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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r 11. 2016

때로는 자전거로 달리고 싶다


어릴 때 인도가 잘 닦인 아파트 단지 근처, 게다가 공원이 가까운 곳에서 살아서 나는 자전거를 무척 좋아한다. 그냥 좋아하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생활 속의 당연한 이동수단으로 여겨왔다. 어릴 때는 주말마다 자전거를 타고 절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공원을 몇 바퀴나 빙빙 돌고 놀았으니까. 지금 생각해 보면 애들이란 정말 에너지가 끓어 넘치는 생물이다. 중학생만 되어도 뚜렷한 목적 없이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몇 시간이나 놀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다 학교에 다니면서 자전거는 거의 잊혀지고 앞으로도 탈 일이 없지 않을까 싶게 되었는데, 이게 웬걸, 공익 근무를 하는 동안 자전거를 숨 쉬듯이 타게 되었다. 버스 편이 엉망이라 자전거가 훨씬 빨랐던 것이다. 그래서 어지간히 날씨가 안 좋은 날만 빼고는 매일 자전거로 출퇴근했고, 그러다 보니 걷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날개가 퇴화하여 별 수 없이 걸어다니는 새가 된 것처럼 한심한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거의 자전거 의존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는데, 그게 어찌나 심했는지 하루는 앞바퀴가 펑크 난 자전거를 그대로 타고 나간 적도 있다. 흔히 자동차 앞바퀴가 펑크 나면 방향을 컨트롤할 수 없게 된다고들 하는데, 자전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면의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는 데다가 휠이 좌우로 퍽퍽 움직여서 타는 내내 식은땀이 흐른다. 무슨 기관의 요원들이 날 잡으러 오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그런 짓은 두 번 다시 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2년 지나 소집해제한 뒤로 자전거는 일상에서 완전히 이탈하고 말았다. 자전거를 타고 다닐 곳도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소집해제하고 한동안은 자전거를 타고 여의도까지 나가곤 했지만, 그것도 점점 바빠지면서 그만두게 되었다. 가깝고 안전하고 볼거리가 많아 타는 재미가 있는 자전거 코스란 좀처럼 찾기 힘든 것이다. 서울 전체적으로 제대로 된 자전거 도로가 깔리는 날이 오긴 올지 모르겠다. 하기야 인도도 시원찮으니 될 턱이 있나. 


일상적으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생활 속에서 자전거를 타서 아주 좋았다 싶었던 때가 딱 두 번 있다. 한 번은 강촌으로 간 대학교 1학년 MT 때였다. 딱 이틀짜리 MT에서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놀다 자고 일어난 우리는 어쩐지 단체로 자전거를 빌려 북한강을 따라 몇 시간을 달렸다. 무지막지하게 개발되어 묘한 관광도시가 된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때만 해도 강촌은 꽤 조용한 시골이었고 차도 얼마 다니지 않아서 자전거 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푸른 하늘 아래 살짝 따가운 햇살을 느끼며 시원한 강가를 원 없이 달리고, 그러면서 흐르는 강과 아직 지지 않은 꽃들을 바라보며 농담을 하고 낄낄거리는 기분이란 달리 비할 바가 없을 정도로 멋진 것이었다. 

(핸드폰 사진 화질이 이 모양인 시절이었다...)


또 한 번은 일본 기후 현 다카야마 시에 혼자 여행갔을 때였다. 조사할 때 가이드를 따라 자전거를 타고 투어링하는 메뉴가 있기에 갈 때부터 작정을 했는데, 막상 가 보니 그런 센터 같은 걸 찾을 수 없어서 그냥 혼자 자전거를 빌려다 무작정 타고 다녔다. 여행을 걸어서 하면 너무 느리고 차를 타면 너무 빨라서 자전거가 딱 맞는다는 말이 있는데, 그때 느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자전거를 타면 꽤 빨리 다니면서도 볼 건 다 볼 수 있고, 원할 때 멈춰 설 수도 있다. 한국에 도통 알려져있지 않은 시골의 소도시를 기어도 없는 자전거로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기분은 강촌을 달릴 때와 또 다르게 훌륭했다. 특히 그곳은 대도시와 달리 고층 빌딩도 없고 도시를 조금만 빠져나가면 드넓은 벌판이 펼쳐지고 그 끝에는 커다란 산맥이 있어서, 산맥으로 난 도로를 따라 달리자면 내 인생 같은 것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라 그대로 길 위에서 사라지고 싶은, 신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짜릿하고 복잡한 기분이 되는 것이었다. 

(어쩐지 택시 영업소에서 빌려주는 자전거)


(다카야마 시에서 한 정거장 거리에 있는 후루카와 시. 사진에 나오지 않은 집 옆 부분은 벌판이나 경작지였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다 지나간 추억에 불과하고, 그렇게 자전거와 함께 하는 일상의 기쁨도 여행의 기쁨도 영영 다시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안타까울 따름인데… 얼마 전에 집 앞에 있던 치킨집이 없어지는 바람에 이제 그 브랜드의 치킨을 먹으려면 전화로 주문하고 자전거를 타고 찾으러 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 참, 이거야말로 복잡한 기분이다. 


(2015.04.08.)



-후기


조만간 아예 새 글을 쓸 일이 있겠습니다만, 작년 가을에 중고 자전거를 한 대 사서 도서관이나 마트 갈 때 타고 있습니다. 둘다 걷긴 귀찮고 교통수단을 탈 수는 없는 거리라 편리하고 좋더군요. 그런데 자전거도 타지 않고 운동도 제대로 하질 않은지가 너무 오래 돼서 10분만 달려도 허벅지가 아주 비명을 지릅니다. 게다가 한동안 너무 추워서... 자전거를 포기하고 빨리 걷기를 택했습니다. 이게 늙는 것일까요...


(201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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