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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Dec 20. 2023

자전거는 내가 고칠 수 없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에는 주인공이 낡은 자전거를 열심히 수리하는 장면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요양 혹은 수양의 과정으로 그려졌다. 나는 하루키가 일상의 잡다한 일을 처리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을 좋아해서 이 장면도 아주 흥미롭게 봤는데, 자전거 수리가 볼 때만 고요하고 아름다운 일이지 실제로 해보면 쌍소리가 절로 나오는 짓이라는 사실을 근래에 들어 알게 되었다.


작년부터 나는 자전거의 내구도를 상당히 빠른 속도로 소모하고 있다. 칼로리 소비를 전적으로 자전거에 맡기고 있는 데다 딱히 주의깊게 타는 버릇도 없는 탓이다. 자전거 주행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지켜보면 암릉에서 스니커즈 신은 사람을 발견한 산꾼처럼 노발대발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하여 당연하게도 브레이크가 차츰 듣지 않게되었다. 뒷바퀴 브레이크 패드가 심하게 닳아버린 탓이다. 뒷바퀴만 먼저 마모된 것은 아마 내가 오른손잡이라 멈출 때마다 반사적으로 오른손을 쥔 탓이 아닐까 싶다. 신경을 타고 작동하는 반사적인 신체습관이 오른손으로부터 와이어를 따라 뒷바퀴까지 전달되어 마모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달리는 동안 자전거는 인체의 일부가 된다는 말이 과연 그럴듯하다.


각설하고 브레이크는 어떤 이동수단에서든 가장 중요한 부분인 터라 빠른 시일 안에 손을 봐야 했는데, 나는 천하에 게을러 빠진 인간답게 작업을 차일피일 미뤘다. 브레이크가 전혀 듣지 않는 것은 아니었고, 브레이크를 잡을 때면 왼손을 더 강하게 잡는 연습을 시작했으므로 사고가 날 위험까지는 없었던 탓이다. 게다가 교체에 쓸 부품도 없었을 뿐더러 새로 사고 싶지도 않았다. 고작 브레이크 패드 두 개 사는 데에 택배비를 지불하기 싫다는, 현대 한국 소비자가 느끼는 보편적 고집이 작용해서 도저히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자전거포에 가자니 가까운 곳은 다 망해서 은근히 귀찮은 거리를 평소에 다니지 않는 방향으로 달려야 한다는 것도 심한 문제로 느껴졌다.


그래서 내가 가장 먼저 시도한 일은 마모된 브레이크를 되살리는 것이었다. 신발 밑창을 되살린 경험은 제법 되니까 고무 브레이크를 되살릴 수도 있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이 황당한 발상으로 저지른 실험이 구체적으로 어떤 양상이었는지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다만 하나만 확실히 해두자면, 나도 안전 장치를 멋대로 개조한다는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는 알고 있는 터라 테스트는 매우 가혹한 방식으로 진행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신발로 비유하자면 멀쩡히 걸어다니는 게 아니라 발을 계속 끌면서 다니는 꼴이라 그런 식의 측면 압력을 지속적으로 견딜 접착제와 고무판을 구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브레이크 패드가 왜 나사까지 일체형인지 알 만했다.


다음으로는 타지 않는 신문사 산악 자전거의 패드를 떼어다 쓴다는, 상당히 합리적이고 안전한 방법을 쓰기로 했다. 이건 어렵지도 않고 문제될 거리가 전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브레이크 패드를 떼고 보니 이게 웬 걸, 타지 않는 자전거의 패드가 훨씬 컸다! 브레이크 패드는 다 같은 규격인 줄 알았는데, 산악 자전거는 강한 제동력이 필요해서 그런 모양이었다. 나는 그렇다고 못 쓸 물건은 아니니 교체를 강행하려다…… 아무래도 멀쩡한 산악 자전거를 망가뜨리는 기분이 들어 그만두고 말았다. 게다가 ‘필요할 때 금방 출격할 수 있는 자전거가 두 대’나 있다는 여유로운 느낌을 계속 간직하고 싶기도 했다. 자전거가 한 대 이하인 사람은 그게 대체 뭔 생각이냐 싶겠지만, 마음에 쏙드는 신발이 한 켤레일 때보다 두 켤레일 때가 훨씬 만족스러운 것처럼 탈 것이 두 대인 상태는 나름대로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야심찬 실험에 실패했으며 택배비의 문턱도 넘지 못한 나는 한동안 앞쪽 브레이크만 정상 작동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날, 거짓말처럼 길바닥에 떨어진 자전거 브레이크 패드를 줍고 말았다. 새것은 아니었으나 내 것보다는 나은 상태였다. 나는 물건을 사거나 사려고 벼르고 있자면 대체품을 줍는 징크스가 있는데 이번에도 그랬다. 곧장 브레이크 패드를 바꾸고 재조정해서 자전거를 그럭저럭 쓸만한 상태로 고쳐 놓았다.


