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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Nov 24. 2022

그 택배는 어디로 갔을까

스마트폰 실종 사건



지난 2022년 10월 말, 어머니는 오래도록 쓰던 갤럭시 S8+의 사용을 중단하기로 결심하고 갤럭시 S22 울트라를 주문했다. 그런데 다음날, 배송이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무색하게도, 택배는 오지 않았다.


배송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이 먼저 오고 실제 배송이 약간 늦는 경우는 종종 있는 터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택배는 오지 않았다. 어쩌면 고가의 상품이라 현관문 옆의 양수기함에 넣어둔 게 아닐까 싶어서 몇 번을 확인해봤지만 허사였다. 배달되었다는 스마트폰은 사라졌다.


일단 정확한 배송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기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택배 기사는 남은 것이나 잘못한 것 없이 배송을 다 마쳤다고 했다. 깜빡하고 남은 게 있었다면 차라리 좋았을 텐데, 아니었다. 결국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오배송이었다. 무수한 택배 상자를 여기저기 갖다 놓는 작업을 하다 보면 층이나 동을 헷갈리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나도 예전에 겪은 일이다. 전자 담배 부품을 무인 택배함으로 시켜서 받기로 했는데 막상 가서 열어보니 함이 텅 비어있었던 것이다. 결국 택배 기사와 보관함 관리 업체 양쪽에 문의한 끝에 기사가 내 택배 상자를 공교롭게도 마침 열려 있던 한칸 위에 넣어버렸음을 알아낼 수 있었다. 관리 업체는 통화하며 원격 조작으로 함을 열어주었고, 나는 받아야 할 택배와 간신히 상봉했다.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전화 안내를 들으며 잃어버린 택배를 찾자니, 영화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 비싼 물건도 아니고 금방 찾았기에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았겠지만…….


어쨌거나 택배 기사가 알아서 잘 확인하고 연락을 주기를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일이라 나는 재활용품을 버리고 오는 길에 아파트 우리 동의 여섯 개 층 중에서 우리집과 같은 위치에 있는 집 앞을 보았다. 없었다. 다음으론 어머니와 함께 전체 층을 보았다. 역시 없었다. 이제 오배송이 되었다면 택배가 아예 다른 동이나 다른 아파트로 갔거나, 아니면 택배를 받은 집에서 누구나 그렇게 하듯이 별 생각 없이 상자를 집안으로 가져갔을 거라고 추측해야 했다.


어느 쪽도 가능한 일이긴 했는데, 아파트 단지나 동이 아예 잘못되는 경우는 좀처럼 없는 일이라 나는 다른 층에 놓인 택배를 그 집 사람들이 가져갔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했다. 요즘은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송장에 이름이 다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예 배달 후에 송장을 뜯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받은 집에서 일단 가져가서 뜯어버리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찌 되었을까? 사지 않은 스마트폰 상자가 나오면 개봉한 사람이 아닌 동거인이 주문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집에 와서 확인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나는 다음날 아침에 다시 우리 동 문 앞을 보기로 작정했다.


그 사이에 택배 기사는 내일 관리사무소에서 엘리베이터 CCTV영상을 확인하겠다고 했다. 엘리베이터의 CCTV가 배송이 정확히 되었는지 모든 것을 알려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누가 어떤 박스를 들고 어디서 타고 내렸는지는 알 수 있다. 오배송인지, 아니면 도둑인지도 알 수 있으리라. 흔히 한국에서 택배 상자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국룰’이고 자전거만 순식간에 사라지기 마련이라는 농담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지키지 않는 택배 상자를 집어가는 도둑이 적지 않다. 말 그대로 아무도 지키지 않는 물건이 널려 있으니 당연하지 않은가?


