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Jul 20. 2022

난지도와 면도기와 상식에 대해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을 상식이라고 하는데, 이 ‘보통’ 에 포함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도 경우에 따라 달라서, 그건 당연히 상식 아냐? 하고 타인의 무지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 조심해야 할 일인 것 같다. 예전에는 다 비슷비슷한 환경에서 집단 교육을 받으며 몇 종류 안 되는 매스 미디어가 전달하는 문화를 누리고 살았으니 지식의 범위가 고만고만했지만, 이제는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이라도 다른 문화권을 경험하고 자랐을 확률이 낮지 않고, 문화 형성의 중추인 유튜브로 즐겨 보는 채널도 제각각이다. 여럿이 편을 나눌 때 데덴찌라고 하지 않나? 아니, 덴찌 후렌찌 아님? 하는 식으로 싸우는 건 물론이고 그게 대체 뭐냐고 묻는 경우도 늘어난다는 소리다. 어쩐지 난 둘 다 듣고 자랐지만.


올 봄에는 그동안 내가 당연히 상식이라고 생각한 게 상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란 일이 있었다. 때는 4월, 꽃피는 계절이라 나는 친구들과 언제 어디로 꽃놀이를 가면 좋을지 고민하며 채팅으로 여러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뒷동산에 올라서서 한강을 바라보니 난지도에도 벚꽃이 피어 있었다. 그래서 사진을 찍어 난지도에도 벚꽃이 피었다고 올렸더니, 뒤이은 답이 충격이었다. ‘와, 그렇군요, 근데 난지도가 어디죠?’라는 것이었다. 그 방의 누구도 난지도를 몰랐다. 들어본 적조차 없다는 투였다. 하늘 공원 얘기를 꺼내고 나서야 겨우 가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나왔지만, 난지도라는 지명은 들어본 적이 있긴 있는 것 같다는 정도에 그쳤다.


한국인이면 여의도를 모르는 경우가 별로 없듯이 난지도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완전히 혼자만의 착각인 모양이었다. 하기야 여의도를 다들 알 거라는 생각도 가련한 서울 중심주의일지도 모른다. 여의도를 친근한 곳, 갈 만한 곳으로 여기는 건 근처에 살기 때문일 테니, 줄곧 여의도에서 먼 곳에서만 산 사람이라면 뉴스에서 맨날 나오긴 하는데 그게 정확히 어디 붙어 있는 곳인지 딱히 알 바도 아니고 지겨울 따름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무슨 넓이를 비교할 때 흔히 여의도 크기와 비교하곤 하는데, 그것도 여의도와 무관한 사람이 듣자면 기가 찰 노릇일 것이다. 여의도가 무슨 한국인 모두 순례해야 하는 성지는 아니니까.


그러니 난지도를 모르는 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닌 것도 같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난지도를 가깝고 익숙하게 여기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난지도를 지도에서 자주 보거나 놀러 갔거나 놀러 갈 만한 곳으로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쓰레기 매립지’ 때문이었다. 나는 난지도 매립이 중단되었다는 뉴스를 실제로 본 적도 있고, 이후에 환경 얘기를 다룬 책에서도 몇 번이나 난지도 얘기를 접해온 것이었다. 난지도 매립이 중단된 뒤 그곳이 하늘 공원으로 꾸며졌다는 얘기는 나름대로 유명하긴 하지만, 반드시 알고 기억해야만 하는 얘기는 아니다.


게다가 나는 서울 지명에 대한 어린이용 서적(서울 600년 이야기고개)에서 난지도에 대한 얘기를 흥미롭게 읽기도 했다. 난지도는 난초와 영지 버섯이 곳곳에 자라는 아름답고 멋진 섬이라 난지도였고, 여의도는 너나 가지라는 뜻에서 여의도라 했는데, 지금은 두 섬의 운명이 뒤바뀌어 난지도는 쓰레기장이 되었고, 여의도는 금싸라기 땅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그 책에 쓰여진 ‘지금’과 달리 지금은 난지도도 퍽 아름답고 멋진 데이트 코스가 되었으니 사람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땅의 운명도 알 수 없는 일이구나 싶지만, 아무튼 난지도를 모르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보는 게 맞겠다.


다시 상식 얘기로 돌아가서, 6월에도 상식의 차이를 절실히 느낀 일이 있다. 나는 숙소를 잡고 노는 모임에 하루만 있다 올 요량으로 참가했다가 내친 김에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그 때문에 세면도구고 뭐고 전부 현지에서 조달해야만 했다. 수건과 비누, 샴푸 정도는 숙소에 있으니 심각한 상황까진 아니었으나, 면도를 못하는 게 영 개운치 않았다. 그래도 일회용 면도기를 사고 싶진 않아서 마스크를 쓰고 버티기로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여자애가 다른 남자애 면도기를 빌려 쓰면 되지 않겠냐고 하는 게 아닌가.

면도는 밝은 곳에서 하는 게 상식이다. 아마도 그렇겠지?

남자는 면도를 하면 아주 높은 확률로 칼날에 피를 묻히기 마련이라 면도기를 타인과 공유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상식이다. 아니, 그건 상식 이전에 칫솔을 공유하지 않는 것처럼 감각적으로 꺼리게 되는 영역인데, 여자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녀는 친구집에 가서도 큰 거부감 없이 면도기를 빌려서 다리털을 정리한다는 것이었다. 하기야 다리의 피부 조직은 얼굴보다 튼튼하니까 칼날을 좀 비벼대도 별반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다리털을 밀어본 적이 없어서 확신할 수 없지만 아마 그렇겠지? 그리하여 남자들은 면도기의 위생 문제에 대해 설파했고, 나는 솔선수범하여 면도를 포기하고 너저분한 얼굴을 마스크로 가린 채 반나절을 보냈다.


이 면도기 공유에 대한 경험 차이로 내가 알게 된 것은, 우리가 같은 세계에 지내고 있다고 해도 보고 느끼고 아는 게 전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파브르가 누군지 모를 수도 있고, 아서왕을 남자로, 혹은 여자로 알 수도 있다. 한때 인터넷에 떠돌았듯이 영국이 섬인지 모르는 건 역시 좀 상식 밖이라는 느낌이 들긴 하지만, 그것도 무슨 맥락이 있긴 할 것이다. 스웨덴에서 손님에게 밥을 주지 않는다는 것도 좀처럼 이해하긴 힘들지만 무슨 까닭이 있긴 하겠지. 황금 같은 주말마다 굳이 이런 무의미한 글짓기에 매달리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 만큼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당장 ‘이상하다’고 판단해버리지는 말아야겠다.

(2022.07.16.)

매거진의 이전글 가벼운 잡지, 무거운 잡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