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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Dec 21. 2022

2022년을 빛낸 소비의 기록

다사다난하지 않은 해가 없지만 2022년은 더욱 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이 엉망이었고 많은 것이 꼼꼼이 박살났다. 그런 한편으로 수습되는 부분도 없진 않아서 그나마 내년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런 한 해를 돌아보며 예전에 반응이 좋았던 한 해 소비 정리를 올해도 하고자 한다.



1. 갤럭시 S20+

현대인의 외장 두뇌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닌 만큼 스마트폰은 중요하고, 꼭 좋은 것을 써야 한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나는 딱히 대단한 기능은 필요 없으니까 먼 옛날 물건이나 저렴한 모델을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그런 선택은 결국 어느 지점에서 후회를 낳게 되어 있다. 특히 스마트폰은 사진을 찍고 보관하고 공유하는, 내 기억뿐만 아니라 타인의 기억까지 관리하는 기억 장치로서 대단히 큰 역할을 전담하고 있기에, 가급적 어느 선 이상, 대체로 출시후 3년이 지나지 않은 플래그십 제품을 쓰는 게 좋다. 나중에 가서 ‘그때 기억이 좀 또렷하면 좋을 텐데’ 같은 생각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나는 오랜 기간에 걸쳐 체험했다. 마찬가지로 ‘그때 그 자식이 분명 약속을 했는데……’ 같은 생각만으로는 아무 분쟁도 해결할 수 없으므로 어지간한 통화는 안드로이드를 쓰는 게 안전하다.


나는 올해 초에 LG G8을 쓰다가 S10e로 옮겼다. 사진 촬영 전후의 짧은 시간을 영상으로 기록해주는 기능이 LG 스마트폰에도 있긴 하지만 소리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어 갤럭시를 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친구들과 노는 순간을 기록하는 게 중요해서 전면 카메라가 훌륭한 모델을 찾아야 했는데, S10e나 상당히 최근 모델이나 전면 카메라 모듈은 동일했기에 가장 작고 저렴한 S10e를 택하게 되었다.


S10e는 많은 사람이 칭송하듯 훌륭한 기기였다. 물리적으로 작아서 어쩔 수 없이 배터리가 빨리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고 램이 약간 부족했지만 거의 모든 면에서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것을 오래 써보자고 UV 경화식 접착제를 사용하는 화면 보호 강화 유리를 붙이다 실수하는 통에 10여만 원을 날리고도 완전히 복구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리하여 줄곧 교체를 희망하다가 생일이 낀 10월에 마침내 중고로 S20+를 샀다. 램이 12기가로 요즘도 보기 힘든 수준인 데다가 외장 메모리카드도 들어간다는 게 이 모델의 특장점이다. 게다가 울트라에 비해 화면이 별로 작지 않으면서도 한 손으로 다루기에 크게 무겁지 않다. 120헤르츠의 화면도 실존하는 물체를 움직이듯 부드럽고 메인 카메라 역시 내가 거의 불만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잘 나온다.


다만 망원 카메라가 렌즈 자체의 배율 차이를 이용한 게 아니라 고화소로 크게 찍은 것을 잘라내는 방식이라 화질이 좋지 않고 망원 사진 특유의 질감을 내지 못한다. 전면 카메라도 아쉽지 않을 만큼 빼어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다. 음질은 어찌된 일인지 S10e가 압도적으로 좋다. 찾아보니 S22는 21에 비해 쓰레기라 하고, 21은 20에 비해 형편없고, 20은 10에 비할 바가 아니며, 10은 9에 비해 아쉽다는 평들이 있다. 이 정도면 그냥 착각이나 편견에 의한 바는 아닌가 의심이 드는데, 내가 듣기에도 S20+의 음질은 S10e에 비하면 말끔하지 않다. 이어폰만 꽂으면 라디오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도 S10e가 음향 기기로서 월등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나 혼자 소비하는 음향 부분보다는 같이 찍히는 사람 모두가 득을 보는 사진에 중점을 두고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음향이란 원래 금방 익숙해지는 법이라 지금은 별 불만 없이 쓰고 있다. 이것도 2년은 쓰게 되지 않을까?


2. 갤럭시 워치 4 44mm

본의 아니게 갤럭시 시리즈가 연달아 거론되는데, 이것도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다. 아쉬운 전면 카메라의 대안으로 결정한 게 갤럭시 워치였으니까.


