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이야기의 본질에는 갈등이 있고 갈등에는 스트레스와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니 드라마나 영화에는 등장인물이 고통을 견디고 삭이는 방법이 자주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방법 중에서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그만 나오면 좋겠다 싶은 게 있다. 바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이다.
사람이 괴로우면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우는 건 뭐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일 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그 생각이 어느 정도는 맞기도 하지만, 나는 이 연출과 생각이 양의 되먹임 관계에 있지 않나 싶다. 술담배로 고통을 이겨내는 연출이 자꾸 나오니 사람들도 힘들면 술담배를 찾게 되고, 사람들이 고통=술담배라는 인식을 가지니까 그런 연출이 쉽게 쓰일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국민의 평균적인 건강 측면에서 보든 창작물의 다양성 측면에서 보든 긍정적인 현상은 아니다.
예전에 ‘윤희에게’라는 평 좋은 영화를 봤을 때도 약간 실망한 부분이 담배가 너무 만병통치약으로 여겨지는 세상으로 보였던 점이다. 의도와 다르게 속을 후비는 말을 해대는 사춘기 딸을 혼자 키우면서 세상살이에 이래저래 시달리는 역할의 김희애 배우가 집에 들어가기 전에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확실히 기막힌 그림이었지만, 나는 감탄하면서도 표현이 다른 방식이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어떤 행위로도 처절한 고통과 한을 표현할 수 있을 배우인데 가장 평범한 방식을 쓰게 된 것 같아 아쉬웠다. 작품 전체로 보면 담배라는 소재가 딱 그 정도로만 쓰인 것도 아니고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다른 사정도 많았겠지만, 아무래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슬픔을 백만 가지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냥 슬프게 울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을 보는 기분이랄까…….
마찬가지로 예전에 외국인들이 한국 드라마를 보고 공통적으로 갖는 의문으로 ‘저 초록 병 음료는 무엇이기에 여차하면 너도나도 마시는 거죠?’라는 게 있었다는데, 확실히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이 포장마차를 찾든 어찌하든 반드시 소주를 마셔대는 모습은 그동안 심하게 남발된 느낌이 있다. 요즘은 드라마 장르가 다양해지면서 준 것 같긴 하지만, 공전의 히트를 친 오징어 게임을 봐도 고통의 치유제로 소주가 나온다. 게임에서 탈출해서 한창 자살 시도중인 상우도, 할아버지와 잡담을 나누는 기훈도 소주를 마신다. 아무리 소주가 싸고 적당히 독한 술이라지만 세상에 다른 선택지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기훈은 몰라도 자살하려는 상우는 마지막으로 좋은 술을 마셔도 괜찮지 않을까…….
반면에 인간이 고통받고 그것을 견디는 방법이 아주 생생하고도 색다르게 묘사되어 감탄스러운 드라마 장면도 있었으니, 파리의 연인이 바로 그랬다. 정확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서브 남자 주인공인 수혁이 실연과 좌절의 아픔에 너무나 고통스러워 견디다 못해서 동네를 전력으로 질주하는 장면이 있었다. 가슴이 찢어지도록 힘들고 숨도 쉬어지지 않는 고통을 아주 잘 표현해서 보는 내가 다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운 한편으로 아주 바람직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니, 운동은 우울감과 스트레스를 견디는 데에 아주 적당하고도 효과가 검증된 과학적 방법이기 때문이다. 만화 마조 앤 새디에서 부부싸움을 하고 집을 뛰쳐 나갈 경우 곧장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돌아오면 좋다는 팁이 나오는데, 그 정도로 실용적이고 바람직한 장면이었다. 그냥 바람직하기만 한 게 아니라 주저앉느니 죽도록 달리기를 선택하는 인물의 성격과 잘 맞아서 더 빛나는 장면이기도 했고.
역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영드 ‘셜록’에서 셜록도 스트레스를 견디느라 별짓을 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바이올린 연주부터 시작해서 시체로 실험을 하고 니코틴 패치를 몇 개나 붙여대는 것도 모자라 심심하다고 성성한 벽에 총질을 해대기도 하지만, 그래도 술을 퍼마시고 아무렇게나 뻗는 꼴을 보이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난장도 캐릭터를 잘 드러내는 동시에 재미도 있고 창의적이었다. 한국의 보편적인 정서나 관습도 분명 의미는 있지만, 이런 시도가 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소한 ‘속이 상했다=소주 폭음’이 너무나 당연한 공식으로 성립하지는 않길 바란다.
한편으로 나도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의지력이 나약한 편이라 고통을 견뎌보려고 이런저런 짓들을 해왔는데, 역시 최악이 음주인 것 같다. 힘들다고 술을 마시고 과자 따위를 먹어봐야 속만 부대끼고 숙취만 몰려온다. 그런 짓을 할수록 건강이 나빠지는 것도 피부로 생생히 느껴지고, 망가진 컨디션을 추스르자면 버려진 행주같은 기분이 될 뿐이다. 아무것도 나아지는 게 없다. 이것을 실감한 뒤로는 무알콜 맥주 외에 홧술 따위를 거의 마시지 않고 있다.
대신에 흥청망청 즐기는 것은 산책과 명상이다. 맥주 마시는 것을 무슨 미덕처럼 여겼던 20대의 나라면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얘기지만, 적어도 육체적/감정적으로 퇴화하지 않기 위해 건설적인 방도를 찾게 된 것이다. 특히 요즘은 팟캐스트나 녹음해둔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산책하는 데에 중독돼서 산책 시간이 길어지고 있는데, 이러다 영영 귀가하기 싫어지면 어쩌나 걱정이다. 하지만 결국은 귀가해서 씻고 밥을 먹으며, 그러고 나면 만사가 어찌 되었든 좀 나아진 기분이 든다. 과학적으로 당연히 그렇게 되는 법이라니까 감성적으로 이유를 찾지는 않아도 될 것이다.
그나저나 정말로 바쁜 사람은 느긋하게 산책을 즐길 수 없는 법인데, 이런 사람들이 자기 전 15분이라도 가뿐한 가상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도구가 나오면 좋겠다. 고글을 쓰고 발판을 밟으면서 세계 곳곳의 가상 공간을 돌아다닐 수 있으면 썩 괜찮지 않을까? 이미 비슷한 것들이 없진 않지만, 거기서 현실감을 끌어올려 뇌내 분비물질이 진짜 산책을 즐길 때와 엇비슷한 수준으로 나오도록 꾸며낼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현대 과학과 메타버스의 승리가 될 것 같다. 과학 기술이란 바쁘고 힘들고 불편하고 괴로운 사람들을 도와줄 때 정말 멋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