게다가 도둑질을 하겠다고 작정한 자가 아니더라도 최신 스마트폰이 들어있다고 적힌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으면 집어갈 만도 하다. 어떤 이유로 문 앞에 찾아온 사람이 견물생심으로 박스를 주워들고 모자를 눌러쓴 채 엘리베이터를 타거나, 비상계단으로 도망친다면……. 그러면 아주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다. 경찰에 신고해야 할 테지. 그러나 과학 수사로 도둑은 잡을 수 있어도 사라진 물건까지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결국 최종 책임은 택배 기사가 물게 된다. 원래 택배는 수령인의 확인을 받는 게 정상인데 ‘비대면 배송’이 일반화되어 그 과정을 건너뛰면서 말단에 있는 택배 기사가 위험부담을 떠안게 된 탓이다. 편하면 됐지 아무렴 어떤가 하는 생각에 나도 이런 불공정한 관행에 가담한 게 아닐까? 최소한 고가의 물건인 만큼 꼭 양수기함에 넣어달라고 해야 했던 게 아닐까? 걱정 속에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씻기도 전에 우리 동을 살펴보고, 가장 가까운 옆동에 들어갔다. 원래 옆동 공동 출입구로 들어갈 방법이 없지만 이삿짐을 나르고 있는 중이라 진입이 간단했다. 나는 제발 내 직감이 맞길 바라며 우리집과 같은 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거기엔 각 집에서 내놓고 사는 잡동사니만 쌓여있을 따름이었다.


그 택배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오배송 문제를 검색해봤다. 시킨 적 없는 김치를 받은 사람이 착오로 그것들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외국에 갔다 온 후 소송을 당했다는 사례가 있었다. 나는 시킨 적 없는 스마트폰을 받은 누군가가 깜짝 선물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뜯어서 사용하는 광경을 상상해 봤다. 아니면 당장 팔아치우는 모습을. 일이 공교롭게 흘러가면 마침 선물을 받을 만한 타이밍일 수도 있으리라. 생일 선물만 해도 비싼 물건은 좀 늦게 줄 수도 있으니 선물을 받는 기간을 보름으로 잡으면 24분의 1정도의 확률로 착각이 가능하다. 잘못 배송된 물건을 일단 냅다 팔아버린 뒤에 모른다고 잡아떼기로 작정하는 사람 역시 상식적으론 없을 것 같아도 상식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천지에 널려 있다. 100만원은 상식을 잊기에 충분한 돈이다. 심지어 문제를 유발한 게 자기도 아니니 더욱 그럴 법하다.


걱정에 휘말려 있자니 택배 기사가 전화해서 스마트폰을 뜯어도 사용할 수 없도록 일련번호를 알아낼 수 없겠냐고 물었다. 비슷한 걱정을 한 듯했다. 나는 쇼핑몰에 전화해서 상담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일련번호를 알 수 있나 물었다. 그러나 답은 부정적이었다. 내 기억에도 옛날에는 스마트폰을 사면 일련번호가 박스에 적혀 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아니거나, 공기기를 그런 식으로 범죄자에게 줄 현금 추적하듯이 철저히 관리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내가 마지막으로 산 새 핸드폰이 아이폰 3GS인데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하여 오배송된 스마트폰을 주운 누군가가 얼씨구나 신나게 쓰거나 팔아버렸을 거라는 상상은 더욱 현실감을 갖게 되었다. 스마트폰은 분실해도 대체로 찾을 수 있다는 인식과 달리,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는 새 자급제 기기는 그야말로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모양이다. 요컨대 금덩어리를 박스에 넣어서 ‘금덩어리 재중’이라고 적고 집 앞에 놓아둔 셈이다. 미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가 되자 택배 기사가 CCTV 조회 결과를 전해 들었다고 연락했다. CCTV는 경찰이 함께 가지 않으면 볼 수 없게 되어 있어서 말로만 들은 모양인데, 그 결과는 달리 왔다 간 사람은 없고, 반품할 물건을 가지러 온 택배 기사만 있었으니 그 사람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자기 잘못이 아님을 확인한 기사의 어조는 자신감이 넘치고 어딘지 모르게 공격적인 느낌도 들었다.


