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 능선의 본격적인 시작은 난간을 잡고 발디딜 곳을 잘 보며 올라야 하는 거친 암릉이었고, 나는 오랜만에 느끼는 험로의 맛에 즐거워졌다. 그런데 잠시 후, 30분도 지나지 않아서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고 느낀 초입이 몸풀기 수준에 불과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난간마저 사라져서 등산스틱으로 땅 짚기를 포기하고 손으로 바위나 나무를 붙잡아야 마음이 놓일 정도로 가파르고 거친 길이 나타난 것이다. 이게 사람 다니는 길이란 말인가 투덜대면서도 오르막을 기어오르고 나니 금방 난간이 다시 나왔지만, 난간이 있다고 체력 소모가 덜해지는 길은 아니었다. 체감상 60도는 되는 것 같은 봉우리를 기어오르는 꼴이라 몇 번이나 멈춰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숨을 돌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자니 멀리는 이미 어지간한 산 정상에 올라온 것처럼 도시의 풍경이 펼쳐졌고, 가까이는 단순히 ‘경사로’라고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은 암벽이 이어졌다. 등산할 때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내가 이런 길을 올라왔다니’ 싶어서 놀랄 때가 종종 있지만, 이 길은 그 수준이 각별했다. 이런 급경사는 많아도 이런 길이 이토록 길게 이어지는 건 처음이었다. 의상 능선을 이 방면으로 내려가는 짓만은 하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다. 험로가 즐거운 건 그게 오르막일 때 뿐이다. 그러나 어디선가 우는 까마귀 소리를 들으며 새삼 감탄하고 있자니, 내 옆으로 새빨간 바지가 눈부신 중년 남자가 따라잡기 힘든 속도로 능선을 올라가는가 하면, 핑크색 등산복을 입은 중년 여자가 능선을 별 망설임 없이, 이런 건 일상의 풍경이라는 듯 내려가는 게 아닌가.
느슨하게 사는 동안 내가 잘 못하는 일을 남들은 아무렇지 않게 척척 해내는 걸 보고 놀랄 때가 원래 많긴 했다. 이제는 슬슬 익숙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충격을 이렇게까지 빠르게 체감하기 쉬운 방식으로 받자니, 순간적으로 나는 대체 뭘까, 육체적으로도 무능하고 발전이 없는 인간인가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간의 등산 모두 코스 소개에 나오는 완주 시간보다 20퍼센트는 더 걸렸다. 느긋하게 앉아서 라면을 끓여먹거나 담소를 나누는 것도 아닌데 그 모양이니 내가 대단히 느리거나 자주 쉰다는 건 확실한 사실이었다. 게다가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서울의 높은 산을 다 가봤으면 이제 좀 더 빨리 다닐 수도 있어야 할 텐데......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나는 등산을 시작한지 석달이 좀 지났을 뿐이고, 심지어 그 사이에 무릎이 상했다. 게다가 빠르고 과감한 게 등산의 미덕은 아니지 않은가? 나는 다시 난간을 잡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느린 것이 정말로 나의 한계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고 극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극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잘못이 되는 것도 아니다. 애초에 기록을 세우고 싶었던 것도 남과 수준을 맞추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가진 힘에 맞게 즐기며 다니고 싶을 뿐이고, 걸음이 느리다 해서 산이 도망가는 것도 아니니 굳이 애써 낙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지독한 오르막을 30분쯤 더 가자 토끼 바위라 불리는 독특한 바위가 나왔고, 경사는 슬슬 완만해졌다. 봉우리 정상에 가까워졌다는 말이다. 높아진 고도를 증명하듯 곳곳에 쌓인 눈이 점점 많아졌다. 바위 위에도 침엽수 위에도 흰 눈이 쌓여 있었고 건너편의 가까운 봉우리는 대부분 흰색으로 덮였는데, 봉우리 정상은 뿌연 구름에 가려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나도 걸어서 구름 높이까지 올라온 셈이다. 조만간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듯했다.