위에 적었듯이 갤럭시 S시리즈의 섭섭한 전면 카메라를 보완할 방법을 궁리하던 나는 오래지 않아서 갤럭시 워치로 카메라 화면을 보면서 원격 조작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갤럭시 워치 액티브 2가 고작 5만원에 나왔기에 당장 구입해서 쓰기 시작했다. 항상 고전적 손목 시계를 숭상하여 스마트 밴드만을 찼던 나도 자주 쓰는 기능 앞에선 취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리 무겁지도 않고 건강 측정 기능을 무난히 수행하는 동시에 원격 뷰파인더로서도 활약하기 시작한 갤럭시 워치 액티브 2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그룹 셀피를 찍을 때 후면 카메라를 사용하여 만족스러운 화질의 기억을 남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작은 크기로 인한 배터리 부족과 아주 오래 걸리는 카메라 연결 시간은 무슨 수를 써도 극복할 길이 없는 한계였다. 사진을 찍겠다고 마음먹고 연결될 때까지 13초를 기다리자면 속이 터질 판이었다. 한국인에게 적합하지 않은 스펙이다. 그리하여 더 좋은 모델을 쓸까 생각하던 차에 갤럭시 워치 4 중고 매물이 이상할 정도로 싼 값에 풀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의심스러워 찾아보니 삼성에서 펌웨어를 잘못 건드려 갤럭시 워치 4가 꺼지면 다시는 켜지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지금은 다시 수정되었다지만 이 문제가 갤럭시 워치 4의 중고가를 떨어뜨리는 데에는 큰 역할을 한 듯싶었다. 하지만 전원만 안 끄면 상관없는 일 아닌가? 나는 이것도 운이다 싶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갤럭시 워치 4로 갈아탔다. 배터리 걱정이 싫어서 이번에는 40mm 대신 44mm로 샀더니 별 생각 없이 24시간 이상 사용할 수 있었다. 카메라 연결은 7초~10초 정도로 줄었다. 아직도 한참 아쉽지만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기본적인 건강 관리부터 혈압, 체성분 측정도 하고 자신의 혈중 산소 회복력이 엉망이라는 것도 알 수 있게 되어 대체로 만족한다.


그나저나 이제 보통의 손목 시계는 어쩐다…… 하고 찾아보니 양 손목에 시계를 차는 유명인이 좀 있는 모양이다. 유행이 되면 좋겠다.


3. 울란지 셀카 미러

카메라 관련 제품으로 이름이 있는 울란지에서 나온 볼록거울로, 스마트폰 후면에 붙여서 후면 카메라에 찍히는 사람이 자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이다. 이것 역시  전면 카메라가 아니라 화질 좋은 후면 카메라로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한 대안 중 하나였다. 갤럭시 워치를 사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내가 타인을 찍을 때, 찍히는 사람도 자기 모습을 확인할 기회가 있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서 사람 찍을 일이 있는 날에는 부착하고 있다. 탈부착이 용이한 편이라 다행이다. 그러나 자꾸 탈부착을 반복하다 보면 접착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데다가, 거울면을 코팅한 재질도 쉽게 흠집이 날 것 같아 아쉽다. 그렇다고 스테인리스로 만들거나 강화유리를 씌워놓으면 너무 무거울 테니 받아들여야 마땅한 단점이지만. 스마트폰 TPU케이스 안에 넣고도 케이스가 씌워지는 크기라 앞으론 그렇게 쓸 작정이다. 그건 그렇고 사진에 너무 많은 비용을 투입하고 있는 것 같다.


4. 무타공 책상 선반

내 책상은 흔해빠진 90년대의 컴퓨터 보관함이 딸린 책상인데, 대강 23년 정도 쓰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너무 높다. 손을 올렸을 때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수평을 이뤄야 이상적인 높이라는데, 그것보다 8센티미터 정도는 더 높은 모양이다. 그렇다면 의자를 높이면 되겠다 싶어 작년에는 의자도 높이고 발판도 놓고 살았다. 그러나 이렇게 하고 보니 하루종일 보고 사는 아이패드의 높이가 너무 낮아지는 문제가 있어, 적당한 박스를 놓고 그 위에 거치대를 놓고, 거치대가 흔들리지 않게 고정대를 만들고, 거치대 위에 아이패드를 놓은 후, 의자는 낮추게 되었다. 손목보다는 경추가 더 걱정이었으니까.


