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Nov 10. 2021

누구도 열심히 보지 않는 사진을 위하여


요즘은 다들 카메라와 친하지 않게 되었다. 일기장 대신으로 블로그를 쓰는 사람도 적지 않고, 그들중에서 핸드폰 카메라에 만족하지 못해 적당한 컴팩트 카메라를 사는 사람도 제법 많던 시절이 있었던 과거에 비하면 요즘은 어지간히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누구도 카메라를 따로 갖추어 들고 다니지 않게 된 탓이다.


하기야 스마트폰에 1억 화소가 들어가고 있으니 굳이 무겁게 카메라를 쓸 이유가 없으리라. 심지어 갤럭시 S6쯤부터 스마트폰 카메라는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는 말까지 있는데, 아무리 그래도 ‘완성’이라는 건 너무 과장이 아닌가 싶어도 샘플 사진을 찾아보면 분명 일리가 있다. 스마트폰으로 찍고 스마트폰으로 보는 환경을 생각해보면 진짜 카메라로 찍은 것과 별반 차이도 없는 것이다. 확대해서 잘 뜯어보면 어디가 어떻게 차이나는지 짚어낼 수 있지만, 어지간해선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요컨대 스마트폰의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카메라는 어쨌거나 집에 한 대는 있는 일상용품에서 취미인의 취미용품 혹은 전문가의 전문기기가 되었다는 소리다.

나는 지금도 취미용품으로서의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다. 2013년 출시된 소니의 구형 중급기인 Nex-5t인데, 이 카메라를 사기까지의 과정도 참 기구한 업그레이드의 연속이었다.


일단 블로그를 열심히 하던 시절에 리코의 컴팩트 카메라를 사서 잘 쓰다가 아이폰을 쓰면서 처분한 뒤로는 줄곧 스마트폰 카메라로 만족하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폰 6s를 들고 계곡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과 동영상들이 이상할 정도로 아쉽게 느껴졌다. 그건 사진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나의 감정적 문제에 가까웠다. 인생에 몇 번 찾아오지 않는 행복한 순간인데 이런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화질로 기록하지 않으면 그건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게다가 애플이 이어폰 단자를 삭제하는 등 파격 행보를 시작한 데에 염증을 느끼기도 해서, 그때부터 라이카와 협업으로 만든 카메라를 탑재했다는 화웨이 P9을 썼다. 너무 어둡거나 채도가 높은 감이 있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도 괜히 라이카 운운한 게 아닌 듯 감각적인 사진을 잘 뽑아주는 기기이긴 했다.


화웨이 P9으로 찍은 사진. 과하면서도 매력적인 색감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기기 고장과 미진한 업그레이드에 지친 나머지 이번에는 엘지의 G6로 넘어갔고, 성능이 마음에 들지 않아 G7+, G8으로 빠르게 업그레이드했다. 그러는 한편으로 도저히 스마트폰으론 답답해서 안되겠다는 생각에 소니 카메라를 사버린 건 G7+를 쓰던 때였을 것이다. ‘수채화 현상’이라고 불리는 엘지의 후처리 프로세스 문제를 도통 견디기 힘들었던 탓이다.


사실 갤럭시의 동시대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샀어도 만족했을 테지만, 제조사에 대한 불호 이전에 그럴 돈이 없었다. 그에 반해 연식이 제법 된 카메라는 중고가가 크게 떨어져서 확실히 노려볼 만했다. 


그렇게 중고거래로 15만원에 잘 산 소니 카메라가 사진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긴 했다. 스마트폰으로 잘 찍지 않던 망원 인물 사진도 많이 찍어서 지인들에게 보내줬고, 저렴한 수동 렌즈를 직구해서 감성적인 보케 사진 놀이도 많이 즐겼다. 사진을 찍는 즐거움을 따져보면 150만원 어치는 즐겼다고 생각한다.


훌륭한 사진가처럼 보이게 해주는 자연 경관 줌샷


이렇듯 고성능 카메라가 내장된 스마트폰 시대에도 진짜 카메라를 쓰는 것만이 진정한 사진가의 자세인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으나, 아무래도 그건 아니다. 카메라를 들고 신중하게 초점을 맞춰 셔터를 누르는 맛이 멋지긴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갖고 다닐 것도 많고 번거로운 마당에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다니다간 어깨가 남아나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어지간히 사진을 찍을 맛이 나는 관광지에 가지 않는 다음에야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는데, 카메라 맛을 보고 나니 이게 또 성에 차지 않았다.


