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Apr 06. 2022

벗어날 수 없는 칼로리의 무간지옥



오미크론 감염으로 일주일 격리된 기간 동안의 아픔도 결코 만만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격리가 풀린 뒤의 후유증도 가볍지는 않다. 그나마 나는 은근한 시림과 근육통, 멍한 느낌과 피로감 정도라 다행인데, 어머니는 아직까지도 간헐적 두통과 근육통, 관절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 증상이 사라지는 듯하다 오래도록 다시 나타나는 병이 또 있었을까? 


그나저나 오미크론 증상이 한창일 때는 당연히 하루 세 번 약을 챙겨 먹었고, 아침을 대신해서 마시던 방탄커피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위장에 커피와 약을 같이 넣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그런데 그 기간 동안 간편한 아침 식사로 택한 것이 하필 떡이었던 데다가, 기력이 쇠한 만큼 다른 식사도 잘 챙겨먹은 탓에 체중이 업보처럼 늘고 또 늘어서 이제는 체중이 또다시 생애 최고치에 근접하고 말았다. 심지어 격리 직전에 ‘격리 되면 이 정도는 먹겠지’ 하고 사놓은 과자들을 주워먹는 버릇이 들어 체중이 지금도 마냥 우상향 중이니, 이대로라면 경도 비만을 벗어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다만 현 상황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하게 보고 있지는 않은데, 그 이유는 생활 습관에 따른 체중 변화를 장기간에 걸쳐 체험하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쉽게 말하는 살 빼는 법,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세요’와 크게 다를 바도 없게 느껴지긴 하지만, 나는 아침을 방탄 커피로 때우고 식사 외에 아무 간식도 먹지 않으며 저녁 운동을 꾸준히 하면 살이 조금씩 빠지는 인간이다. 감량을 위해 지옥 훈련을 수행하지 않아도 2킬로에서 3킬로 정도는 조정되는 것이다. 이것도 인체의 신비라면 신비랄까?


문제는 그러한 금욕적 식습관이 상당히 유지하기 힘들다는 점이다. 일단 그런 짓을 하노라면 정신적으로 마모되는 기분이 든다. 아침은 무조건 방탄 커피, 점심은 빵과 시리얼로 해결하고 저녁만 가족들과 밥을 잘 먹으니까 인생이 미각적으로 너무 건조하다. 심지어 방에만 있는 시간이 워낙 길어서 말도 할 기회가 별로 없는지라 정말이지 입으로 하는 일이 별로 없는 처지다. 전자담배를 놓지 못하는 데에는 구강의 퇴화를 막는다는 이유도 있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저녁을 일찍 먹고 나면 갈수록 피곤하고 졸리고 허기지다. 아무 보급도 없이 영원을 향해 달리는 기분이다. 정말로 뭘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사람이 듣는다면 기가 찰 소리지만,  몇 걸음 떼면 먹을 게 쌓여 있는데 굳이 아무것도 먹지 않고 연기만 마시면서 버티자면 무슨 수행이나 자해를 하는 기분이다.


한동안은 그런 공복감과 허망감, 탈진감을 ‘건강하게’ 이겨내려고 사과나 귤을 하나씩 먹기도 했다. 그런데 기록을 따져보니 그것도 잘하는 짓은 아니었다. 그 기간에 체중은 미세하게 증가했다. 그리하여 마지못해 시험한 것이 깔라만시다. 한때 유행했던 이 음식은 레몬이나 라임 비슷한 과일로 비타민이 아주 풍부하다는데…… 솔직히 영양소는 내 알 바 아니고, 원액을 물에 타서 먹으면 새콤해서 썩 괜찮은 음료수를 마시는 느낌이 든다는 점이 중요하다. 딱히 목이 마르지도 않을 때 맹물을 벌컥벌컥 마시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이 깔라만시 희석액은 잘 넘어가서 물배를 채우기 좋고, 물배를 채우면 담배 연기 외에 아무것도 마시지 않고 있는 것보다는 그럭저럭 버틸만 하다.


(몸에 좋은 천연 과일을 먹으면 천연 칼로리를 섭취하게 될 뿐이다)



그러나 먹다 보니 알게 된 것인데, 깔라만시는 진한 맛을 즐기자고 원액을 많이 탔다간 당장 속이 아파진다는 단점이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매일 아침 공복에 커피를 들이붓는 처지라 밤중에도 위를 혹사하는 건 피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뾰족한 방법도 없이 아무렇게나 지내던 차에 우연히 생긴 쿠폰으로 카페에서 콤부차를 사다 먹어보게 되었는데, 일본어 때문에 다시마 차(콤부=일본어로 다시마)인가 싶었던 이 음식은 그게 아니라 발효된 차에 이것저것 첨가한 것으로, 새콤달콤하면서 탄산도 있어 깔라만시보다 더 음료수 같은 느낌으로 마시기 좋았다. 단맛이 나는 만큼 칼로리가 없진 않았으나 신경 쓰진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래서 얼마전부터는 분말로 된 콤부차를 주문해서 흥청망청 마셔대며 저녁을 버티기 시작했으니, 조만간 TV에 나올 정도로 건강해지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하루하루 저녁을 넘기면서 버티다 보면 문득 허망해지는 마음을 가눌 수가 없다.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체중계의 숫자에 일희일비하며 사는 것이 과연 올바른 삶의 방향일까? 당연히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조금씩 건강이 악화될 수 밖에 없겠지만, 줄곧 경도 비만이라는 애매한 박스권에 있는 사람으로선 배꼽티를 입을 것도 아니고 크게 티 나지도 않는데 괜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날 괴롭게 만드는 것은 ‘대체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뭘 먹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고 살아야 하는가’하는 생각이다. 찌긴 쉽고 빼긴 어려운 현대인으로 사는 이상 벗어날 수 없는 업보라는 것은 알지만, 그렇다고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 운명이라고 상상하면 그저 끔찍스럽고 낙도 없는 지옥의 아귀가 된 듯한 기분이다. 이 ‘세계’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돈이 쌓이는 속도와 지방이 쌓이는 속도를 바꿀 수 없는 걸까……. 아니, 그것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일주일에 4일 이상은 칼로리라는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삶을 꿈에서라도 체험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꽃 피는 봄이 싫어지는 마음과 타협하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