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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ug 24. 2022

평온하지만 재미없는 잠을 잘 자려는 시도들

예전부터 수면에 대한 글을 종종 쓰고 있는데, 이유는 멀리서 찾을 것도 없다. 내가 예전부터 오래도록 잠을 잘 자지 못해서 이런저런 방법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이런 말을 했더니 친구들이 병원에 가시는 게 제일 좋겠다고 했는데, 내가 생각하기론 병원에 가는 것으로 해결될 일은 아닌 듯하다. 물론 병원에 가면 어떤 방식으로든 과학적으로 진단하고 처방을 내리기야 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도 아니면서 넘겨짚는 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나에게 고통을 주는 수면 습관이란 바로 두 시쯤 자고 여섯 시에서 여덟 시 사이에 두어 번 깨어난다는 것인데, 그냥 일찌감치, 10시에서 11시쯤 자고 그때 아예 일어나버리면 고민하고 자시고 할 거리가 없다.


문제는 도무지 일찍 잔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정확히 그 시간에 일어나서 이동해야 돈을 받는 활동을 한다면 하늘이 두쪽나도 그 시간에 일어나서 활동을 하긴 할 테고, 수면 시간을 확보하지 못하면 피곤해서 미쳐버릴 테니 결국엔 자신의 목숨을 위해 습관을 뜯어 고치겠지만, 그럴 일이 없는 후줄근한 프리랜서 생활을 하자니 야간 활동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시간은 같은 시간이니까 일을 아침부터 하고 일찍 끝내고 일찍 자는 게 합리적이지 않냐고? 너무나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밤 시간과 아침 시간의 질감이란 상당히 다른 법이고, 밤이 자유를 앞둔 금요일 같은 시간이라면 아침은 마귀의 입속으로 굴러들어가기 직전의 월요일 같은 시간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가 대단히 어렵다. 거기에 덧붙여, 그런 요상한 핑계나 들고 와야 할 만큼 내가 나태하다는 것도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시도해본 방법들은 다음과 같다.


1. 멜라토닌

가장 강력했던 처방은 실제로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바로 멜라토닌이다. 멜라토닌은 잠을 자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잠이 오게 만드는 수면유도제라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는데, 실제로 먹어보니 효과가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머니는 하나도 효과가 없었던 반면에 어째 나는 약을 먹고 오래 지나지 않아 정신이 물에 젖은 솜처럼 늘어지고 무거워져 도저히 버틸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 효과가 아침까지도 이어져서 아주 곤혹스러웠고, 결국 복용을 포기하고 말았다. 약을 먹어 잠을 자고, 일어나서 커피로 잠을 깨우길 반복하다간 뇌가 엉망이 될 것 같았다.


2.수면 유도 명상

약물보다 온건하고 좋았던 것은 수면 유도 명상이었다. 명상앱은 워낙 여럿이 나와 있기도 하고 유튜브에도 너무나 많아서 고르는 게 일일 지경인데, 내가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Klar(무료)다. 이건 정확히 ‘자다 깼을 때’를 위한 메뉴를 보유하고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된다. 특히 배경음으로 모닥불 소리를 깔아놓고 숫자를 거꾸로 세어주는 소리를 듣자면 대체로 금방 잠들 수 있다. 다만 말 그대로 자다 깨는 것을 방지해주진 못하고, 자다 깼을 때마다 다시 스마트폰을 조작해서 실행해야 한다는 게 문제였다. 무한 반복이 되면 좋을 텐데 그런 기능은 지원하지 않는지라 자다 깨서 조작하는 게 습관이 될 것 같다는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3.디지털 디톡스

약물 다음으로 강력한 처방은 ‘침대에 스마트 기기를 가져가지 않는 것’이었다. 요즘은 누구나 스마트폰을 들고 침대에 누워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잠드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수면에 적합한 환경을 조성하는 ‘수면 위생’ 차원에서 보면 아주 몹쓸 버릇이다. 당장 나도 자다 깨어나서 SNS든 커뮤니티든 뒤적이는 버릇이 자리잡기 직전이었다. 그래서 크게 결심하고 잘 때는 그 어떤 스마트 기기도 가까이 두지 않기로 했는데, 그러자니 수면 유도 명상을 들을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수면 유도 명상을 녹음해서 메모리카드에 옮긴 다음 블루투스 스피커로 반복 재생하는 방법을 시도했다. 반복 재생은 무한히 계속되니까, 따지고 보면 이보다 더 이상적인 방법은 없을 것이다. 명상을 들으며 잠드는 건 이미 습관이 되었고, 자다 깨어나서 명상을 재생한답시고 화면을 조작하다 유튜브 따위를 켤 우려도 없다. 평온하고 안정적인 수면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안대와 함께 확실히 권할 만한 방법이다.


