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 두 곳을 하루에 오르는 고행이 주는 것
오랜만에 제법 심심한 산인 청계산을 다녀온 다음주는 영혼을 강타하는 아픔이 있었다. 그럭저럭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 공모전에서 또 낙선한 것이다. 실패가 지긋지긋했다. 그러나 지긋지긋하다며 집어던진다고 나아지는 일은 별로 없다. 나는 다음날 곧바로 다른 공모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 한편으로 멀리 갈 나들이 약속이 또다시 엎어졌는데, 그 대신 가깝고 걷기 좋은 곳을 가면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멀리 갈수록 그 경험이 진귀한 것이 된다는 통념을 꺾을 설득력을 나는 갖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쓰는 글도 어쩌면 그런 통념을 깨려는 시도인지도 모른다.
이 날도 나는 어김없이 피곤해서, 아침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가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집에서 나가지 않고 산의 평화를 누릴 방법은 없으므로 일단 출발했다. 사패산으로. 전에 엉뚱한 길로 빠지는 통에 사패산에 오르는 가장 평범한 길을 놓쳤는데, 오늘이야말로 거길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사패산에서 도봉산까지 연계산행을 해보기로 작정했다. 불수사도북이라 불리는 강북 5산 연계산행까지는 못해도 그 일부는 도전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하루에 두 산을 다 정복하고 말겠다는 절실한 사명감을 품은 것은 아니었다. 안 되면 포기하고 나중에 다시 오면 그만이다. 사패산만 보고 내려와도 되고, 도봉산 중간에 적당한 길로 빠져 내려올 수도 있다. 시합이나 공모전도 아니니 목적도 성공도 실패도 나를 구속하지 못한다. 자유롭고 실패 없는 행위는 사람을 평화롭게 한다.
사패산 들머리에서 가까운 범골역은 서울 서남권 주민인 나로서는 이동만으로 지칠 정도로 멀었다. 광운대역에서 내려서 다음 열차로 갈아타는 과정이 특히 짜증을 느끼게 했다. 대학 다닐 때 광운대보다 더 북쪽에 살던 사람들이 전광판을 보고 광운대행에 분통을 터뜨리곤 했는데, 그 심정을 이해할 만했다. 앉아서 기다리는 게 아니라 그 시간동안 걸어서 환승을 했다면 차라리 나았을 것이다. 사람이란 통제가 불가능한 기다림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그래도 회룡에서 의정부선을 타고 범골역으로 가는 과정은 신선해서 마음이 누그러졌다. 지상 노선으로 달리는 의정부선 열차는 전면도 밖을 볼 수 있도록 크게 유리창이 나 있어서 열차를 타고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트이고 미래적인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등산을 하지 않았다면 의정부선이 이렇게 멋지다는 걸 언제 알 기회가 있었을까? 내게 익숙지 않은 곳을 가게 해준다는 점에서도 등산이 일종의 여행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근미래 교통수단의 분위기가 나는 의정부선)
그리하여 12시 반에 범골역에서 출발했다. 22도로 날씨는 다행히도 쾌적한 편이었는데, 초입부터 호암사까지 30분은 내가 혐오해 마지않는 포장도로였다. 걷기 편하게 잘 닦인 정도가 아니라 보편타당한 찻길이었던 것이다. 이런 길을 걷노라면 정말이지 만사가 다 지긋지긋해진다. 이런 길을 걷는 것보다는 나팔꽃 관찰 일기나 쓰는 게 훨씬 박진감 넘친다. 작년에 사패산 들머리를 착각해서 비밀의 바윗길로 들어섰던 건 뜻밖에도 행운이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덕분에 사패산의 호암사 루트는 재미없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호암사를 지나치자 슬슬 흙길과 돌길이 뒤섞여 이어지며 이만하면 과히 괜히 온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뒷산같은 오솔길도 지나고, 돌길도 지나고, 데크계단도 올랐다. 한 시 반쯤 되자 제법 거칠고 가팔라서 난간에 의지해야 하는 암릉도 나왔다. 나에게 산속에서 발견하는 난간과 밧줄은 즐거움의 신호라고 할 수 있으니, 사패산도 호암사 루트도 스프를 잃어버린 라면 같은 길은 아니라는 게 증명된 셈이었다.
