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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May 04. 2016

자막을 못 믿어 영어를 공부해야 하나


영어가 쉽게 느껴질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영화를 자막 없이 볼 수 있을 정도로는 잘 하게 되고 싶다. 그리고 그 이유란 학구열이나 자아 실현 따위가 아니라 정말 단순히 자막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영화를 자막을 이용해 본다는 것 자체가 영화 감상의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물론 더빙판 제작보다 간편해서 외국의 영화를 빠르게 볼 수 있게 해주므로 자막은 무척 고마운 존재지만, 자막이란 일단 관람객의 시선을 끌어내리게 되어 있어서 원래 영상에서 의도한 시선의 흐름이 유지되지 않는다. 따라서 자막으로 보다 보면 자연히 작은 부분은 놓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의 현란한 격투 장면에서 둘다 말이 많아 이런 저런 소리를 떠들어대면 단검의 손잡이를 조작한다든가 눈빛이 살짝 흔들린다든가 하는, 미세하고 정교한 표현들을 다 볼 재간이 없다. 


게다가 자막이란 필연적으로 등장인물의 발화보다 빠르게 나오기 마련이라 연속적인 영상을 만화처럼 단속적인 컷의 조합으로 해체해 버린다. 관객은 자막으로 먼저 대사를 확인한 뒤에 배우의 연기를 감상하는, 감독에 가까운 입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예전에 사실상 영어가 모국어에 가까운 친구를 끼워 미국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정말 웃긴 대사가 나오기도 전에 다른 사람들이 웃어버려 약간 당황했다. 마치 축구 경기를 TV와 인터넷 중계로 보는 듯한 상황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영화의 경우는 자막으로 보는 것이 미래고, 그 뒤에 따르는 것이 정상적인 현재니까 상황이 반대긴 하지만. 아무튼 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고 있으면서도 다른 시간선에 있었던 것이다. 이 익숙한 현상도 이런 장면이라고 생각하면 좀 곤란하다. 주인공이 적에게 협박 당해서 굴복하는 척 하다가 비장의 무기로 반격하는 장면에서 “네 명령에 따르겠… 죽어랏!” 이라는 대사를 한다면 ‘죽어랏’은 잘라서 뒤로 빼야 한다. 대체로 이 정도는 배려해 주기 마련인데, 꼭 그렇다고 장담할 수도 없어서 원치 않게 1초 뒤의 미래를 알아버리는 경우가 종종 일어난다. 이런 미래 예지 사태는 자막을 최대한 분절함으로써 최소화할 수 있긴 하겠지만, 어순 문제도 있고, 작업이 번거롭기도 하고, 자막 표시 빈도가 올라가면 시선을 자주 빼앗게 되므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 끔찍한 문제는 바로 번역이다. 단순 오역은 그냥 명백한 잘못이니까 더 논할 것도 없지만, 일정한 시간 동안 표시할 수 있는 정보량의 한계 때문에 잘려나가거나 단순화되는 부분도 여간 문제가 아니다. 예를 들어 감수성이 예민한 주인공이 “아, 코발트 블루로 넘실거리는 바다, 그리고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을 보고 있자니 윌리엄 터너의 그림이 생각나는군요!” 라고 실컷 떠들어도 자막에서는 “푸른 바다가 무척 아름다워요. 고흐의 그림이 떠올라요!” 라고 간단하게 표시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앞은 그렇다 치더라도 윌리엄 터너가 왜 고흐가 되었는가? 관객이 윌리엄 터너보다는 고흐를 알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의 번역이라면 언어도단에 가까운 일인데도, 영화관에서는 시간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나야 영어를 잘 못해서 잘 몰랐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어벤져스2”의 대사들도 아주 재치있는 것들이었는데 자막에서 상당부분 깎여나갔다고 한다. 영화가 아무리 재미있었어도 이런 소식을 듣고 나면 어째 기껏 읽은 책이 오역 투성이었다는 소식을 들은 기분이다. 더 안타까운 점은, 영화는 오역이 정정된 완역판 따위 영원히 나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억울하면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 보는 수밖에 없다. 


2016년 4월에는 오렌지 슬라이스라는 황당한 사태가 일어났다. 순 뻥이었지만 그만큼 신뢰도가 낮아졌다는 뜻은 아닐지. 



