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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ul 27. 2022

오줌 싸고 손씻기의 어려움

용변을 본 뒤에 손을 씻는지 안 씻는지 진지하게 따져 얘기하는 것도 좀 웃기다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전염병들을 생각하면 그저 웃기만 할 일도 아니고, 이들이 왜 이러는지 이해해 보는 것도 나쁜 일은 아닌 듯하여 남자 입장에서 이유를 궁리해 적어본다.


일단 화장실을 나서기 전에 사람들이 손을 얼마나 잘 씻는가 살펴보자면, 의외로 놀라울 정도로 바르게 씻지 않는다. 질병청의 2020년 조사(역학관리보고서 2013-2020년 손씻기 실천률의 변화) 결과에 따르면 90퍼센트 이상이 말로는 잘 씻는다고 답하지만 실제로 관찰해 보니 남자 36.9, 여자 37.3 퍼센트만이 용변 후 비누를 사용해서 손을 씻는다고 한다. 어쩐지 남자가 훨씬 손을 잘 안 씻는다는 인식이 있었는데 사실 별반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손씻기 비율 자체는 75.4%로 크게 늘었지만 용변을 본 뒤 손을 비누로 씻고 나오는 사람이 반도 안 된다니, 좀 무서운 결과다. 말로는 비누로 깨끗이 씻는다고 답하는 것을 보면 손을 씻는 게 위생적이라는 인식은 있는 모양인데, 어째서 실제로는 씻지 않게 되는 걸까?


질병청은 꼼꼼하게도 이 이유도 조사해놓았다. 손을 안 씻는 가장 큰 이유는 습관이 안 되어서 51.4%고, 귀찮아서가 29%, 비누가 없어서 5%, 세면대가 부족해서 2.7%등이었다. 누구나 어릴 때 손 씻는 습관을 들이지만, 손을 안 씻는 습관으로 덮어쓰기는 훨씬 쉬운 모양이다.


여기서부턴 내 생각을 정리해본다(별로 과학적인 얘기는 아니다). 남자 입장에서 볼 때 남자들이 손을 씻지 않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부 남성들은 자신의 성기를 더럽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더럽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그것을 만지고 나서 손을 씻겠지. 하지만 그리 적지 않은 남성들이 실제로 자신의 성기를 더럽다고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 아무리 나라도 만나는 남자들마다 “자신의 페니스를 더럽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묻고 다닌 것은 아니지만,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만화에서 종종 묘사되듯이 일부 남자들은 집안에서 편하게 있을 때 드물게 사타구니를 긁곤 하는데(건선, 백선 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흥분하면 코피를 흘리는 식의 만화적 과장이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그런데 그런 뒤에도 손을 씻는 경우는 본 적이 없다. 등을 긁고 손을 씻으러 가지 않는 것처럼. 당장 나만 해도, 이렇게 말하긴 부끄럽지만, 딱히 좀 만졌다고 해서 반드시 손을 씻어야 할 정도로 추악하게 더럽고 오염된 부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보편적으로 자신의 성기에 대한 남자들의 인식은 '불만은 좀 있지만 그럭저럭 정이 가고 나쁘지 않은 녀석’인 것이다. 체감상 자신의 겨드랑이나 배꼽이 더 더럽다고 생각하는 남자들이 많지 않을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오줌을 싸면서 성기를 만져서 손이 더러워졌으니 빨리 비누로 깨끗하게 씻어야지’하고 손을 씻는 남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기가 흙탕물처럼 더럽든 가을하늘처럼 깨끗하든 소변기에서 소변을 방출하면 변기에 부딪친 줄기로부터 미세한 소변 방울이 자잘하게 튀기 때문에 소변을 보면 손이 더러워진다고 보는 게 맞다. 당연히 손을 씻어야 한다. 소변도 마시거나 환부 소독에 쓸 수 있으니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소변이 깨끗한가 깨끗하지 않은가 이전에 일단 냄새가 나고, 그리고 아무리 광천수처럼 청정한 소변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세균이 번식하게 되어 있으니 역시 씻어내는 게 위생상 옳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자신’에 속하지 않은 어떤 물체도 만질 필요 없이 바지 지퍼를 사용해서 성기를 끄집어내고 소변기에 소변을 방출하기만 하면 그만인 남성의 소변 배설행위 자체가 너무나 간편하다는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화장실 안의 또다른 공간으로 들어가면서 손잡이를 만지고 변기 뚜껑을 열거나 변좌를 확인해서 닦고 옷을 벗고 앉는 방식에 비하면 너무나 엄청난 차이다. 거의 페이팔과 공인인증의 차이에 가깝다. 이렇다 보니 남자들은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는 것만으로 손이 더러워진다는 체감을 하기 힘들고, 게다가 과정이 간단한 만큼 거기에 부가적인 공정을 덧붙이기 싫어진다. 소변 보는 게 그렇게 쉽고 간편하다면 손 씻는 것 하나쯤 더 하는 게 뭐가 어려운가 싶기도 하지만, 일만 보고 훌쩍 걸어 나가는 것과 꼼꼼히 손까지 씻고 나가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시간만 해도 스톱워치로 재보진 않았지만 아마 소변을 보는 시간과 손을 씻고 말리는 시간이 거의 같지 않을까? 그리고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화장을 고치는 등 많은 일을 처리하는 여성에 비해 남성은 그럴 일이 압도적으로 적기 때문에, 그런 부가 행위에 대한 귀찮음이 클 수밖에 없다. 애초에 일을 보고 세면대쪽으로 간다는 발상 자체를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남자일수록 거울을 보고 손을 씻을 확률이 높다는 뜻인데, 그러니까 콘택트 렌즈를 했거나 머리를 파이널 판타지처럼 화려하게 세팅한 남자라면 손을 씻을 확률이 비교적 높을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오줌을 쌌던 손으로 남의 손은 잡을지언정 자기 안구나 머리를 만지진 않겠지…….


