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해 Apr 27. 2016

단발병, 장발병


머리가 귀찮다. 어깨 위에 커다란 두상을 얹고 다니는 것도 귀찮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여기선 머리카락 얘기다. 어째서 머리는 자꾸만 나를 귀찮게 하는 걸까? 과학의 발달로 머리 길이가 딱 마음에 들 때 정지시켜두는 기술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머리카락은 알게모르게 하루에 50가닥 가량 저절로 뽑힌다고 하니 머리카락의 성장을 억지로 막아두면 그리 오래지 않아서 아주 곤란해질 것이다. 모발의 존재를 유지하기 위해선 머리카락이 눈을 찌르는 것 정도는 감수해야 한단 얘기다. 뭐든 공짜는 없다. 


그래도 귀찮은 건 귀찮은 것이라 머리 길이가 어중간해져 눈을 찌르거나 시야를 가리지 않게 야무지게 걷어낼 수 없는 상황이 되면 머리를 어떻게든 해 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이고 만다. 여성들도 ‘단발병’이라고 해서 가끔씩 길게 자란 머리를 확 쳐버리고 싶어지는 때가 온다는데, 그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잘 생각해 보면 퓨리오사처럼 밀어버리는 것이 생활에는 더 편리하긴 하다. 중고등학교 생활을 하는 동안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스포츠 머리로 살았다. 중학교는 교칙이 병영에 가까워서 스포츠가 당연했고, 고등학교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는데도 애매하게 검열을 피하느니 그냥 하던 대로 살자고 그 머리를 유지했던 것이다. 그래서 머리 때문에 일상적인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다. 머리가 짧으면 눈을 찔릴 일도 없고, 운동하고 수돗가에서 머리를 감아도 금방 마르며, 샴푸도 덜 쓰고, 이발비도 적게 나간다. 온통 좋은 점 뿐이다. 그게 강제라는 점만 빼면.


그렇다면 역시 자율적으로 머리를 밀 수 있는 지금은 아무 거리낌 없이 당장이라도 머리를 밀어도 되는 게 아닐까? 아니,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남의 눈이 너무나 신경쓰인다. 스포츠나 반삭발은 중고등학교에서도 군대에서도 효율성을 위한 억압의 상징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이제 와서 그때의 머리로 돌아간다는 건 개인적으로도 심리적인 거부감이 들고, 남들이 보기에도 인간으로서 뭔가를 포기하고 다른 무언가에 매진하려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여성이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소리를 듣기 마련인 것처럼 남성이 머리를 밀어버리는 것도 오해를 받기 십상이다. 그런 오해는 아무래도 달갑지 않다. 


게다가 지금은 유부남이 된 원빈이 “아저씨”에서 아주 폼나게 머리를 미는 장면을 찍은 통에 ‘멋진 삭발남’이라는 묘한 환상까지 생겨서 섣불리 머리를 밀었다간 ‘너도 원빈 따라하다 망했구나?’ 하는 시선을 받을 수도 있다. 아니, 원빈이 머리를 밀어서 멋있어진 게 아니라 멋있는데 머리를 민 것 뿐이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지만, 보는 사람에게 일일이 그걸 설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연예인의 스타일이란 늘 그런 위험성을 안고 있다. 그리고 머리라는 건 한 번 잘라봤다가 ‘아, 별로네’ 하고 바로 컨트롤 Z로 손쉽게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라 원상복구 되기까지 기나긴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하니까, 이런 몇 중의 고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머리를 확 밀어버리기란 역시 어려운 일이다. 


긴 머리엔 큰 책임이 따른다, 피터!


머리가 귀찮지만 않으면 되니까 길러서 “펄프픽션”의 존 트라볼타처럼 올백으로 넘기고 묶어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말하자면 ‘장발병’이다. 올백이 가능한 시점만 지나면 이발비도 비약적으로 줄어들 테니 이건 제법 매력적인 선택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긴 머리는 당연히 감기만 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고, 무엇보다 그 시점, 앞머리를 뒤에서 묶을 수 있을 정도로 기를 때까지 너무나 긴 고난의 시간을 버텨야 한다. 당장 지금 머리만 해도 어중간한 길이가 되어 앞머리가 안경에 걸쳐 옆으로 휘고 뒷머리가 옷깃에 걸쳐 위로 휘는 꼴을 보자면 화가 치밀어 오르곤 하니, 역시 장발은 허망한 꿈에 불과한 것이다. 


미용실에서는 또다른 대안으로 펌을 권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지속성이 떨어지는 데다 비용을 비롯해서 리스크가 너무나 커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결국은 매번 똑같은 머리를 비슷하게 하고 적당히 짜증을 내며 살고 있다. 과학이 발달해서 저렴한 가정용 미용머신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이 반복에서 벗어날 수 없지 않을까? 


(2015.06.17.)



-후기


최근에 미용실에 갔다가 가르마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하는 게 훨씬 나을 거라는데, 그 말을 따라봤다가 역시 적응이 되지 않아서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꾸는 것도 어렵지만 자신을 바꾸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국 자신을 가장 많이 보는 것은 자신이라, 조금만 바꿔도 쉽게 어색함을 느껴 버립니다. 게다가 이 경향은 나이를 먹을 수록 더 심해질 테니, 아마 기술이 발전하지 않는 한 이 머리 그대로 평생 사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역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에게 완벽한 머리 모양을 제시해주는 프로그램과, 자고 일어날 때마다 머리 세팅을 해주는 기계입니다. 아이언맨이 스타크 타워에서 걸어가면서 수트 벗듯이 현관에서 걸어가면서 척척 필요한 준비를 자동으로 끝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2016.04.27.)

매거진의 이전글 사치의 방향과 자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