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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Nov 30. 2022

아무 슬리퍼나 허락할 수 없어



원숭이 꽃신이라는 말이 있다. 관용 표현이라고 하기엔 신문 기사 같은 것에나 나오고 실제로 쓰는 사람은 별로 없는 말인데, 아무튼 오소리인가 여우인가가 신발 없이 잘 살던 원숭이에게 신발을 공짜로 주기 시작해서 나중에 신발 없이 살 수 없게 된 원숭이들에게 비싼 값에 꽃신을 팔아 폭리를 취했다는 동화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즉, 분명 없어도 잘 지냈는데, 한번 쓰기 시작한 이후로 너무 익숙해져 비용이 들어도 계속 쓰게 된 물건 따위를 가리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 어지간한 콘텐츠는 다 이런 식으로 팔고자 하니 어색한 개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 우리집에선 어머니와 내가 실내 슬리퍼에 사로잡혀 원숭이 꽃신을 신는 꼴이 되고 말았다. 대체 예전에 맨발로 다닐 때는 어떻게 지냈던 것일까?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집에서 맨발로 걸어다니는 게 당연하던 때의 기분과, 처음으로 실내 슬리퍼를 쓰게 된 뒤의 기분을 소상히 적어둘 걸 그랬다. 잃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기억이다.


아무튼 집에서 슬리퍼를 신게 된 계기는 층간소음 때문이었다. 내가 팔굽혀펴기와 가벼운 점프를 연달아 하는 버피 테스트를 방에서 좀 한 뒤로 아래층 분이 올라와 점잖게 항의한 탓에 층간 소음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사실 아래층 분이 올라왔을 때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고 했으니 방에서 점프만 하지 않아도 되었으리라. 하지만 별 생각 없이 걸으면 바닥이 쿵쿵 울리는 소리가 나긴 했고, 겨울엔 난방을 적게 하는 탓에 발이 시리기도 했으므로 그즈음부터 앞이 막힌 털 실내화를 신기 시작했다. 이후로 집에서 실내 슬리퍼를 신는 게 너무 당연한 일이 되고 말았다. 원숭이 꽃신 얘기처럼 슬리퍼 없는 생활로 절대 못 돌아갈 지경까지는 아니지만, 종종 맨발로 걸어다닐 때면 뒤꿈치가 좀 아파서 약간 신경이 쓰인다. 여기저기 걸어다니다 그 발로 이불 속에 들어가는 것도 떳떳하지 않은 감이 있고.


그리하여 슬리퍼를 신는 게 당연한 풍습으로 자리잡은 것 자체에는 별 불만이 없다. 대단한 비용이 들진 않으니까. 그런데 불만 없이 오래 잘 신을 슬리퍼를 고르는 것도 그리 만만한 일은 아님을 체감하게 되었다.


일단 겨울에 신는 털 슬리퍼는 따뜻하긴 하지만 관리가 까다롭다는 문제가 심각했다. 정기적인 세탁도 말이 쉽지 도통 귀찮아서 할 수 없는 짓인데, 관리를 좀 소홀히 했다간 금방 때가 타고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포기하고 약간 말랑말랑한 재질의 화장실 슬리퍼 엇비슷하면서 발등에 구멍이 좀 난 슬리퍼를 한동안 신어봤다. 이건 물을 머금지 않아서 빨리 마르는 장점이 있긴 했으나, 시간이 지나면 발냄새가 나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바구니 모양의 구멍과 구멍 사이를 몇 군데 잘라내어 조금씩 통풍이 더 잘 되도록 개조하기에 이르렀는데, 확실한 효과를 보려면 슬리퍼가 아주 누추해 보일 정도까지 뜯어내야 할 게 분명해서 금방 개조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정착한 것이 어머니가 고속터미널에서 사온 EVA재질의 푹신한 슬리퍼다. EVA는 찾아보니 에틸렌 초산비닐 아세테이트 공중합체라는데, 다른 석유 가공품과 달리 무해해서 조립식 바닥 매트나 신발 깔창, 중창 따위에 잘 쓰이고 있단다. 실제로 이 두툼한 슬리퍼를 신어보니 여간 푹신하지 않아서, 맨바닥에서도 걱정 없이 뜀뛰기를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앞이 다 트인 모양이라 발이 좀 시리긴 했지만 편리함과 타협할 수 있는 정도였으므로 꽤 오랜 기간 사계절 내내 이것만 신었다.