잠시 딴 얘기지만, ‘윌리엄 터너’를 ‘고흐’로 바꿔 버리는 식의 번역이 대중의 보편적인 상식 수준에 눈높이를 맞추고자 했다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그게 옳은 것인지는 차치하고서. 하지만 그렇다면 발생하는 의문은, 어째서 요즘 영화 제목은 거의 번역을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더 이퀄라이저”가 무슨 뜻인지 관객 모두가 이해할 수 있을까? 자막과 같은 수준을 유지하려면 “균형의 수호자”  정도로 고치는 게 맞지 않을까? “테이큰” 역시 제목이 이래서는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다. 영어의 동사 변형에 익숙치 않은 관객을 배려하려면 “피랍”이 맞다. “비긴 어게인”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는 “한치 두시기 석삼 너구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은하 보안관” 정도로 번역하는 게 마땅하다. 물론 제목은 뜻보다 강렬한 이미지가 중요할 것이고, 자막 제작과는 별개의 논리로 만들어지리라는 것은 짐작한다. 하지만 기왕이면 명확한 하나의 기준을 따라주는 게 좋지 않을지? 예를 들어 원제가 “Turist"인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은 꼭 이래야 하나 싶고, 원제를 그대로 쓴 “왓 라이즈 비니스” 같은 건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최근에 “캡틴 아메리카 2: 윈터 솔저”를 일본어 더빙판으로 구매해서 다시 봤다. 일본어는 대충 알아들을 수 있으니까 들리지 않는 영어를 들으며 자막과 씨름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재미있다. 아니, 훨씬을 넘어서 압도적으로 재미있다. 원서와 사전을 펼쳐놓고 읽는 것과 완역본을 읽는 것의 차이 정도로 다르다. 물론 번역은 여전히 신뢰할 수 없으나 읽던 게 듣는 것으로 바뀐 것만 해도 여간 멋지지 않다. 자막 문제 중 하나는 해결된 셈이니까.


그래서 한국 개봉작들도 기왕이면 더빙판이 같이 나오면 좋겠는데, 개봉은 고사하고 VOD도 많지 않으며, 심지어 연예인, 개그맨이 더빙에 끼어들거나, 유명 잡지에 '성우들의 어설픈 더빙은 들어줄 수가 없다’는 글이 게재될 지경이다. 그렇다고 자막의 완성도가 차츰 높아지는가 하면 실상은 정반대로 놀랍게도 최근 개봉작인 “스파이” 같은 사태까지 일어나고 있다. 이쯤 되면 정말 서러워서라도 영어를 공부해야겠다.



-윈터 솔저 번역과 관련하여

윈터 솔저를 보면서 아주 재미있었던 것은, 같은 대사라도 국가에 따라 번역이 조금씩 다르다는 겁니다.  

가령 초반에 적 보스와 싸울 때 영어 번역에서는(대사가 영어가 아니었죠)

“I thought you were more than just a shield…"

“Indeed."

로 되어 있는 것이, 한국어 번역에서는

“방패 치우고 붙어보지?”

“얼마든지!"

로 나오고, 일본어에서는 

“盾が頼りか(방패만 믿고 있나?)"

"試してみろ(시험해 봐라)"

로 번역되었습니다. 제각각 선호하는 풍이 느껴지더군요. 

아무튼, 자막에 결코 깰 수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면 팸플릿 같은 것에 해설 같은 걸 달아주면 나중에라도 볼 수 있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제까지 돈은 돈대로 내고 광고까지 보면서 제대로 번역되지 못한 주요 정보는 인터넷에서 찾아봐야 하나요?



-스파이 번역과 관련하여

몸집이 큰 여성이 스파이로 활약하는 이 작품은 감독과 각본가가 아주 정교하게 차별적 요소들을 제거해 놨다는 점이 돋보이는 것이었는데, 정작 국내 번역에서는 "뚱땡이"라는 단어가 당연하다는 듯이 들어갔습니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은 있지만 이건 그냥 반역을 번역이라고 하는 수준이죠.


(2015.06.24)



-후기


"캡틴 아메리카3: 시빌 워"가 개봉했습니다. 아쉬운 점이 없진 않지만 적어도 울트론보다는 훨씬 훌륭한 작품이었죠. 그런데 이 작품의 번역과 관련하여 "오렌지 슬라이스" 논란이라는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요는 작중 인물이 쓰러져서는 오렌지 슬라이스 없냐고 하는 대사가 있는데, 이것이 사실 오렌지 라이센스가 맞다. 오렌지 라이센스는 화물차량 면허를 뜻하므로 인물은 자신을 운반해줄 사람이 없느냐고 한 것인데, 초보적인 오역을 한 것이다. 그런 논란이었습니다. 이 얘기를 접한 저는 음, 또 저질렀나, 그 정도로 받아들였습니다만, 정작 영화를 보니 의심할 여지없이 "오렌지 슬라이스"가 맞더군요. 이에 대해 미국에서 경기 하프타임에 오렌지 슬라이스를 먹는 문화가 있다는 반박이 돌았고, 그게 정확했습니다. 


이건 물론 헛소문에 불과했고 인터넷에서 나온 정보라도 일단 믿고 보는 사람들의 심리 때문에 벌어진 촌극이었습니다만, 그 기저에는 번역에 대한 불신감이 어느 정도는 깔려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솔직히 이보다 더 심한 오역이 터져도 놀라진 않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시빌 워 역시 이리저리 막 잘라내버린 대사가 적지 않다고 합니다. "쟤 몇 살이야?" "몰라! 탄소연대측정 안 해봤어!" 이런 개그도 깨끗이 날아갔다죠. 거참. 시간당 글자 제한의 벽을 뛰어넘을 방법은 없는지? 아예 자막을 두가지 버전으로 해서 '상세 주석판 자막' 같은게 따로 상영되면 좋겠다 싶기도 합니다. 아니면 박물관 음성안내처럼 개인용 기기로 적당한 장면에서 원하는 사람은 코멘터리를 따로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술은 한없이 발전하는데 왜 영화관은 4D 같은, 작품 이해와는 동떨어진 수익모델만 개발하는지.


(2016.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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