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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Jun 29. 2016

부케팔로스와 완벽한 샌들을 찾아서

어떤 옷차림을 ‘섹시하다’고 말할 때 그것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이 건강한 자손을 많이 낳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가능성에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다. 그 옷이 대변하는 그 사람의 인생관과 철학에 흥미가 끌린다고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알랭 드 보통 "인생학교-섹스-섹스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는 법"



자신은 어떤 사람의 첫인상을 판단할 때 신발을 본다는 친구가 있는데,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당히 괜찮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발만 척 보고 ‘이 사람은 나와 잘 맞겠군’ ‘이 사람은 영 아닌 것 같아’ ‘이 사람이 범인이야’ 같은 생각을 할 순 없어도, 신발이 어떤 사람의 생활패턴이나 중시하는 멋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가 제법 많기 때문이다. 신발이 깔끔하고 독특한 멋을 지닌 디자인이라면 그것을 신은 사람은 옷차림과 개성에 나름대로 신경을 쓰는 사람이고, 신발이 아주 편안하고 길이 잘 든 물건이라면 그것의 주인은 물건을 아끼며 격식을 크게 따지지 않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고 추정한다. 신발이란 멋을 내면 한없이 골라야 하지만 딱히 신경쓰지 않으면 완전히 거지꼴이 되어도 생활에 큰 지장이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정말 “딱히 신경쓰지 않아도 본인에게 큰 지장은 없는” 부분을 보면 그 사람이 미처 감추지 못한 내면을 것을 알 수 있다. 서비스업 종업원을 대하는 태도라든가, 게임이 풀리지 않을 때 취하는 태도라든가, 타인을 품평하는 방법이라든가, 기타 등등. 


각설하고 신발 얘기로 돌아와서, 그래서 발을 꾸미는 것은  몸 전체를 꾸미는 것과 비슷한 뉘앙스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신발 하나가 그날 하루의 컨디션을 좌지우지하기도 하고. 그래서 맨발에 샌들을 신는 행위는 평소에 신는 운동화나 구두를 신는 것과 달리 무시할 수 없는 과감성을 갖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운동화가 번화가를 쏘다니는 편안한 복장이라고, 그리고 구두가 중요한 자리에 차려 입고 가는 정장이라고 생각하면 샌들은 한여름의 해변이나 그 언저리를 걷는 복장이라는 느낌이 든다. 바다에 갈 때마다 샌들을 신어서 그런지 내게는 그렇게 느껴진다. 샌들을 신을 때마다 나는 바다 내음을 맡는다…까지는 아니더라도, 샌들을 신고 거리로 나서는 순간, ‘흠, 그래, 난 오늘 샌들을 신었어’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특히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만들어 멋진 샌들을 신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감각은 다른 액세서리, 가령 멋진 넥타이나 시계줄, 반지, 귀걸이를 했을 때와는 달리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리듬감 있게 찾아오는데, 매일은 아니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쯤은 일부러 느껴볼만한 것이다. 멋진 샌들은 멋지다. 


그러나 샌들이 아무리 멋지더라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니… 그것은 바로 트러블을 일으킬 확률이 너무나 높다는 것이다. 발을 고정하는 부위가 너무 좁으면 걸을 때마다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발을 고정하는 부위가 너무 넓으면 멋이 없거나 땀이 차거나 여러 부위를 갉아먹는다. 그리하여 웃으면서 나섰다가 한 시간쯤 후에는 발을 내디딜 때마다 영혼 깊은 곳으로부터 반창고를 갈구하면서 이를 악물고 오늘 집에 돌아가면 당장 이 예쁜 고문기구를 내다버리리라고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최근에 아버지가 딱 몇 번 신은 샌들을 물려받았는데, 그 자태에 대단히 감탄하면서 집을 나섰다가 딱 그꼴을 당하고 말았다. 어째 이상하다 싶더니 길들이지 못한 부케팔로스*였을 줄이야. 이 샌들의 문제점은 말 그대로 가죽이 길들지 않았고, 앞으로도 길들 가망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가죽이 너무 튼튼해서 오른쪽은 엄지발가락 위쪽을 착실히 갉아먹고, 왼쪽은 발등을 조금씩 비벼문대고 있다. 하루에 많으면 8천 걸음 정도 걷는 생활을 하는데, 이 샌들을 신고서는 한 3천 걸음도 걷지 못해서 담배 피우러 가는 것조차 무서워지고 말았고, 결국 임시방편으로 뒤꿈치를 고정하는 끈을 내려 슬리퍼처럼, 발을 한껏 뒤로 빼서 신다가 자리에 앉으면 부리나케 벗게 되었다. 