(호암사를 지난 뒤의 적절히 즐거운 길)
암릉을 올라서자 소소한 마당바위가 펼쳐지기도 했다. 그곳에는 먼저 도착한 등산객 서너명이 등산화를 벗고 앉아서 적당한 햇살 아래 펼쳐진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얼마 걷지 않은 것치고는 제법 시야가 넓게 트인 곳이라 근처에 산다면 애정을 가질 만한 산이구나 싶었다. 사패산이 초보에게 추천하는 가성비 좋은 산이라고들 하는데, 그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로 밝혀진 셈이다.
(조그만 마당바위에서 도시 풍경이 제법 잘 보인다)
그 뒤로 데크길을 지나 샛길로 살짝 빠져 사패산 2보루쪽을 가보기도 하고 오솔길과 돌길과 암릉을 번갈아 지나자 2시 반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남서쪽이 도봉산으로 이어지는 길이고, 북동쪽이 사패산 정상이었다. 즉, 도봉산도 갈 거라면 이 길로 돌아와 방향을 꺾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패산이 아무리 쉽다곤 하지만 내가 여기 돌아와 도봉산 방향으로 걸음을 돌린 뒤에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니 저지르는 수밖에 없다. 나는 서둘러서 걸음을 재촉했다.
2시 반. 느린 걸음으로도 두 시간만에 정상 부근이었다. 여긴 제법 애를 써서 올라가야겠다 싶은 곳은 거대한 바위들이 쌓여있는 곳 한군데 뿐으로, 여기부터는 제법 본격적인 모습의 중년 등산객이 늘어났다. 그런 한편으로 또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나 될까말까 싶은 어린 여성이 학교 체육복인가 싶은 차림에 헐렁한 책가방을 매고, 바깥 주머니에 물 한 병 찔러넣은 채 산을 오르고 있었다. 나는 어린 여학생이 어떤 연유로 혼자 산을 찾았을까 신기하게 느껴졌다. 산을 찾는 데에 특별한 이유나 각오나 경험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워낙 보기 힘든 경우라 여간 놀랍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왔다면 그 정도로 놀랍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저 친구도 기껏 잡아놓은 약속이 깨진 건 아닐까? 현세의 고통을 잊는 방법으로 도시를 떠나는 건 누구에게나 권장되는 일이다. 산에는 초록과 자유와 달성감이 있으니까.
(잠깐 매콤한 암릉지대를 지나는 사람들)
그건 그렇고, 왜 나이를 먹을수록 자연을 찾게 되는지 궁금해진 적이 없으신지? 나도 궁금해서 알아봤는데, 그중 내 마음을 끄는 가설은 이런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도파민 수용이 약해져서 전자오락처럼 빠르게 재미있어지는 활동이 시들해지고, 반대로 느리고 천천히 재미있어지는 활동에서 더 큰 보상을 느끼게 된다는 얘기다. 제법 그럴듯하다. 나는 그동안 노동 때문에 기력이 없어서 전자오락을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드물게 기력이 있을 때도 전자오락에 손이 가지 않게 된 걸 보면 뇌가 변한 게 맞을지도 모른다. 알코올과 니코틴을 전보다 더 많이 섭취하게 된 것도 전자오락을 뛰어넘는 수준의 자극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딱히 내 잘못이 아니다....... 아니, 그 얘기는 그만두고, 보상에 대한 반응이 나이마다 애초에 다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 애들한테 ‘맨날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지 말고 좀 나가라’는 잔소리가 별 소용이 없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사람한테 ‘이게 얼마나 개운하고 맛있는데?’하는 셈이다. 요컨대 우리는 신체적인 이유에서도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해가 아닌 존중 뿐이다.