그런데 사이즈가 맞지 않는 게 상당히 큰 문제였다. 어머니가 사올 때 애초에 재고가 별로 없어서 두 사이즈는 큰 것들을 사온 탓이다. 슬리퍼야 원래 직직 끌고 다니는 것이니 좀 커도 괜찮은 게 보통인데, 이 재질은 대단히 마찰계수가 높아서 약간 불편할 지경이기도 했다. 가령 벗었다가 다시 신을 때 어지간한 슬리퍼는 발로 툭 차서 방향을 바꾸기 마련인데, 이 녀석은 도통 미끄러지질 않아 굴러갈 때까지 차든지, 아니면 내가 알아서 몸을 돌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문제가 어우러지니, 걷다가 앞이 자꾸 걸려 휘청하게 된다는 새 문제가 파생되었다. 어지간히 대궐같은 집이 아닌 다음에야 집안에서는 크고 넓게 걷지 않는 법이라 발이 지면에서 충분히 떨어지지 않는데, 슬리퍼가 크고 두꺼우니 발끝이 지면에 끌리는 경우가 왕왕 일어나는 것이다. 게다가 재질 특성상 그때마다 슥 미끄러지는 게 아니라 바닥을 붙들어버리니 휘청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화가 치밀어오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멀쩡한 슬리퍼를 내다버릴 수도 없고 팔거나 남 주기도 뭣해서 마르고 닳도록 신게 되었다.


그렇게 이 편하지만 불편한 슬리퍼를 2년 이상 신은 것 같은데, 문득 다시 보니 앞이 걸릴 때마다 크게 젖혀진 탓에 양쪽 다 갈라져 있었다. 마침내 교체해도 괜찮을 시기가 온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저기 검색해 보니, 비슷한 슬리퍼가 ‘구름’ ‘마카롱’ ‘모찌’ 따위의 수식어를 달고 제법 많이 팔리고 있었다. 반갑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어디 한두 군데에서만 판다면 큰 고민 없이 평 좋고 싼 것을 사면 그만일 텐데, 모든 쇼핑몰에서 수많은 이름으로 비슷한 것들이 팔리니 고르는 것도 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막상 여기서 사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사이즈와 색을 정하고 주문하려고 보니 밝은 색은 여성용, 어두운 색은 남성용만 나오는 곳도 많았다. 90년대식 아동 옷 색깔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그리하여 한참 고심하고 헤맨 끝에야 간신히 EVA 재질에 사이즈도 맞고 가격도 적당한 슬리퍼를 두 켤레 주문할 수 있었다. 이제 앞으로 3년쯤 슬리퍼 고민은 안 하겠구나 싶어 어깨가 가벼워진 기분이 들 지경이었다. 그런데 도착한 슬리퍼를 신어보니, 아뿔싸, 사이즈가 맞지 않았다. 그간 신던 슬리퍼가 커서 문제였기에 딱 맞는 사이즈를 시켰더니 이번엔 발등이 너무 끼는 것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대충 신지 뭐……라고 넘어가기엔 중대한 문제였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어머니와 나는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긴 만큼 외출용 신발보다 실내용 슬리퍼가 더 중요하다고 해도 그리 허황된 말은 아니다. 게다가 실내 슬리퍼라는 물건은 요철이랄 게 없는 환경에서만 제한적으로 신고 다니니 닳거나 찢어지려면 몇 년이 걸릴지 기약이 없다. 그렇다고 외출용 신발처럼 코디 따라, 기분 따라 갈아신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한 번의 선택이 몇 년을 좌우하는 셈이었다. 고작 몇천 원 하는 물건 대충 쓰지 굳이 자꾸 이거저거 따질 필요 있나…… 같은 가벼운 생각으로 다룰 수 없는 게 바로 실내 슬리퍼였다.