(*부케팔로스: 알렉산더 대왕의 애마로, 성질이 더럽고 난폭하기로 유명)


예전에 여자들은 기회가 되면 신발을 벗어두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는 순진한 의문을 품은 적이 있는데, 이것이 아마 그 답일 것이다. 때때로 신발이 고문기구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신고 한참 걸어보기 전에는 그게 그렇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입장을 바꿔 생각한다는 영어 표현이 “내 신발을 신어 보라구”인데, 정말 기가 막히게 적절한 표현이다. 이런 문제는 직접 경험해 보기 전에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 


아름다움, 편안함, 가격- 이 세 가지를 만족하는 샌들 따윈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어쨌든, 그래서 나는 부케팔로스를 버릴 것인가? 하고 이를 갈며 생각해봤지만, 이것도 큰 문제다. 세상에는 별 쓸모가 없다고 내다버리기에는 멋지고 아까운 것들이 너무나 많고, 잘 맞지 않는 신발이란 이들 중 최상위권에 속할 것이다. 놔둔다고 딱히 여물을 먹고 똥을 싸는 것도 아니고 정기적으로 충전할 필요도 없는데 굳이 버릴 것까지야. 분명 잘 길들이면 최고의 신발이 될 게 틀림없다, 하고, 나는 참으로 부질없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세상에 있는 예쁜 쓰레기란 대체로 이런 식으로 집안을 망치는 것이겠지.


하지만 내게 신발을 정말 길들일 각오가 없는 것도 아니라 일단 검색을 해봤다.

“가죽 신발 길들이기” 로. 그랬더니 한국에선 “드래곤 길들이기 슬리퍼” 따위만 쏟아졌고, 영어로는 "햇볕에 말리고 코코넛 오일을 바르"라는, 또다시 돈이 드는 해법밖에 찾지 못했다. 대체 집안을 좀 뒤져서 “야호, 마침 쓰지 않는 코코넛 오일이 있었네!”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그리하여 내게 남은 해법은 불을 피운 가마솥에 모래를 가득 채우고 두 발을 번갈아 찔러넣어 어떤 신발을 신어도 끄떡없을 정도로 발가죽을 튼튼하게 만드는 것과, 샌들의 가죽이 저절로 길들 때까지 열심히 신고 다니는 것 둘 뿐인데… 가마솥을 사자니 또 돈이 들고, 가죽이 길들 때까지 샌들을 신고 다녔다간 코코넛 오일이 아니라 내 피를 먹어 검붉게 물든 원한의 샌들이 만들어질 것 같다. 둘 다 찌는 듯한 한국의 여름에 즐길 여가로는 그다지 추천할만한 짓이 아니다. 


그러니 부케팔로스는 일단 저리 치워두고(아마 내년에 까먹고 또 신었다가 이를 갈겠지) 결국 필요할 때는 또다시 낡아빠진 샌들을 꺼내는 수밖에. 딱히 마음에 들진 않지만 10년쯤 신어서 바닥이 미끄러워졌다는 문제점을 제외하면 별 트러블이 없어 물놀이를 갈 때마다 챙겨가는 샌들을 이래서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어휴, 그때 파도에 떠내려 가는 걸 구해내길 천만다행이었지. 그땐 우리가 이토록 오랫동안 신고 신기는 사이가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자태가 아름다우면서 착용감도 편한 신발을, 특히 샌들을 찾기란 정말이지 어렵고, 그 탐색 과정에서 많은 비용과 피가 희생되며, 그 고통의 흉터처럼 예쁜 쓰레기가 남고 마는 것이다. 돈이 많고 미련이 없겠다면 만사해결이지만, 세상 사람의 대부분은 그와 정반대로 돈이 없고 가진 건 미련뿐이지 않은가 말이다.



-후기


고생 시즌이 살짝 끝나가면서, 드디어 새 포스트로 새롭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문제의 부케팔로스는... 비싸고 불편하고 아름답기만 한 놈이었습니다. 이것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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