어쨌든 3시에는 정상에 도착했다. 크게 무리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완전무결하게 심심할 지경은 아니라는 점이 사패산의 매력이다. 전에 왔을 때와 달리 전망도 트인 편이라 멀리 북한산이 펼쳐진 모습이 잔잔한 배경을 그린 산수화처럼 아름다웠다. 정상에는 사람이 제법 많았지만, 사패산 정상은 산꼭대기라는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넓은 덕분에 북적인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모여앉아 간식을 먹거나, 차례로 정상석 옆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그 앞에서 혼자 차례를 기다리자니 아까 그 여학생이 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에 찍어주었다. 마음에 들게 찍혔을지 모르겠다.
(사패산 정상의 목가적인 휴식)
사진을 찍고 구석에 가서 대충 식사를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예 드러누워 모자를 얼굴에 덮고 쉬는 사람도 있었는데, 사패산 정상 대부분이 말끔한 바위라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편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쇠라의 그림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처럼 멋진 풍경이었다. 공원이라면 아무데나 드러누운 사람이 눈에 거슬릴 때도 있는데, 산에서는 그러려니 싶어진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아마 여기 오기까지 어떤 고생을 했는지 서로 잘 이해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나이나 성별이나 소득격차마처 초월해서 다같이 엇비슷한 처지가 되는 것도 산이 주는 선물이다.
사패산을 정복했으니 여유있게 하산할지, 산행을 이어갈지 정할 때였다. 세 시니까 식당까지 두 시간을 잡으면 다섯 시고, 좀 일찍 식사하고 돌아가도 여덟 시쯤 될 테니 적절히 여유로운 일정이다. 그러나 나는 갈림길까지 내려간 뒤, 결국은 도봉산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아무래도 컵라면 작은 컵 하나만 먹은 것처럼 감질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미 몇 번 생각한 대로 도봉산에서 내려갈 길은 많다. 지치면 내려가면 그만이다. 인생살이나 장편소설 작업과 달리 중간에 그만둬도 괜찮으니 부담없이 시도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간과한 게 있었으니, 사패산에서 도봉산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만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출발할 때만해도 사패산과 도봉산의 높이 차이 정도만 더 올라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한 시간에 걸쳐 고도 80미터 정도는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내리막을 가는 것 자체는 괜찮았지만, 길이 길어지자 그만큼을 다시 기어올라야 한다는 생각에 앞날이 걱정스러워졌다. 완성한 작품의 3분의 1을 지워버리는 기분이랄까. 시간만 넉넉해도 그 정도로 걱정되진 않았을 테지만, 네 시가 되도록 도봉산을 본격적으로 오르지 못하니 영 초조해졌다. 내리막의 끝에서 나타난 고양이만이 그런 심정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네 시에 도착한 갈림길부터는 드디어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다시 진도가 나아가는 듯해서 일단 다행이긴 했지만, 좀 걷다 보니 이건 이것대로 만만치 않았다. 난간을 잡아야만 갈 수 있는 암릉이 펼쳐더니 그 뒤로는 까마득한 나무 계단길이 나와버린 것이다. 물론 나무 계단이 지금 상태에선 안온한 길이긴 했으나 지금은 디딜 곳이 험해도 단단한 난간을 잡고 몸을 끌어당길 수 있는 길이 나았다. 그만큼 지쳐서 하체의 부담을 줄이고 싶었다. 나는 접지력이 좋은 대신 충격 흡수가 부족한 네파의 쉐도우프로를 신고 온 것을 후회했다. 이런 날은 코오롱의 트라이포드가 나았을 것이다. 역시 코스에 맞는 장비를 잘 고르는 게 건강한 등산의 핵심이다.
(안온한 길이지만 팔까지 쓰는 길이 차라리 낫다)
계단길과 오솔길과 약간 지저분한 암릉을 한 시간 기어오르자 마침내 포대능선 쉼터였다. 도봉산 북동부를 보다 보면 ‘저기 웬 오두막이지’ 싶은 산불 감시 초소가 있는 그곳이다. 이곳만 해도 주변 도시가 다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아서, 나는 주저앉아서 숨을 돌리며 신발을 벗었다. 양말이 젖어서 발바닥이 뜨거웠다. 나는 양말을 예비용으로 갈아신었다. 다행히 발가락은 아프지 않았다. 발이 앞으로 밀리지 않도록 발등부터 발목까지 닿는 쿠션을 넣어둔 덕이다. 내리막을 걸을 때마다 새끼발가락이 찍히는 건 상당히 고통스럽고 속도를 늦추는 일이므로, 등산화를 교체할 수 없다면 해볼 만한 방법이다.