그러나 브레이크만 문제가 아니었음을 오래지 않아 깨닫고 말았다. 하기야 조금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제동에 사용된 것이 주로 뒷바퀴니까 브레이크 말고 타이어도 닳지 않았겠는가. 나는 자전거 생활을 오래 해놓고도 타이어 살피는 버릇이 없었던 터라, 자전거가 젖은 노면에서 브레이크를 잡을 때마다 상당히 심하게 돌아버리려 한다는 것을 느끼고 나서야 타이어 마모를 알게 되었다. 신발 밑창은 주기적으로 살펴야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다니면서도 훨씬 더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자전거 타이어에 대해선 아무 감각이 없었던 셈이다.


하지만 브레이크 바꾸기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타이어라고 쉽게 바꿀 수 있겠는가? 벽장에 스페어 타이어는 있었지만 그걸 바꾼 경험도 바꿀 자신도 없었던 나는 또 수리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진흙이 덮인 경사로에서 자전거가 스르륵, 마치 사막에서 쓰러지는 어린왕자처럼 소리없이 드러눕는 사태를 겪고 나서야 움직이게 되었다. 이걸 계속 타다간 여러 사람이 나 때문에 난잡해진 도로를 청소하느라 고생할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유튜브로 자전거 타이어 교체 방법을 익힌 나는 날을 잡고 공구를 들고 내려가 자전거 바퀴 해체에 돌입했다. 그런데 시작부터 멈춰서고 말았다. 내가 가진 기초적인 공구로는 너트 하나도 풀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스패너가 필요했다. 나는 아버지의 공구함들을 뒤적이면 분명 스패너가 몇 개나 용솟음치리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마법의 베란다를 지나 늪을 건너 어둠의 벽장 속 공구함을 하나씩 열어볼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영원히 아버지 공구를 빌려 쓸 수도 없으니 나도 적절한 공구를 구비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모두 때가 되면 사랑을 여는 마법의 열쇠 같은 공구를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나는 그 길로 다이소에 달려가 멍키 스패너를 하나 구입해서 돌아왔다. 하지만 너트는 마치 별개의 부품이 아닌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고 스패너는 헛돌았다. 대체 이 무슨 어이없는 일이란 말인가. 다시 잘 살펴보니 멍키 스패너는 어느 정도 이상 힘을 줄 때마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집게 부분이 살짝 벌어졌다. 그 유격이 너트의 육각이 그리는 바깥 테두리와 육각 안쪽 원의 차이보다 컸으므로 힘을 충분히 가할 길이 없었다. 힘을 써야 하는 공구는 비싼 걸 써야 한다더니 그 말이 맞았다. 나는 다이소로 다시 달려가 매니저에게 이 문제를 설명하고 간신히 환불받았는데,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던 매니저가 환불을 해준 것이 내가 자각하지 못한 진상의 기운 때문인지 손에 묻은 기름때 때문인지는 모를 일이다.


다이소를 더이상 신뢰할 수 없었으므로 이번에는 맞은편 잡화점에 들어가 공구를 둘러보다 망치와 펜치와 렌치 등등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는 유럽산 다용도 공구를 구입했다. 결코 싼 값은 아니었지만, 일상속에서 간단히 쓸 망치가 손 닿는 곳에 없어서 하나 사두면 요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도 볼트를 돌릴 수는 없었다. 렌치 부분의 구멍이 볼트보다 컸던 것이다! 마치 일자 나사를 풀어야 하는데 십자 드라이버를 산 것 같은 꼴이었다. 기본적인 정보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공구를 사다니, 어디 가서 물건 잘 고친다는 소리는 하지 말아야겠다.


당장 쓰려고 산 공구를 사놓고 쓰지도 못하게 되었으니 속이 터지고 땅이 꺼지는 심정이었으나, 생각을 달리하면 공구란 결국 언젠가는 요긴하게 쓰기 마련이니 절망하진 않기로 했다. 대신에 내가 풀어야 할 너트 크기를 포함한 스패너 세트를 새로 사왔다. 이건 무슨 모바일 게임에서 보스를 잡지 못해 안달이 난 나머지 계속 아이템을 질러대는 듯한 꼴이었다. 잘만 하면 중고 자전거를 살 수도 있을 돈이 나가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무튼 결국 여섯 면 모두가 볼트와 완벽히 딱 맞아서 엇나갈 이유가 전혀 없는 공구를 샀으니 드디어 타이어를 갈 수 있을 터였다. 그래야 했다. 분명 그럴 것이었는데……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너트는 돌아가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 방향도 다시 확인해 보고 렌치를 방금 산 망치로 두드려 팼는데도 꿈쩍하지 않았다. 사막에서 비행기를 수리하는 생 떽쥐베리가 된 기분이었다.