깨끗한 화장실에서 여유롭게 손을 씻기란 의외로 어려운 것 같다


덧붙이자면 화장실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남녀 모두의 화장실에 해당되니까 차라리 화장실에 대한 나의 불평이라고 보는 편이 맞겠는데, 일단 물비누 보급이 시원치 않다. 아무리 손을 씻으면서 씻겨나간다곤 하지만, 그리고 과학적으로 안전하다곤 하지만, 누가 만져서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는 고체 비누를 만지기는 영 내키지 않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겨울에는 손이 깨지도록 찬 물이 쏟아지는 곳도 많아서 충분히 손을 씻기 힘들다. 그리고 페이퍼 타올 대신 건조기를 두는 곳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환경적으로 바람직한 일이긴 하겠으나 나는 건조기를 별로 믿지 않고, 마지못해 손을 들이밀 때마다 그 소리 때문에 진공청소기 뒤에다 대고 손을 말리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물론 손을 씻고 말리는 과정이 더러워서 손을 씻지 않는다면 그건 대단한 모순이 될 테지만, 변두리의 낡은 주유소 화장실 같은 곳에서 손 씻을 의욕이 싹 달아나는 걸 생각해보면 개선을 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하다못해 손소독제라도 비치해주면 좋겠다.


화장실 얘기에선 벗어나지만, 손소독제 사용도 더 적극적으로 홍보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손소독제가 비치되어 있는데, 나 이외에 이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쓸 때마다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크게 불편하거나 찝찝하거나 큰 수고가 드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다들 손을 소독하지 않는다. 휴대용 소독제를 들고 다니는 친구도 평생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 코로나 유행이 다 끝난 것도 아니니까 지금이라도 이경규 씨를 투입해서 손 씻기, 손 소독하기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양심 냉장고, 아니, 위생 태블릿 같은 것이라도 주면 어떨까……. 아무튼 위생을 따지는 게 별스럽지 않은 시대가 되길 바랄 따름이다.

(2022.07.27.)



추신

국내 최고의 오디오 매거진, 조용한 생활 7월호의 '슬퍼지려 하기 전에'에 제 사연이 소개되었습니다. '나는 이런 팀에 속해 있다'가 주제였는데 김혜리 기자님과 이슬아 작가님이 박장대소하시며 재미있게 읽어주셨습니다. 귀로 듣는 교양 매거진으로 이만한 방송이 없으니 무료 체험 기간을 활용하여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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