(휴식 구간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는 초소)
그렇게 쉬자니 고양이가 있던 갈림길에서 스쳐 지나갔던 중년 남성 등산객 한 명이 몇 걸음 옆에 와서 쉬면서 말을 걸었다. 물론 이 시간에 등산객끼리 나눌 얘기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냐’는 것이었다. 고뇌에 찬 종교인의 선문답 같지만 이날의 대화는 순수히 실제적인 것으로, 우리 모두 사패산에서 와서 도봉산 정상으로 가는 중이었다. 신선대까지 갔다가 해 지기 전에 하산 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우리의 걱정거리였으나, 그는 스마트폰을 보더니 시간이 딱 맞겠다고 했다. 등산 경험이 많은 모양이었다. 나는 다소 안심하고 그와 헤어져 먼저 도봉산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보니, 이 아저씨,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닌가. 산불감시 초소 옆에서 담배라니, 등산 경험이 많다고 상식도 겸비하게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나는 솔직히 화가 났다. 아마 흡연자이기에 더 화가 났을 것이다. 나라고 니코틴이 필요없어서 빈손으로 나다니는 게 아니란 말이다.
초소를 지나 포대능선을 걷는 길은 비교적 마음이 놓이는 편이었다. 망월사에서 신선대로 가는 길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는 등산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등산로라니, 5년, 10년씩 등산을 다닌 사람이나 주장할 만한 개념 같아 민망하다. 그러나 과장없는 사실이다. 도봉산 포대능선부터 신선대로 이어지는 뾰족한 바위 능선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형상으로 극적인 동시에 적당히 견디고 즐길 만큼만 어렵다. 비유하자면 불닭볶음면 같은 맛이라, 이따금 다시 맛보고 싶어진다.
다만 느긋하게 그런 감상을 할 수 있는 것도 몸에 여유가 있을 때다. 나는 이날 이미 사패산에서 기운을 빼고 온 터라 신선대까지 가는 길이 기묘할 정도로 길게 느껴졌다. 아름답지만 길었다. 보람있는 일이라고 힘들지 않을리가 없듯, 아름다운 길이지만 걸어올라가는 게 고역이었다. 예전과 다른 길로 온게 아닌가 지도를 확인했을 지경이다. 그리하여 6시에나 Y계곡에 도착했다. 나는 길게 고민하지 않고 우회로가 아닌 Y계곡을 기어내려갔다가 다시 기어올라갔다. 이미 한 번 가본 우회로가 길고 지겹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곳을 다시 걷는 것보다는 팔을 써서 수직운동을 하는 편이 나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실제로 Y계곡을 건너는 건 어중간한 경사로를 걷는 것보다 수월하게 느껴졌다. 팔 운동도 분명 등산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등산에 뛰어들어보면 인간의 이족보행이 얼마나 하찮은가 실감하게 된다.
(Y계곡 끄트머리. 어렵지만 늘 재미있는 곳이다)
그리하여 6시 반에는 결국 신선대에 오를 수 있었다. 사패산과 도봉산을 하루에 다 오르다니, 작년까지 등산과는 아무 관련 없이 살던 나로서는 믿기 어려운 발전이다. 이만하면 개인적인 업적을 달성했다고 해도 부끄럽지 않다. ‘불수사도북’이라고 강북 5산을 하루에 연달아 오르는 사람도 널린 마당에 이게 뭔 자랑인가, 하는 생각 따위는 들지 않았다. 정말로, 자책과 자기비하와 자기혐오에 찌든 나로서는 그런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놀라울 정도로 기분이 상쾌하고 말끔했다. 남들이 느리든 빠르든 산을 다섯 개 타든 열 개 타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는 무엇을 어찌하면 되는지 가르쳐줄 스승도 없이 등산을 익혔고, 관악산을 간신히 오르는 수준에서 시작해서 무릎이 상한 상태에서도 사패산과 도봉산을 연달아 오르는 날까지 왔다. 느리지만 분명 나는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인생의 다른 부분도 이와 마찬가지 아닐까? 나아지고만 있다면 굳이 비참해질 이유도 없는 것이다.