다만 이 방법에도 문제라면 문제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재미’가 없다는 점이었다…….


재미있게 잠든다는 것은 뜨거운 얼음을 찾는 짓에 가깝다


4.오디오북

잠자려는 사람이 재미를 추구하면 거기부터 수면은 붕괴한다는 게 내 지론인데, 명상의 재미없음이 그냥 무시할 만큼 가벼운 것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잠드는 과정이 재미있지 않으면 잠드는 과정으로 가는 게 달갑지 않아서 딴짓을 길게 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잠들기 싫어하는 영유아 같은 소리인가 싶지만, 즐겁게 잠들 방법을 찾아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긴 할 것 같았다. ‘헤어질 결심’에서 불면증에 시달리는 형사도 남의 도움을 받아 겨우 잠들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오디오북과 팟캐스트, 명상 앱 세 가지를 다양하게 테스트해봤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알게 된 중요한 사항 하나는 잠을 유도한다고 듣는 콘텐츠가 지나치게 재미있으면 수면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래서 자려할 때 웃음이 넘치거나 감정적 동요를 일으키는 팟캐스트는 가급적 피하게 되었고, 꼭 기억하고 싶은 대목이 많은 교양 서적도 듣지 않게 되었다. 요전에는 블랙홀에 빠지거나 고래에 먹히는 등의 특수한 상황에서 사람이 어떻게 죽는지 과학적으로 해설한 책 ‘그리고 당신이 죽는다면’을 들었는데, 아주 재미있어서 숙면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성우가 아니라 기계가 단조롭게 읽어주는 전자책의 TTS가 더 졸리며, 어느쪽이든 속도를 낮춰서 아주 느리게 말하면 효과가 좋다는 것도 알았다.


한편 명상 앱 중에서 Calm(구독제)도 아주 잘 쓰고 있는데, 여기선 명상이 아니라 ‘굿나잇 스토리’라고 해서 기행문이나 동화를 읽어주는 게 특히 유용하다. 유료 구독제인 만큼 목소리가 좋을 뿐더러 ‘목소리로 사람을 잠들게 한다’는 어려운 기술을 체득한 전문가들이 읽어주니까 ‘그렇구나, 카이로에 피라미드가……’하다가 잠들게 되는 것이다. 어느 것이고 아주 집중해서 듣게 될 만큼 재미가 넘치지도 않고 속도도 적당해서 내가 고민해서 고를 이유가 없다는 게 정말 큰 장점이다. 다만 이것도 반복이 되지 않는지라 자다 깨어나서 다시 틀어야 한다는 게 나로서는 가장 큰 단점인데, 코끼리(구독제)라는 국내 앱이 이와 비슷하면서도 반복을 지원해서 나중에는 갈아타볼까 싶기도 하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코끼리에 무료로 풀려 있는 콘텐츠를 들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저런 것을 시도하다 보니 괜한 탐구심이 생겨, 며칠 전부터는 유튜브에서 성경과 불경 등의 경전을 읽어주는 채널들을 찾아서 수면용으로 들어보았다. 듣기만 해도 엄청나게 졸릴 것 같은데, 둘 중에선 어느 쪽이 더 졸릴 것 같으신지? 나는 성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불경은 아무래도 생소한 만큼 귀담아 들으려고 하게 되는데 비해 성경은 익숙한 내용이 많고, 특히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내용이 줄줄 이어지는 부분이 그야말로 수마의 골짜기다. 이건 기독교 신자분들도 이해하시겠지.



아무튼 시간이 갈수록 잠자는 것도 일이라는 생각이 강해져서 잠들기가 싫어지고 그 과정을 어떻게든 다듬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다. 잠이라는 게 보상이 맞긴 하지만 재미라는 부분을 채워주진 못하니 현대인은 자든 안 자든 어느 쪽으로든 결핍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미래에는 잠자는 게 너무나 즐겁도록 꿈을 잘 유도해주는 기술이 나와주면 좋겠는데,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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