그리하여 나는 고심 끝에 슬리퍼 값과 비근한 택배비를 물고 맞지 않는 슬리퍼들을 반품 처리했다. 직접 매장에서 신어봤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 분통터지는 노릇이었지만 전부 내 잘못이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어머니는 아직 신을 만한 EVA 슬리퍼를 계속 신기로 했고, 나는 어머니가 다이소에서 사온 저렴한 슬리퍼를 신으려 했다가…… 딱딱한 게 도무지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아서 포기하고 얼마 전에 화장실에서 쓰려고 산 슬리퍼와 바꾸어 신게 되었다. 얇긴 하지만 이것도 재질은 EVA인듯, 그럭저럭 발은 편해서 감수할 만했다.


슬리퍼란 사소하지만 내 몸에 가까운 것이다



잠깐 새는 얘기로, 화장실에서 신을 슬리퍼가 가져야할 최고의 덕목은 역시 미끄럼 방지다. 건식 화장실이 아닌 다음에야 화장실 바닥은 재질이 어떻든 미끄러워지기 일쑤라 슬리퍼가 발디딤을 단단히 잡아줘야 마음이 놓인다. 형태는 그 다음인데, 기왕이면 바닥에 구멍이 나 있어 건조가 아주 빨라야 급히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양말이 젖어 짜증이 나는 경우를 피할 수 있다.


추가로 좌우 구분이 없어야 대충 아무 쪽이나 끌어다 신기에 편하다.이번에 화장실 슬리퍼를 좌우 구분이 있는 것으로 바꾸게 된 후에 깨달은 부분인데, 사람이 화장실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발 방향이 반대이기 때문에 슬리퍼의 좌우가 다르면 들어갈 때마다 왼발로는 대각선 앞의 오른쪽 슬리퍼를, 오른발로는 왼쪽 슬리퍼를 신어야 한다. 이러려면 몸을 크게 돌리든지 슬리퍼 둘을 한꺼번에 발로 밀어서 방향을 맞춰야 하는데, 이게 알게 모르게 귀찮은 과정이다. 이런 귀찮음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극에 달한 제품으로 좌우는 물론이고 앞뒤조차 구분이 없는 화장실 슬리퍼도 본 적이 있다. 세면대 따위에서 발등으로 물이 떨어지는 걸 전혀 막아주지 못하긴 하지만, 친구 집에서 신어보니 인간 세계의 기술이 아닌 듯이 간편하긴 했다. 집 근처에서 팔았다면 샀을 텐데 그렇게 되지 못해서 아쉽기 그지없다.


다시 이야기를 되돌려서, 그렇게 우리 집안의 슬리퍼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진 않았지만 큰 불만은 없는 상태로 멈춰있게 되었다. 인생에서 100퍼센트 만족스러운 상태는 찾기 어려운 법이니 적당히 만족하고 사는 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비용이 아깝다는 이유로 가장 나은 해결책을 찾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면 또 멍청하고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하여 어머니나 나 둘 중 누구든 먼저 고속터미널에 가는 사람이 슬리퍼를 직접 보고 사되, 그 시간을 굳이 앞당기지는 않는 정도로 정하기로 했다.


한편으로 예전에 신던 내 EVA 슬리퍼는 어찌되었는가 얘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새 슬리퍼를 받는 대로 버리려던 계획이 무산되어 일단 방 안에 처박아 놓았다가…… 홧김에 실리콘 접착제와 테이프와 스테이플러 따위로 고치는 데에 성공하고 말았다. 고쳐서 신으려고 작정한 것은 아니고, 줄곧 EVA 신발을 신을 테니 효과적으로 수리할 방법을 미리 찾아놓으면 좋겠다 싶어서 해본 실험이 성공한 것이다. 기쁜 한편으로 이게 들키면 새 슬리퍼를 살 명분이 영영 사라질 테니 두렵기도 하다. 이게 살려내선 안 되는 존재를 살려낸 미치광이 과학자의 심정일까……. 새 슬리퍼를 들이는대로 이 녀석은 처분해야겠다. 아무튼 내 발에 꼭 맞는 슬리퍼를 찾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들 줄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슬리퍼 따위 신지 않았을 텐데.

(2022.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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