(고쳐야 할 것들을 제때 스스로 고치려면 용기와 기술과 여유가 필요하다) 



어린왕자의 스토리대로라면 여기서 염소의 그림을 요구하는 소년이 나타나야 했지만, 그건 바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므로 나는 결국 가까운 자전거포를 검색해서 타이어를 들고 찾아갔다. 이 작업에 이골이 난 전문가를 찾아가지 않으면 천년만년 이 헛짓거리에 시달릴 것 같았다. 새 공구를 사서 덤비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리하여 내 동선에서 그나마 가까운 자전거포에 갔는데, 가게 앞에서 한창 자전거를 손보던 초로의 주인장은 내가 인사하고 타이어를 바꾸러 왔다고 하자 힐끗 보고는 값을 불렀다. 그 개고생을 하지 말고 일찌감치 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만한 가격이었다. 나는 알겠다고 답하고 그가 작업을 마무리하길 기다렸다.


그러길 1분쯤 있자니, 그가 다시 나를 힐끗 보곤 “할 거요, 말 거요?”라고 다시 물었다. 좀 무례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신기함이 앞섰다. ‘방망이 깎는 노인’에서나 보던 말투였기 때문이다. 내가 가져온 타이어로 바꿔달라고 하면 다른 데 가서 하라고 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내가 해달라며 타이어를 건네자 그는 곧장 내 자전거를 끌고 가더니 전동 공구로 너트를 순식간에 빼버렸다. 무슨 노하우나 내 잘못을 살펴볼 시간따위는 없었다. 이어서 주인장은 초보자들 사이에서 난해하기로 유명한 타이어 분리 작업을 공구 두어 개 만으로 바지락 까듯이 간단히 해치워버렸다. 그러고는 내가 가져간 타이어를 살펴보더니 찢어져서 못쓰겠다고 했다. 심히 충격적인 말이라 어디가 그런지 물으니, 타이어의 옆쪽에서 일자로 찢어진 부분을 보여주었다. 노면에 닿을 부분은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론 못쓸 물건은 아닌것 같아 크게 문제가 되겠냐고 물으니, 그는 오래 쓸 순 없을 거라고 답했다. 쓸 수는 있다는 말이다. 이쯤 되자 슬슬 이 늙은이가 타이어 하나라도 팔아먹으려고 이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럼 그냥 쓰겠다고 했고, 주인장은 타이어를 분리할 때와 마찬가지로 대단히 빠르게 자전거를 조립했다. 배울 게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과연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법이었다…….


수리를 마치기까지 도합 15분이나 걸렸을까 싶다. 나는 계산을 마치고 평상시에 달리는 길로 되돌아가 브레이크와 접지력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했다. 자전거의 상태는 제법 만족스러웠다. 젖은 바닥에서 넘어지지 않을지 노심초사하며 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은 새삼 즐겁고 행복했다. 하지만 달리며 생각해 보자니 자전거를 직접 고친답시고 들인 시간과 막대한 비용은 역시나 후회스럽기 짝이 없었다. 뭘 좀 해보고 잘 안 된 거라면 경험이라 생각하겠는데, 너트 하나를 풀지 못해서 분해조립도 못하고 경험 대신 공구만 쟁여두게 되었으니 이게 무슨 낭비란 말인가?


물론 자신이 타는 탈것을 직접 손보고 애착을 갖는 것은 멋지고 해볼 만한 일이긴 하다. 뭐든 첫 시도에 성공할 수야 없는 일이니 나도 언젠가 여유가 있을 때 날을 잡고 다시 할 수 있다면 해볼 의향은 있다. 그러나 이번 시도는 너무나 힘들고 손실이 뼈아팠다. 마치 섣불리 도박에 손을 댔다가 이길 때까지 돈을 탕진한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런 손실은 다시 겪고 싶지 않다. 앞으로 한동안 자전거 타이어처럼 내가 손쉽게 처리할 수 없을 작업은 잘 가늠해본 뒤에 빠르게 전문가를 찾을 작정이다. 그 전문가가 방망이 깎는 노인처럼 퉁명스럽기만 하고 아무 감동도 주지 못한다 하더라도 감수할 것이다. 퉁명스러운 노인보다는 실패로 인해 낭비된 돈과 시간, 그리고 그 돈과 시간으로 사야 했던 것들, 해야했던 일들이 두렵기 때문이다. 아마 물건을 고치지 않고 새로 사는 사람들도 이런 저울질을 거친 끝에 수리를 포기한 것이겠지. 고치지 않거나 직접 손볼 생각을 않는다고 비난하기 전에 각자의 저울질이 있음을 생각해볼 일이라고 자신을 반성한다.



*추신

저는 언제나 돈과 일을 구하고 있습니다.


*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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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제10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특별상을 받고 2023년 2차 아르코 문학나눔 도서보급사업에 선정된 저의 "아끼는 날들의 기쁨과 슬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판매중입니다. 낡고 고장난 물건을 고치거나 버려진 것들을 수선하고 중고 거래를 지속하며 느낀 소비 생활의 고민과 의미에 대한 수필집입니다. 지속적으로 물건을 사고 버리는 일에 피로감을 느끼거나 사소한 소비에도 회의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공감할 부분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구매해주시면 저의 생계와 창작에 큰 도움이 됩니다.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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