그렇게 아주 큰 불편은 없이 지내왔는데, 그래도 손 위치가 조금만 낮으면 좋겠다 싶어서 튼튼한 박스를 책상 밑면에 집게로 고정해서 키보드를 올리는 시도를 해봤다. 그러나 종이와 집게 따위가 양손의 무게를 튼튼히 견뎌주지 못하기에 포기했다가, 때마침 쇼핑몰에서 클램프로 고정해서 쓰는 서랍형 선반을 할인해 팔기에 냅다 주문했다. 보름 정도 써보니 제법 만족스럽다. 키보드 높이도 낮아졌을 뿐더러 책상 폭이 넓어져 다리를 뻗을 수 있다는 부수적 효과도 생겼다. 다리를 꼬고 앉긴 좀 어려워졌으나, 다리는 꼬지 않는 게 건강에 좋은 만큼 단점이라고 할 순 없겠다. 아무튼 20년쯤 더 일찍 샀으면 더 좋았을 물건이다.


5. 텀블러와 빨대

900밀리리터 용량의 스테인리스 텀블러인데, 용량도 크고 세척도 용이하다는 게 매력이라 그런지 요즘은 동일한 디자인의 제품이 아무데서나 쏟아지고 있다. 나는 유행이 오기 직전에 구매해서 사은품으로 빨대와 텀블러 손잡이까지 받았다. 덕분에 대량의 물을 제법 편하게 마시고 있다. 요즘 들어 물 마시기도 참 귀찮고 싫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데, 빨대가 있어서 이만저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다. 간호사들이 노인들 물 마시기 어려워하면 빨대를 드리는 게 괜히 쓰는 방법이 아닌 모양이다. 뚜껑을 완전히 열면 패킹이 어긋난다는 문제가 있긴 한데 너무 사소한 단점이고, 빨대에 먼지가 들어간다는 문제는 대충 손소독제 뚜껑을 걸쳐놓아 해결했다.


6. 보드게임 재치와 눈치

어찌저찌 이어가는 취미인 보드게임 얘기를 안 할 수는 없겠지? 2022년에도 보드게임 몇 가지를 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게임은 파티 퀴즈 게임인 ‘재치와 눈치’였다. 이 게임은 아주 단순해서 누구나 1분도 안 되는 설명만 듣고 할 수 있는 퀴즈 게임으로, 게임에 포함된 문제를 보고 답을 주관식으로 써서 제출하게 되어있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지금까지 달 표면을 밟아본 인간은 몇 명일까?’ ‘인간이 들어올린 최대 무게는 몇 킬로그램일까?’ 같은 문제들이다. 대체로 어림 짐작도 하기 힘든 문제들인데 어떻게 주관식으로 맞추냐고? 여기서 이 게임의 진가가 발휘된다. 다들 대충 찍어서 답을 제출한 뒤에, 어느 답이 가장 정답을 초과하지 않으면서 가까울지 배팅을 하는 단계가 있는 것이다. 사실 정답으로 얻는 점수는 1점이지만 배팅으로 얻을 수 있는 점수는 최대 3점이니 플레이어들이 찍은 답 중에서 다시 답을 찍는 것이 게임의 주가 되는 셈인데, 덕분에 답을 알든 말든 크게 뒤처지지 않고 게임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도저히 짐작할 수 없는 문제의 답을 마구 찍고, 남들이 쓴 답에 웃고 다시 답들 중에서 진짜 답을 찍는 재미에, 정답을 보고 놀랍지만 딱히 쓸데는 없는 지식을 얻는 재미까지 몇 중으로 재미있는 게임이다. 그 누구라도 싫어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퀴즈 게임인 만큼 주어진 퀴즈 250문제를 다 풀면 다시 하기 어렵다는 것뿐인데, 매주 하는 것도 아니니 아쉽지 않을 정도로 오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술이나 마시지 무슨 애들 장난을 하냐는 식으로 보드게임의 즐거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직도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사람조차 즐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으로 2022년의 성공적인 소비에 대해 적어봤는데 어떠셨는지? 올해는 실패한 일도 대단히 많았지만 이렇게 즐거웠던 일을 써놓고 보니 올 한 해 동안 나쁜 일만 일어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수년에 걸쳐 도전한 브런치의 상을 마침내 받기도 했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인사를 하긴 이른 시기지만, 오래도록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마친다.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2022.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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