지금 사용중인 G8의 기본 카메라가 보여주는 문제점은 분명 스펙은 좋은데 (여전히) 후처리가 시원치 않은지, 조금만 광량이 부족하면 항상 어둡고 칙칙해지고 세부가 뭉개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찾은 해결책이 ‘전화 되는 카메라’를 만든다는 농담을 듣는 구글 픽셀에서 추출한 구글 카메라 앱을 APK로 설치해서 쓰는 것인데, 요 녀석은 또 이렇게까지 선명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세부를 잘 살려서 사람 얼굴을 항상 모진 풍파를 겪은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 표지처럼 만들어 버린다. 결국 셀카를 찍을 때도 후면 카메라로 각도를 잘 어림해서 구글 카메라로 여러 장 찍고, 잘 나온 것을 골라 라이트룸으로 보정하는 단계까지 거쳐야* 사진을 사람들에게 전송하게 된다.


이런 후보정 작업은 사진을 다시 뜯어보고 추억을 곱씹어보게 한다는 점에서 분명 의미가 있지만, 그렇다고 번거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딱히 예술을 하려는 게 아니니 한 방에 잘 찍고 끝내면 제일 이다. 그래서 카메라가 더 좋은 스마트폰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형이 안 쓰는 아이폰 11프로를 쓰라고 빌려줘서 옳다꾸나 카메라를 비교해보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이폰 사진이 잘 나오긴 했다. 아이폰 11과 G8은 카메라 스펙이 유사해서 엄청난 차이가 나진 않지만, 확실히 아이폰 사진이 더 부드럽고 따뜻하고(더 붉은 편이다) 과장이 덜한 느낌이다. 보정 전이라면 대체로 호감을 가질 만한 톤이다. 뭐가 인간적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적’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진이다. 괜히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카메라가 아이폰 카메라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그리하여 약간 더 마음이 가는 사진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아이폰을 사진용으로 따로 갖고 다니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는데, 이게 그렇게 반갑지만도 않은 감이 있다. 일단 사진을 수십 수백 장 찍을 것도 아니면서 묵직한 쇳덩이를 하나 더 갖고 다니기가 부담스럽다. 어지간하면 신체의 안녕을 추구하여 가볍게 다니고, 사진은 후보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게다가 최근에 사진에 대한 나의 관점, 사진관에 아주 큰 충격을 준 사건이 있었다. 결혼식장에서 후배가 찍은 단체 사진이 너무 어둡기에 열심히 보정한 뒤에 사진을 찍어준 후배까지 졸업 앨범의 전학생 사진처럼 타원으로 합성해서 다시 올렸는데, 더 잘보이게 되었다는 평은커녕 합성한 후배 부분조차 한참 걸려 깨달았다는 평을 받은 것이다!


그 사건을 계기로 사진을 큰 화면으로 열어 보는 사람은커녕 가로 사진을 가로로 보는 사람조차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약간 의욕을 상실했다. 이래서야 후보정이고 뭐고 다 무슨 소용이며, 약간 따뜻하고 감성적인 사진을 위해 폰을 하나 더 들고 다니는 건 무슨 헛수고란 말인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건대 내가 아무리 보람을 잃는대도 더 나은 사진을 얻으려는 노력을 그만두진 않을 것 같다. 알아보는 사람이 따로 없대도 나는 아니까. 내가 알아주고 혼자 노력의 결실을 맛보면 되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아마 그것이 사진가의 영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사진을 찍으려 하는 것. 취미 사진가든 프로 사진가든, 스마트폰으로 찍든 DSLR로 찍든 그런 노력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게 바로 사진가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더 나은 그림을 그리려는 노력에서 벗어날 수 없으면 화가고,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려는 노력에 사로잡혀 있으면 요리사이리라.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구글 카메라의 최신 버전과 아이폰 카메라를 비교해보고 있는데…… 갤럭시 플립3로 찍으면 훨씬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걸 보면 이건 그냥 장비병 환자의 구구절절한 변명이 아닐까?




(*라이트룸의 효과 탭에서 ‘텍스처’를 음수로 깎으면 피부가 매끄러워지더라. 그리고 나는 사진을 라이트룸으로 불러서 설정을 복사해 쓰게 해주는 앱인 koloro의 blogger의 3번 사진의 설정을 가장 즐겨 쓴다. 유명 보정앱들을 안 쓰는 이유는… 촬영일 정보가 바뀌기 때문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밤에는 과자가 부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