(Y계곡에서 신선대로 이어지는 능선은 언제나 영화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그런 자기확신과는 별개로, 지구의 자전은 인간을 기다려주지 않기에 빠르게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나는 신선대까지 온 김에 전에 올랐던 우이봉을 거쳐 가는 길을 걸어보고 싶었으나 욕심을 버리고 허겁지겁 마당바위 방면으로 하산했다. 해질녘의 산은 놀랍도록 고요하고 쓸쓸해서, 초조함 사이로 슬픔이 어둠처럼 서서히 젖어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남빛 어둠을 망치고 싶지 않아 짙푸른 하늘의 빛을 반사하는 돌들을 보며 헨젤과 그레텔처럼 걸었다. 들머리를 지날 때는 8시 19분이 다 되어 조명 없이는 걷기가 위험할 지경이었다. 내가 나만의 속도로 발전하는 것과 별개로 시간은 재난처럼 흘러가는 법이라는 걸 새삼 실감했다.
(다스베이더가 기다리는 듯한 밤이 왔다)
영 씁쓸해진 그 심정은 도봉산 입구의 먹자골목에 들어서자 한층 더 심해졌다. 가는 곳마다 장사 끝났다고 나를 문전박대했기 때문이다. 하기야 9시가 다 되었는데 산 입구의 어느 식당이 사람을 받겠는가 말이다. 나는 한참을 서성이다, 결국 포장마차 같은 노점에 앉아 순대국밥 대신 순두부 찌개와 막걸리를 먹었다. 다행히도 과히 나쁘지 않은 식사였다. 건강 면에선 순대보다 두부가 나으니 위안거리도 되었다.
내가 혼자서 얼큰한 순두부찌개와 막걸리로 속을 데웠다 식히길 반복하는 동안 옆자리에는 40대 같은 커플 한 쌍과 그들의 친구로 보이는 남자와 여자가 앉아서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커플이 아닌 여자는 남편이 주말이면 꼭 축구를 하러 나가서 술을 마시고 온다고 불평했고, 커플 두 사람은 자신들이 주말을 꼭 함께한다는 규칙을 지킨다 했다. 듣자니 나로서는 좀 뜨끔했다. 나는 지금 그 누구에 대해서도 인간관계의 의무를 지지 않은 채 칼로리 소모라는 핑계를 대며 마음놓고 막걸리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자유는 행복의 근원인가 방종의 요람인가? 글쎄, 아마도 다른 가치들과 마찬가지로 의미를 부여하기 나름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명산 두 곳을 단번에 올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이 사실은 등산이라는 내 취미 생활의 이정표로 남을 것이다. 의미는 흔들리지만 사실은 그대로 남는다. 나는 위축감을 털어버리고 보람찬 귀로에 올랐다.
교훈
산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자.
예정된 코스에 맞는 장비를 택하자.
양말이 땀에 젖어 발바닥에 열감이 생기면 양말을 갈아신어 물집을 방지하자.
끈을 조여도 발이 앞으로 밀려 발가락이 찍힌다면 발가락 부분만 잘라낸 깔창을 추가해서 발등을 높이거나 발등에 쿠션을 넣어 대처할 수 있다.
상체 운동도 등산에 도움이 된다.
여유를 두고 움직이자. 일몰 시각 3시간 전에는 하산을 시작해야 안전하다. 덤으로 8시부터 음식점이 문을 닫기 시작하니 하산 후에도 굶주린 하이에나처럼 헤매고 싶지 않으면 이 역시 고려하는 게 좋다.