좀전까지보다는 비교적 완만한 오르막을 30분쯤 더 오르자 드디어 의상봉에 도착했다. 봉우리치고 흙이 많아서 밝은 갈색의 흙과 흰 눈이 여기저기 뒤섞였고 그 위에 침엽수들이 길을 이루고 있었다. 의상봉이라 적힌 나무 기둥 옆에 감사하게도 벤치가 둘 놓여 있기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숨을 돌리며 식사를 했다. 김밥은 싸늘했고 그 자리에서 기막힌 경치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으나 나는 일단 의상봉에 도착한 것만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걸음걸음 퍼즐을 풀듯이 적합한 곳을 디디고 당기며 가혹한 경사를 지나 봉우리 위의 쉼터에 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으니 다른 보상은 딱히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러닝의 목적이 이동이 아니듯 암릉길을 오르는 것도 반드시 목적지가 필요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달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행위야말로 삶을 비옥하게 만드는 양분이 되는지도 모른다.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송이가 작고 반쯤은 비처럼 느껴지는 눈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걸을 때는 물기 없이 좀더 눈다운 눈으로 변했지만 걱정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이 날 내가 입은 바람막이는 K2 제품으로, 등산용 하드쉘도 소프트쉘도 아니고 안감이 약간 있는 간절기용 일반 바람막이였다. 눈 내리는 날에 굳이 하드쉘을 놓고 일반 바람막이를 입고 온 건 실험 때문이었다. 그동안 나는 등산용품 중에서 고어텍스 따위 하드쉘이 정말 중요한 장비라고 생각하고 싸고 좋은 걸 찾느라 혈안이 되었는데 그게 맞는 생각인지 궁금했고, 0도 언저리의 온도에서 튼실한 플리스와 바람막이 조합으로 버틸 수 있나 알고 싶었다. 물론 이 실험은 비옷과 패딩을 따로 챙겨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상태로 진행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평범한 바람막이도 예상보다 자기 역할을 잘 해줬다는 것이다. 종종 털어서 그런지 눈 녹은 물이 스미지 않았다. 바람이 뚫고 들어와 시린 구석이 생기지도 않았으며 특별히 덥거나 춥지도 않았다. 대단히 만족스러워 안도한 한편으로 괜히 하드쉘을 찾아다녔다는 후회도 들었다. 요컨대 주의깊게 사용하면 완전방수가 되는 제품이 아니어도 가벼운 강설은 버틸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방수투습 하드쉘이 쓸모없는 사치품이라는 말은 아니고, 안전상 있으면 좋지만 ‘등산을 하고 싶은데 고어텍스 재킷을 20만 원이나 주고 사야 하나’하는 고민 끝에 등산을 포기하거나 위축감을 느낄 건 아니라는 소리다. 초보가 다닐 만한 환경, 즉 폭우나 폭설이 내리지도, 미친듯한 바람이 불지도 않는 환경에선 나일론 바람막이에 비상용 비옷을 챙기는 것만으로 충분한 듯하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서울과 근교에서 벗어날 예정도 극한 상황이 펼쳐지는 코스를 갈 예정도 당분간 없는 내가 중고장터에서 이 제품 저 제품 샀다 환불하거나 팔기를 반복하는 비극은 겪지 않았을 것이다. 더 여유를 두고 정말 괜찮은 물건을 하나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실패를 겪으며 배운 것도 많지만(내구성은 고어텍스가 탁월하다는 사실 등) 꼭 돈과 시간을 들여 알 필요는 없는 것들이었다. 정말 알아둬야 했던 것은 내가 이미 갖고 있는 것도 제법 괜찮다는 사실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도 자꾸만 더 좋은 물건을 찾아다니는 장비병에 시달리곤 하는데, 그때마다 바람막이의 교훈을 떠올리려 한다. 더 나은 것을 가져야만 한다는 불안은 내가 가진 것의 가치를 확인함으로써 잠재울 수 있는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