아무튼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나는 공격당한 느낌을 받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반품 처리한 물건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놀러 가서 입기로 하고 생활 한복 셔츠를 샀다가 사이즈 교환 신청을 하면서 양수기함에 다시 넣어뒀는데, 그걸 가지러 온 택배 기사가 착오를 일으켰을 가능성이 높은 듯했다. 스마트폰을 배송한 택배 기사와 어머니의 어조는 반품 상품을 가져간 그 기사놈이 도둑놈이라는 식이었으나, 택배 기사가 미치지 않고서야 일자리가 걸린 도둑질을 할 가능성은 낮을 것이다.


나는 침착하게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반품 상품을 수거했다는 메시지를 보낸 택배 기사에게 전화를 걸어 상품 수거에 착오가 있나 확인을 해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전화를 받은 상대가 바로 스마트폰을 배송한 그 기사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나온 정보만으로 생각하면, 택배 기사가 배송한 뒤에 그것을 다시 반품 상품으로 수거해서 가져가놓고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으며, CCTV 영상 확인 결과를 듣고도 그게 자신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는 뜻인데……쉽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택배 기사는 형국이 다시 바뀌자, 반품 처리에 이상이 있었던 모양이라고 센터에 연락해서 수거된 물건을 확인하고 사진을 보냈다. 그건 적당히 큼직한 박스였다. 내가 반품시킨 건 쇼핑몰 로고가 인쇄된 비닐 봉투였으므로 착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게 와야 할 물건이 맞는 것 같다고 했고, 그로부터 한 시간쯤 지난 뒤에 택배 기사가 찾아와 사과했다.


보편화된 배송 시스템은 지나치게 인간의 양심에 의존하고 있다



사건은 의외로 단순했다. 택배 기사가 건강 문제로 어제 오후 일을 남에게 부탁했고, 부탁받은 사람은 내가 반품 신청을 하며 남긴 메시지 ‘양수기함에 넣어뒀습니다’를 확인하지도 않고, 물건을 찾으러 갈 테니 어떻게 해 달라는 전화도 하지 않은 채 찾아와서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수거한 것이다. 어제 확인했을 때 내가 양수기함에 넣어둔 봉투도 사라졌으니, 스마트폰이 배송되었을 때 봉투가 회수는 되었으나 전산 처리가 제때 되지 않은 문제도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하기야 상자 사이에 눌리면 그런 게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을 만한 봉투였으니, 있음직한 일이긴 했다.


그리하여 센터까지 되돌아가서 엉뚱한 옷가게로 날아갈 뻔한 스마트폰은 송장이 교체되어 정상 배송되었다. 경찰을 부르네 마네 소송전이라도 준비할 듯했던 어머니는 기사에게 참 공교롭게 되어 고생을 시켰다는 둥, 물어내게 되면 월급이 왕창 날아갈 텐데 어쩌나 걱정을 했다는 둥, 마음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소리로 분란을 마무리했고, 나도 적당히 거들었다. 얼굴과 집 주소를 아는 사람과 척을 지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옥 같은 배송이 끝난 이후로 나는 몇 시간에 걸쳐 새 스마트폰을 세팅하는 데에 시간을 들였다.


번잡한 설정을 처리하는 동안 마음이 복잡했다. 상자 놓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었더라면, 부탁 받은 사람이 확인을 제대로 했더라면, 택배 기사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비대면 배송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필 그 때 반품하지 않았더라면, 반품 상품을 미리 내놓지 않았더라면, 내가 옷을 사지 않았더라면, 코로나가 없었더라면, 인류가 야생 동물의 서식지를 침범하지 않았더라면…….


간단히 스마트폰으로 주문하고 다음날 문 열어보면 시킨 물건이 당연하다는 듯 놓여 있는 생활은 극도로 편리해서, 잘 생각해 보면 거의 마법처럼 느껴질 지경이다. 하지만 그 마법을 위해서 누가 어떤 노동을 하는지, 다같이 어떤 상식적 절차를 생략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위험 부담이 어디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숨어 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편리한 것에는 분명 독이 있다. 최소한 세 사람이 100여만원의 행방을 두고 고민을 할 정도의 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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