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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해 Aug 03. 2016

여가 전용 의자는 하나쯤 필요하다

현대인은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 의자에 앉아있으니까 의자 하나만큼은 좋은 걸 써야 한다는 의자 광고가 있다. 제법 설득력 있는 광고다. 사람이 가장 빠르게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자주 사용하는 것에 투자해야 한다는 말을 생각해봐도 맞는 말이다. 나는 그에 따라 옷, 신발, 핸드폰, 컴퓨터 만큼은 좋은 물건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의자 역시 여기에 포함시켜도 될 것 같다. 어디에 앉아도 편안함을 느낄 정도로 강인하고 편리한 등허리와 엉덩이가 있다면 의자 따위 아무래도 상관없겠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식으로 진화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편안한 사무용 의자란 그렇게 마음편히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값도 값이지만, 무엇보다 부피가 크다. 매장에 가서 직접 앉아보고 고르기에도 너무 수고가 들고, 써보고 반품하는 방법을 생각해 봐도 얌체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뿐더러 마음에 안 드는 의자를 잠시 눈에 거슬리지 않게 치워둘 공간이라는 것도 좀처럼 마련하기 힘들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집에 붙어있는 시간이 극히 짧은 노동 착취형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무슨 수로 자신이 가장 오래 앉아있는 의자를 취향대로 바꿀 수 있단 말인가?


결국 좋은 의자에서 생활한다는 꿈은 아주 소박하고 간단히 이룰 수 있는 목표처럼 들리면서도 사실은 성능 좋은 비데를 사는 것보다 훨씬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면 어쩌겠는가? 별 수 없다. 차선책을 택하는 수밖에. 그리하여 내가 선택한 것은 앉아서 작업할 책상 의자도 아니고, 누워서 쉴 침대도 아닌 제 삼의, 여가 공간으로서의 의자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선택은 아주 간단했다. 집에 이미 형이 사둔 접이식 안락의자가 놀고 있었던 것이다. 


기껏 사놓은 의자가 놀고 있던 데는 참으로 기구한 이유가 있다. 우리집에는 퍽 넓고 훌륭한 베란다가 있고, 형은 언젠가 이곳을 카페처럼 산뜻한 휴식 공간으로 꾸미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하루 이것저것 베란다에 처박아놓다 보니 그 넓고 좋은 베란다가 결국은 손쓸 도리가 없는 광처럼 되고 말았다. “페이트”라는 게임 시리즈를 보면 주인공이 매일같이 물건 수리하고 마술을 연습하는 광이 나오는데, 우리집은 아버지가 베란다에서 물건을 수리하긴 하지만 대체로 담배를 피우고 있으니 상황은 약간 더 좋지 않다.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는 마술을 연습하는 쪽이 여러모로 나은 것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며 전동 마사지기와 김치냉장고까지 베란다로 자리를 옮겨오는 통에, 헤라클레스가 뛰어와 지혜롭게 강물로 쓸어버리기 전에는 도저히 산뜻한 휴식공간으로 만들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형이 사놓은 안락의자는 헤어진 옛 사랑에게 주지 못한 선물처럼 쓸쓸하게 처박혀 있었던 것이다. 


본문과는 별 상관없는 이미지지만 저 의자도 썩 편해보이는군요.


아무튼 본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의자는 내 방으로 소속을 옮겼다. 번역하면 “무중력”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가진 이 의자는 파이프로 된 골조에 튼튼한 천을 끈으로 엮어 만든 제품인데, 유압식은 아니지만 각도도 조절할 수 있고 발을 걸칠 파이프 받침과 베개, 팔걸이까지 구비해서 안락의자로서의 기본 이상은 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수면이 아닌 휴식을 취할 때마다 이 의자를 쓰기 시작했는데… 이건 참으로 굉장하다. 이름처럼 중력 없이 허공에 뜬 기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체중이 적절히 분산되는 데다가 누워있을 때에 비해 책의 하중을 지탱하기가 편리해서 독서에 안성맞춤이다. 사람이 침대에 오래 누워있으면 어느 시점부터 몸의 일부분이 녹아서 붙어버린 것처럼 질척질척한 졸음을 맛보고 의지력의 바닥에서 헤엄치기 마련인데, 이 안락의자에서는 휴식과 노동 사이에서 ‘여가’라는 중립적 위치를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다. 구조상 일어나기 힘드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긴 하지만, 어쨌든 독서하기 좋기로는 헌혈침대와 비근할 정도다. 아니, 그보다 훨씬 산뜻하다. 너무 푹신하지도 딱딱하지도 않고 바람이 잘 통해서 풀사이드의 그늘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기분이다. 


사람이 의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앨리 맥빌'이라는 미드에서 애인이 전동 마사지 의자가 주는 오르가즘에 흠뻑 빠지는 통에 좌절하는 남자가 등장한 적이 있는데, 자신에게 딱 맞는 안락의자는 오르가즘을 선사하진 않더라도 꽤 사랑할만한 존재다. 이제 안락의자에 앉지 못한 하루는 전혀 쉬지 못한 하루라는 생각마저 든다. 예전에는 집에 돌아오면 문자 따위 단 한 글자도 쳐다보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는데, 이제는 ‘오늘은 쉬는 것만 남았군’ 하는 심정으로 안락의자에 앉아 휴대용 LED 라이트 불빛 아래서 ‘슬슬 잘까’ 싶을 때까지 책을 읽는 것이 하루를 끝내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되었다. 사람이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장소와 습관에 큰 영향을 받는 존재라, 일하는 공간과 잠자는 공간 외에 쉬는 공간을 따로 마련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때 즐기는 여가가 독서라면 더더욱.


뜬금없지만 유독 애니메이션에는 '숨을 돌리고 싶을 때 찾는 자신만의 비경 스팟’이 등장하곤 한다. 나도 그런 곳이 있으면 참 편하겠다 생각하곤 하는데, 비경을 살 순 없어도 느긋하게 몸을 눕히고 숨을 돌릴 안락의자 하나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다는 점이 현실세계에 남겨진 소박한 희망이라면 희망인지도 모르겠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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