았지만, 카페에서 노트북 따위를 놓고 생산적인 일을 처리하는 것을 고급한 문화로 숭상하는 듯한 풍조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이야 그게 다 사정이 있는 일이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수도 있음을 알지만, 학생 때는 도서관 이용이 어렵지 않았기에 ‘카페 내 생산 활동’을 ‘불필요한 과소비’, ‘의미 없는 상류 문화 맛보기’ ‘양담배’ 비슷하게 여겼던 것이다. 지금 이 글도 카페에서 쓰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그 인식이 어째서 바뀌었는가 하면, 코로나 시대의 시작과 함께 도서관 가기가 상당히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감염의 위험을 피해 뭐든 집에서 하는 게 당연해졌고, 보드게임 모임조차 종종 집에서 하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직장도 다니지 않으니 타인과 소통할 일조차 거의 없어서, 무슨 ‘가을의 전설’ 같은 영화처럼 황량한 벌판의 오두막 한 채에서 식구들끼리만 사는 형국과 크게 다를 것도 없게 되었다.
좋게 보면 목가적이고 평화로운 생활이지만, 역시 과해서 좋을 건 없다. 작년 몇 월에는 카페 내 취식 금지 조치가 풀리자마자 집 앞 카페로 달려갔다. 결코 경계심을 늦출 때가 아니며, 금지 해제는 소상공인들의 생계를 위한 조치라는 국가의 준엄한 경고를 보면서도 더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이다. 두 달쯤 온라인상의 실체 없는 자아로 살자니 내 정신력 잔고가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사실 돈도 잘 못 버는 마당에 카페씩이나 갈 자격이 있는가, 정신력이 어쩌니하는 것도 다 사치스러운 소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돌아다녀 보니 그런 식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먹고 숨쉴 자격을 성취해서 얻어내는 것이 아니듯이, 카페에 가서 커피든 뭐든 마시면서 나와 비슷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 뭐라도 하는 시늉을 하며 자본주의적 욕구로 구축된 안온한 평화 속에 내가 여전히 무너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건 그냥 살아있으면 해도 괜찮은 일인 것 같았다. 소통하지 않더라도 사람 얼굴을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는데, 그 말이 맞는 듯싶었다.
그리하여 나는 카페를 일종의 피난처로 여기게 되었는데,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카페에 있다고 생산성이 아주 크게 오르는 것 같진 않다. 음식은 맛있고 자리는 적당히 편하지만, 주변은 다른 손님들 때문에 대체로 정신 사나운 편이다. 이득이 발생하는 부분은 흔히 알려져 있듯이 '적절한 소음'이 아니라 ‘자꾸 뭘 해야 하는 생활 공간으로부터 분리’ 같다. 카페에 가면 딴짓을 해도 준비한 범위 하에서 하게 되어 있어서, 뭘 하다 말고 책장을 정리하거나 물건을 고치는 등의 헛짓으로 엇나가는 범위가 크게 줄어든다.
물론, 와이파이도 되고 스마트 기기도 갖고 다니니까 놀려면 디지털 세계에서 얼마든지 놀 수 있지만, 남의 눈이 있는지라 정말로 '아무거나' 하고 놀 순 없는데다, 공간 이용료를 지불한 셈이니 기왕이면 시간을 목적한 대로 알차게 쓰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만약 카페 사장의 가족이거나 그룹의 대주주거나 해서 아무 비용도 지불하지 않고 카페를 이용할 수 있으면 주어진 시간을 알차게 쓰려는 노력은 좀 덜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해 보면 뭔가의 가치가 비용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지불된 비용이 가치를 끌어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생산성과 집중력이 딱히 나아지지 않더라도 종종 카페에 다닐 만도 하다는 생각을 한다. 정신적으로 썩 괜찮기 때문이다. 카페 문화를 흰눈으로 봤던 주제에 이런 소리를 하는 게 민망하긴 하지만, 카페에 갔다오는 행위에 포함된 요소들을 하나씩 따져보면 확실히 권장할 만한 활동이다.
• 가서 뭘 할까 하는 간단한 목표를 세운다.
• 외출해서 걸어다닌다.
• 타인과 한 마디라도 대화한다.
• 소통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얼굴을 보고 말소리를 듣는다.
•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 음악을 듣는다.
• 근사한 인테리어와 깔끔한 책상을 감상하고 느낀다.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는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 특수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썩 훌륭한 세트 메뉴다. 사실 오늘도 의욕이 완벽히 고갈되어 구겨진 깡통이 된 듯한 기분이었는데, 간신히 카페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면(사실 위험성이 있는 비유다)까지 나와서 사람 비슷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카페 테라피’라고 하면 너무 세속적인 느낌이 들지만, 복지 차원에서 ‘카페 할인권 배포’ 등을 고려해 봄직도 하지 않나 싶다.
그나저나 요 며칠 사이에 내가 즐겨 다니던 모 브랜드 카페의 이미지가 이런저런 사건으로 땅에 떨어졌다. 이미지만 떨어진 게 아니라 정도 떨어져서 적당한 카페를 새로 찾아야 하는데, 넓고 시원하고 눈치보이지 않고 특별한 부담도 없으며 눈을 들면 창밖도 보이는 카페라는 게 그리 흔치 않은 모양이다. 대자본의 힘에 너무 익숙해진 게 잘못이다. 아무튼 피난처에서 다시 피난을 가는 기분이 좋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